[르포] 소비 실종된 '부자도시' 울산..그 많은 돈 어디서 쓰나
전통적인 소매점 이커머스 시장에 손님 빼앗겨
사람이 사리진 거리.. 인구 감소로 학생 손님도 없어
옷 사는 사람 없으니 분식점도 문 닫아.. 영화관도 맥 못 춰
구청은 ‘ㅇㅇ거리’ 만들어 활성화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 안 보여
울산 사람들 전철 타고 동부산, 해운대, 서면으로 쇼핑
울산에서 번 돈 18조 4000억원 타지에서 사용
울산의 경우 지난해 2·4분기 소매판매액 지수는 0을 기준으로 5.3% 증가했다. 그런데 올해는 기준 아래로 7.9% 하락했다. 동기간 낙폭만 보자면 1년 만에 소매판매가 13.2%나 급락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승용차·연료소매점(-10.5%) △전문소매점(-7.4%) △슈퍼파켓·잡화점·편의점(-6.2%)의 판매 부진 때문으로 분석됐다.
실제 승용차·연료소매점자동차의 경우 올해 6월 기준 신규 등록은 전년 대비 1153대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매점의 판매 감소는 울산 도심 곳곳에서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곳은 2010년대 들어서 울산 삼산동으로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기 전까지 울산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던 곳이다. 서울의 명동과 남대문처럼 지역 경제의 척도였다.
젊음의 거리는 직선 길이 약 500m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앞뒤로 뒷골목 상권이 형성돼 있다. 뒷골목들은 음식점과 10대와 20대들이 즐겨 찾는 옷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현재 뒷골목 상권은 사실상 소멸 수준이다.
이 가운데 ‘보세거리’ 이름 붙은 거리는 1층 기준으로 약 44개 점포가 있는데 세어보니 임대 표시가 붙어 있거나 폐업한 점포가 15개나 됐다. 2층까지 합치면 20개쯤 돼 보였다. 카페와 몇 개 점포를 제외하고는 손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상권이 태화강 남쪽인 삼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쇠퇴를 거듭하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자 통신사와 스마트폰 대리점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최근까지 휴대폰 거리로 불렸다. 하지만 이곳 역시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늘었다. 휴대폰 판매점 또는 통신사 대리점 간판이 붙은 점포는 대략 27곳. 이 가운데 폐업했거나 임대 표시가 붙은 점포는 14곳이나 됐다. 저녁이 됐지만 불 꺼진 거리에는 행인이 거의 없었고 가끔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보세거리의 한 가게 주인은 “갑자기 손님이 확 줄었어, 인터넷 시장에 손님을 다 빼앗기다 보니 이젠 단골손님도 거의 없어”라고 하소연했다. 말인즉, 이커머스(e-commerce)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옷 가게 손님이 없으니 옆집 분식집도, 2층 중국집과 돈까스집이 사라졌고 이젠 점포를 얻으려는 사람도 안 보인다”라며 도미노 현상을 강조했다.
또 다른 점포 사장은 “예전에는 애들이 옷 사러 나왔다가 영화 보고, 외식하거나 또는 영화 보러 나왔다가 옷 사고 외식하는 소비 양상이 이제 삼산동에만 있는 것 같다"라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회복은 더 이상 기대.."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보세거리 인근에는 극장 3곳, 쇼핑거리, 먹자골목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를 향유할 소비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곳 '젊음의 거리'는 소비층이 대부분 학생, 청소년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백화점 2곳을 중심으로 영화관, 유흥주점과 일반음식점들로 가득한 울산 최대의 번화가 삼산동은 중구 '젊음의 거리'와 달리 늦은 밤이었지만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청소년 위주가 아닌 소득이 있는 계층이 주요 소비층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많지는 않았지만 임대를 알리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롯데와 현대 두 백화점의 매출은 울산의 소비 규모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계청이 분석한 올해 매출 분석은 위기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동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던 대형소매점 판매는 4월부터 급격히 하락했다. 1월 97.3%의 판매액지수가 4월 되면서 87.9%로 내려앉았다. 백화점은 전월대비 7.7%, 대형마트 18.3% 급락했다.
그렇다고 울산 경제 자체가 힘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력산업 대부분이 호조세를 보이며 올해 7월까지 5개월 연속 수출액이 증가했다.
1인당 개인소득도 2604만9000원(2020~2022 기준)이다. 전국 평균 2336만8000원과 비교해 111.4% 수준이다.
소득은 늘어났지만 지역 내 소비는 줄어든 셈이다. 원인에 대해 상인들은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 외에 오프라인 소비가 인근 부산으로 이동한 것 역시 또 다른 원인으로 보고있다.
40대 여성 직장인 이모씨는 “부산과의 연결 도로가 많아지고 전철도 생겨나 동부산과 해운대, 서면 등으로 쇼핑 가기가 쉬워졌다”라며 “고가 제품을 쇼핑할 때는 울산보다 유명 브랜드 제품이 많은 부산으로 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실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1일 동남지방동계청이 발표한 '동남권 지역소득(잠정) 분배 추이(2000~2022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울산의 '지역외순수취 본원소득'은 18조4000억원이 순유출됐다. 울산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 벌어들인 돈을 타 지역에서 소비한 액수이다. 최근 2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경남의 유출 규모가 3조2000억원인 것과 또 반대로 부산이 2조3000억원 벌어들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 경제계에서는 줄어든 인구 또한 소비 감소의 중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올해 2·4분기 시도별 인구 동향을 분석한 결과 울산도 인구 순유출 지역에 포함돼 있다. 울산에서는 이 기간 893명이 빠져나갔다. 인구 110만 명 선도 최근 무너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통적인 소매점 형태는 이커머스 시장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편리해진 교통망은 대도시로 소비자를 이동시켰다"라며 "지역 경제를 지탱해 줄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다 보니 묘수 찾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위기를 느낀 지방정부가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부 구청에서는 비슷한 업종이 몰려 있거나 역사적 요소가 있는 곳에 거리 이름을 붙여 상권 활성화를 도모했지만 뚜렷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결과만 놓고 보면 지방정부가 시행해 온 기업의 투자유치와 출생아 증가 정책이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구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라며 "기존과 다른 시각의 정책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유통업체인 롯데와 신세계가 울산에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진출을 계획하고도 10년 가까이 사업을 지연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라며 "울산에 생산공장을 많이 유치한다고 해서 사람 또한 많이 거주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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