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끌려가 '홀치기 염색' 특허 포기한 발명가…法 "유족에 7억 배상하라"

이민준 기자 2024. 8. 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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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이른바 ‘홀치기’ 염색 기술 특허권을 국가의 강요로 포기한 발명가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연이자를 더할 경우 유족들이 받을 돈은 23억여원까지 늘어난다.

서울중앙지법 전경. /조선일보 DB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이세라)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를 발명한 고(故) 신모씨의 자녀 2명에게 국가가 총 7억3000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를 더하면 신씨 자녀들이 받을 돈은 총 23억6000여 만원이다. 재판부는 신씨가 1972년 홀치기 기술을 모방한 업체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해 받기로 한 5억2000여 만원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고려해 총 배상액을 산정했다.

홀치기는 천에 실을 묶어 염색한 후 풀면 무늬가 나타나는 특수염색 기법이다.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었다고 한다. 1965년 신씨는 이 기법을 발명했고, 그해 발명특허등록과 의장등록을 모두 마쳤다. 그러나 염색업계의 기업들이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다. 1969년 대법원은 신씨의 특허권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해, 신씨는 특허권을 얻었다. 이후 기술을 모방한 다른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972년 5월 1심 선고에 따라 배상받기로 한 상태였다. 업체들은 그달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을 준비하던 신씨는 그해 6월 돌연 ‘특허권 일체를 포기하고, 소 전부를 취하한다’는 취하서를 재판부에 냈다. 당시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손해배상 소송을 종결했다.

신씨가 소 취하서를 제출한 것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남산 분실로 끌려가 구금된 채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고 특허권을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었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5차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조선일보DB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배경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신씨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열린 수출진흥 확대회의에서 홀치기 수출조합이 상공부 장관에게 “민사소송 판결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는 취지로 건의했고, 이를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이 수출업자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법을 악용하는 업자와 이를 방치한 상공부 모두 나쁘다”는 취지로 질책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회의 다음날 신씨를 연행했고, 3일 만에 특허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신씨는 2006년 11월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각하됐다. 이후 유족이 다시 신청해 작년 2월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고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신씨는 불법 감금돼 심리적, 육체적 가혹행위를 당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소 취하서에 날인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신씨는 자녀가 재차 진실규명을 신청하기 전인 2015년 사망해 생전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좌절됐다”며 “공무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일어날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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