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명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엉기었으니…” 제주 예비검속 비극 ‘백조일손 역사관’ 문 열어

박미라 기자 2024. 8. 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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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직후 예비검속
섯알오름서 집단학살·암매장
유족 청원 6년만에 유해수습 허가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이 지난 10일 개관했다. 박미라 기자
경찰 지시로 산산조각 난 백조일손지지 비석이 역사관에 전시돼있다. 박미라 기자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됐다가 섯알오름에서 집단 학살된 제주도민을 추모하고 알리는 역사 공간이 생겼다.

백조일손 유족회는 이달 초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백조일손 묘역 바로 옆에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개관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날 찾은 역사관은 전시실과 영상실, 위패봉안실, 자료실 등으로 구성된 331㎡ 규모의 아담한 단층 건물로, 개관 초기인 탓에 아직은 관람객이 많지 않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역사관은 제주4·3사건의 일부이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또 다른 집단학살인 섯알오름 학살 사건의 전 과정과 백조일손 유족회의 진실규명 과정 등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역사관은 입구에서 4·3과 한국전쟁, 예비검속에 대한 간략한 설명 이후 본격적으로 모슬포 경찰서 관내 예비검속과 섯알오름 학살 사건을 다뤘다. 당시 군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뚜렷한 기준없이 예비검속한 주민들을 1950년 8월20일 섯알오름으로 끌고가 재판절차도 없이 집단총살하고, 암매장했다. 이날 새벽 2시쯤 섯알오름 남쪽 구덩이에서 한림 및 무릉지서에 구금됐던 주민 60여명이, 새벽 5시쯤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 구금됐던 주민 130여명이 총살됐다.

유족들은 당시 단 한 구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가 6년여 만인 1956년에야 섯알오름 구덩이에서 유해를 거뒀다. 시신이 뒤엉켜 구분할 수 없었던 만큼 칠성판 위에 머리뼈, 등뼈, 팔뼈, 다리뼈 등을 짜 맞춰 유해 132구를 수습했다. 유족들은 유해를 상모리 장지에 합동 안장하고, ‘132명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켜 하나 됐으니 후손들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를 담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고 묘역의 이름을 지었다.

역사관 해설사는 “영상실의 벽면에 희생자의 명단을 가로세로로 교차해 얽혀 새긴 것은 발굴 당시 유해들이 뒤엉켜 있었고 백조일손이 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비검속과 집단학살의 가해자를 정리한 전시물. 박미라 기자
역사관 한 벽면에 희생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발굴 당시 유해들이 뒤엉켜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름 속 같은 글자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새겨 넣었다. 박미라 기자

전시실 한 가운데에는 깨진 비석의 돌 무더기가 놓여있다. 이는 묘역의 해체를 압박하던 경찰이 1961년 대정지서 급사를 시켜 해머로 산산조각 낸 백조일손지지 비석의 잔해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관에는 유해 발굴 당시 학살 현장에서 나온 신발창, 총알 구멍이 있는 옷, 총살 당시 쓰인 탄피 등의 실물도 고스란히 전시됐다. 당시 민간인이 실려가는 트럭을 목격해 비밀리에 진행됐던 학살을 마을에 알린 주민의 증언 영상, 유족들이 국회에 보냈던 탄원서,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벽면을 촘촘히 채웠다. 주민들이 트럭에 실려 섯알오름으로 끌려가고, 학살되는 과정 등은 샌드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백조일손 유족으로 미국과 제주를 오가며 4·3과 한국전쟁 직후 민간인 집단학살의 진상규명에 힘써온 이도영씨의 생애와 생전 모은 연구자료도 만나볼 수 있다.

이같은 역사관 조성은 유족회 차원에서 꾸준히 섯알오름 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벌여왔고, 상당수의 자료를 모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장고에는 미처 전시하지 못한 자료가 상당수 있다.

고영우 백조일손유족회장은 “역사관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당한 학살의 비극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유족의 염원이 담긴 장소”라면서 “이를 위해 유족회 소유 땅을 기부채납 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자료를 전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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