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의무검사·상시 모니터링 급선무
절연상태·작동상태불량만 점검
배터리 진단 핵심장비 KADIS
전국 민간 검사소 30%만 갖춰
안전상태 지속 확인 BMS 중요
완성차 제조사 데이터 공유해야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전기차 화재 사고로 불안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를 정밀 검사할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운행 중 손상을 입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현 체계로는 배터리를 검사 받아야 할 이유도, 검사 받을 인프라도 준비되지 않아서다.
① 정기 검사 대상서 빠진 배터리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구입 후 4년, 이후 2년마다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는 의무 검사 대상이 아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전기·전자장치의 경우 '고전원전기장치의 절연 상태 또는 작동 상태 불량' 여부를 점검하도록 돼 있다. 이는 차량 내 전류가 누전되는지 확인하는 절연 검사나 작동 상태 점검만 실시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배터리 안전 검사로 볼 수 없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절연 검사만으로는 배터리 충전과 열화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종합적인 배터리 안전성 검사가 이뤄진다고 할 수 없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2년마다 배터리 의무 검사가 수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전기차 정기 검사시 배터리 의무 검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서 '고전원전기장치의 접속·절연·표시 및 설치 상태 불량'을 살피도록 조문을 개정해 검사 범위에 배터리를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시행 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당 시행규칙은 올해 4월 입법 예고됐지만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규제 심사를 받고 있다. 이르면 내년 시행될 전망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상'이다.
② 검사 인프라도 구멍
전기차 배터리 검사를 의무화한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전자장치진단기(KADIS)를 개발했지만 보급이 저조하다.
국내에서 자동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공단 검사소 59개, 민간 검사소 1890개다. 공단이 운영하는 검사소에는 KADIS를 갖췄으나, 민간 검사소는 전체의 약 30%인 600곳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 상반기까지 등록된 전기차는 60만대에 달한다.
자동차 검사의 상당 역할을 차지하는 민간 검사소가 장비를 단기간 신속하게 갖추면 다행이지만 이를 강제하거나 유인할 방법도 부족하다. KADIS 장비 구매에 비용(150만원 가량)이 드는 데다, 늘어나는 검사 시간 대비 추가 점검 비용은 청구할 수 없어 보급에 장벽이 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본부장을 지낸 박용성 한국ESS산업진흥회 고문은 “민간검사소가 장비를 도입할 유인이 충분치 않은 만큼 단말기 구매비용과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한 검사 수수료 반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ADIS를 통한 전기차 배터리 안전 검사 근거를 규정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73조 별표 15에는 '다만 전자장치진단기로 진단되지 않는 경우 계기장치의 고장경고등 점등 여부 확인'하도록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를 없애면 의무화가 이뤄져 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③ 상시 모니터링 체계 갖춰야
정밀 안전진단이 의무화되더라도 2년마다 한 번씩 진행하는 정기검사 만으로는 전기차 화재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배터리 셀 내에서 발생하는 화학 과정에 대한 안전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BMS 기반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는 뜯어보기 전에 내부 셀 단락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BMS를 통해 과충전, 과방전, 온도 과열 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신진우 이노메트리 검사기술센터장은 “제조 공정에서 엑스레이를 통해 결함을 발견해 내는 비파괴검사 시스템을 철저히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운행 중인 전기차의 배터리 전압·전류·온도·연기 등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해서 이상 징후를 조기 발견할 수 있는 BMS 개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재예방형 충전기 보급이 이뤄지더라도 전기차 제조사에서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한 만큼 완성차 제조사의 협조 필요성도 제기된다. 환경부가 진행하는 전기차 화재예방형 충전기 보급 사업과 KADIS를 연계하는 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용성 고문은 “KADIS는 검사 목적으로 완성차 제조사로부터 BMS 데이터를 공유받고 있는 만큼 화재예방형 충전기 보급이 교통안전공단 주도로 이뤄지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제조사에서 BMS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외부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데 관련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데이터 공개가 필요하다”면서 “운전자에게 더 정확한 차량 정보를 제공하고, 건물관제나 주차장관리시스템 등과 연계해 이상 징후 차량에 대한 선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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