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파친코"의상, 한국 디자이너 손끝에서 나왔다
이주형 논설위원 2024. 8. 25. 12:33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16
이민진은 강렬한 첫 문장을 쓰는 작가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은 소설의 주제문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 문장부터 당신을 끌어들인다"라고 한 "파친코"(2017)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파친코"의 첫 번째 한국어판은 이 문장을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번역 출간한 바 있지만, 출판사가 바뀌고 개정판이 나오면서 첫 문장의 번역도 살짝 바뀌었다. 김훈이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놓고 '꽃이 피었다'로 쓸지, '꽃은 피었다'로 쓸지 고민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파친코"는 1910년 일제 치하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9년에 일본 오사카에 이르기까지 장장 4대(代), 80년에 걸친 대서사시로, 전쟁과 가난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내야했던 어느 재일 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주인공 선자의 인생을 중심으로 그린다.
7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 이민진이 쓴 이 소설은 지난 달 뉴욕타임즈가 전문가 503명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에 포함되면서(15위) 그 명성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번 주, 애플TV+에서 2년 전에 스트리밍했던 "파친코" 시즌1에 이어 시즌2를 차례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 문장부터 당신을 끌어들인다"라고 한 "파친코"(2017)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파친코"의 첫 번째 한국어판은 이 문장을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번역 출간한 바 있지만, 출판사가 바뀌고 개정판이 나오면서 첫 문장의 번역도 살짝 바뀌었다. 김훈이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놓고 '꽃이 피었다'로 쓸지, '꽃은 피었다'로 쓸지 고민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파친코"는 1910년 일제 치하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9년에 일본 오사카에 이르기까지 장장 4대(代), 80년에 걸친 대서사시로, 전쟁과 가난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내야했던 어느 재일 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주인공 선자의 인생을 중심으로 그린다.
7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 이민진이 쓴 이 소설은 지난 달 뉴욕타임즈가 전문가 503명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에 포함되면서(15위) 그 명성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번 주, 애플TV+에서 2년 전에 스트리밍했던 "파친코" 시즌1에 이어 시즌2를 차례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2년 전 "파친코"의 1화를 보면서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이 드라마가 100여 년 전 부산 어시장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쓰는 사투리며, 그들이 먹는 음식이며, 그들이 사는 집이며, 그들이 입는 옷 등을 한국의 제작사에서도 만들기 어려울 정도의 프로덕션 수준과 비주얼로 보여줬다.
이 정도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다룬다고? 할리우드가? 왜? 라는 생각이 들어 부럽다고 해야할지, 부끄럽다고 해야할지, 왠지 모를 한숨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파친코"의 오프닝 타이틀은 매 에피소드마다 나오는데 건너뛰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에미상 메인 타이틀 부문 후보였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사실은 오프닝 크레딧에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열거된 바로 뒤에 의상 감독(costume designer)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의상 감독 크레딧은 훨씬 더 뒤에 위치한다)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스태프가 외국인인 할리우드 드라마 "파친코"의 의상 감독은 한국인이다. 윤여정 배우 이름 바로 뒤에 '의상 디자이너 채경화'라는 크레딧이 애플TV+ 플랫폼을 타고 전세계에 송출됐다는 뜻이다.
이 정도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다룬다고? 할리우드가? 왜? 라는 생각이 들어 부럽다고 해야할지, 부끄럽다고 해야할지, 왠지 모를 한숨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파친코"의 오프닝 타이틀은 매 에피소드마다 나오는데 건너뛰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에미상 메인 타이틀 부문 후보였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사실은 오프닝 크레딧에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열거된 바로 뒤에 의상 감독(costume designer)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의상 감독 크레딧은 훨씬 더 뒤에 위치한다)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스태프가 외국인인 할리우드 드라마 "파친코"의 의상 감독은 한국인이다. 윤여정 배우 이름 바로 뒤에 '의상 디자이너 채경화'라는 크레딧이 애플TV+ 플랫폼을 타고 전세계에 송출됐다는 뜻이다.
"오프닝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진짜 영광스럽고 진짜 좋았고, 이 정도로 "파친코"에서 의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가족들도 다 좋아했고 우리 팀원들도 좋아했고요."
서울 마포에 있는 채경화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전체 공간의 절반 정도가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쓰인(일) 다양한 옷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이 내다보이는 창 쪽에는 긴 테이블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두 명이 동시에 일할 수 있을만큼의 거리를 두고 재봉틀 두 대가 놓여있었다. 채 디자이너는 "파친코"와 "무빙" 등을 마치고 지금은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정확히는 안 세어봤는데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합쳐서 한 65편 정도 한 것 같아요. 워낙 옷을 좋아해서 전공을 했는데, 그때는 배우나 가수들이 입는 앞서가는 옷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소개를 받아서 영화 촬영 현장에 조수로 참여하게 됐죠."
채경화 디자이너가 처음 조수로 들어갔던 영화는 이병헌, 신현준 주연의 "지상만가"(1997)다.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빨래부터 시작하던 시절이었어요. 무조건 빨아야죠. 지금은 여러가지 양말이 있지만 그때는 양말도 하나여서 빨아서 촬영하곤 했어요. 보조 출연자 등 많은 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던 시절이라 아무리 잘 챙겨놔도 버스에서 물건이 섞이거나 없어지기도 했어요. '지상만가'에서는 이병헌 선배님 넥타이가 없어졌어요. 분명히 걸어놨는데 다시 가보니까 없는 거예요. 한국에 두 개 밖에 안들어왔다고 하는 폴 스미스 넥타이였는데. 그 당시는 폴 스미스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홍록기 배우가 하나 가지고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가서 빌려서 찍었는데 그날이 아직도 생각나요."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으로 입봉한 채경화 디자이너는 이후 "반칙왕", "추격자", "황해", "써니", "더 테러 라이브", "무뢰한", "곡성", "1987", "공작", "킹덤" 시즌2, "엑시트", "강철비2:정상회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모가디슈", "비상선언", "무빙", "1947 보스턴"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의상 연출을 맡아왔다.
"파친코"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쇼 러너(수 휴)가 제가 했던 "킹덤"과 "써니"를 좋게 봤다고 들었다.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파친코"와 일부 겹친다)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저한테도 인터뷰해보겠냐는 제안이 왔다."
뭘 보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나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막연히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만, "강원도의 힘"을 마치고 유학도 다녀왔다. IMF 사태 때문에 끝마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파친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열 일 제치고 꼭 하고 싶었고 간절하게 접근을 했다.
일고여덟 번의 인터뷰를 거치고 마지막에 룩북을 보내달라고 하더라. 진짜 열심히 했다. 콘셉트별로 만들다보니 한 70~80장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미국 디자이너와 경쟁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미국 분이 하면 얼마나 해왔겠나. 인터뷰어들이 열정과 진정성에 대해서 좋게 본 것 같다. 마침 코로나로 하던 작품이 멈춰 일정도 가능했고 운도 따랐다.
4대(代), 80년, 3개국에 걸친 큰 규모의 국제적 프로젝트라 캐릭터도 다양하고 소요되는 의상들도 굉장히 많았을텐데,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렵지는 않았나
제가 60여 편을 했지만 사실 한 편도 쉬운 건 없었다. '내가 이 일에 안 맞는 건 아닌가, 나만 이렇게 어렵나? 나는 왜 매 작품이 어렵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힘든 거다, 나라서 힘든 게 아니다, 용기를 가지자, 라고 생각했다. "황해", "써니" 할 때쯤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다.
서울 마포에 있는 채경화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전체 공간의 절반 정도가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쓰인(일) 다양한 옷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이 내다보이는 창 쪽에는 긴 테이블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두 명이 동시에 일할 수 있을만큼의 거리를 두고 재봉틀 두 대가 놓여있었다. 채 디자이너는 "파친코"와 "무빙" 등을 마치고 지금은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정확히는 안 세어봤는데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합쳐서 한 65편 정도 한 것 같아요. 워낙 옷을 좋아해서 전공을 했는데, 그때는 배우나 가수들이 입는 앞서가는 옷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소개를 받아서 영화 촬영 현장에 조수로 참여하게 됐죠."
채경화 디자이너가 처음 조수로 들어갔던 영화는 이병헌, 신현준 주연의 "지상만가"(1997)다.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빨래부터 시작하던 시절이었어요. 무조건 빨아야죠. 지금은 여러가지 양말이 있지만 그때는 양말도 하나여서 빨아서 촬영하곤 했어요. 보조 출연자 등 많은 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던 시절이라 아무리 잘 챙겨놔도 버스에서 물건이 섞이거나 없어지기도 했어요. '지상만가'에서는 이병헌 선배님 넥타이가 없어졌어요. 분명히 걸어놨는데 다시 가보니까 없는 거예요. 한국에 두 개 밖에 안들어왔다고 하는 폴 스미스 넥타이였는데. 그 당시는 폴 스미스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홍록기 배우가 하나 가지고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가서 빌려서 찍었는데 그날이 아직도 생각나요."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으로 입봉한 채경화 디자이너는 이후 "반칙왕", "추격자", "황해", "써니", "더 테러 라이브", "무뢰한", "곡성", "1987", "공작", "킹덤" 시즌2, "엑시트", "강철비2:정상회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모가디슈", "비상선언", "무빙", "1947 보스턴"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의상 연출을 맡아왔다.
"파친코"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쇼 러너(수 휴)가 제가 했던 "킹덤"과 "써니"를 좋게 봤다고 들었다.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파친코"와 일부 겹친다)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저한테도 인터뷰해보겠냐는 제안이 왔다."
뭘 보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나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막연히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만, "강원도의 힘"을 마치고 유학도 다녀왔다. IMF 사태 때문에 끝마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파친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열 일 제치고 꼭 하고 싶었고 간절하게 접근을 했다.
일고여덟 번의 인터뷰를 거치고 마지막에 룩북을 보내달라고 하더라. 진짜 열심히 했다. 콘셉트별로 만들다보니 한 70~80장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미국 디자이너와 경쟁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미국 분이 하면 얼마나 해왔겠나. 인터뷰어들이 열정과 진정성에 대해서 좋게 본 것 같다. 마침 코로나로 하던 작품이 멈춰 일정도 가능했고 운도 따랐다.
4대(代), 80년, 3개국에 걸친 큰 규모의 국제적 프로젝트라 캐릭터도 다양하고 소요되는 의상들도 굉장히 많았을텐데,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렵지는 않았나
제가 60여 편을 했지만 사실 한 편도 쉬운 건 없었다. '내가 이 일에 안 맞는 건 아닌가, 나만 이렇게 어렵나? 나는 왜 매 작품이 어렵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힘든 거다, 나라서 힘든 게 아니다, 용기를 가지자, 라고 생각했다. "황해", "써니" 할 때쯤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다.
"파친코"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면 당연히 선자다. 정(情)이 있지만 강단도 있는 강인한 조선 여인의 풍모를 지닌 선자가 영민한 어린 딸에서 매력있는 처녀로 성장하고, 혼인해서 일본으로 떠난 아내에서 아들 둘을 둔 어머니가 되고, 이윽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엘리트 손자를 돕는 할머니로 늙어가는 모습을 김민하와 윤여정이 각각 청장년 시기과 노년기로 나누어 연기했다.
이 드라마는 선자에게 바치는 이야기로서 선자의 의상 변화가 아주 중요하다. 선자의 옷은 어떻게 달라지나
한복에서부터 시작한 게 "파친코"이고, "파친코"에서 한복은 엄마의 사랑이나 고향을 상징한다. 한복을 입던 선자는 독립하면서 조금씩 한복을 벗기 시작하고 오사카에 적응하면서부터는 점점 더 일본 옷을 입게 된다. 처음에는 서양 옷을 입던 동서 경희(부자집 딸 출신)의 옷을 조금씩 얻어 입다가, 여성적인 서양 옷을 입던 경희와 달리 어깨도 각지고 힘이 있는 옷을 입는다는 콘셉트인데, 전쟁통에 두 여자가 자식들을 이끌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서 둘 다 일본 옷을 입고 농사일을 하게 된다.
옷에는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가 있다. 선자가 겪는 상황, 선자가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는 정도에 맞춰서 표현했다.
시즌2에서도 선자의 의상이 여전히 수수하긴 하지만, 작은 꽃무늬가 들어간 셔츠 등 약간의 멋부림이라든지 위트같은 것도 보인다. 이 드라마가 의상 고증을 굉장히 열심히 했지만 어느 정도는 영화적이고 예술적 미학을 위해 타협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봤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여지지 않기 위해서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당시 최하위층이 입던 옷이나 자이니치 사진집도 보고. 오사카라는 곳이 생각보다 여성들이 서양 옷을 입는 것도 그렇고, 조금 예쁘게 입었달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눈이 좀 더 클래식한 걸 아름답게 보는 정도의 수준이지 실제로 안 입었던 패턴이나 안 입었던 옷이 나오지는 않는다. 대부분 당시 사진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경희같은 경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스럽고, 희망을 갖고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여자의 마음 같은 것들이 표현이 돼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말보다 보여지는 게 더 많은 옷과 소재(fabric)로써 그런 걸 경희에게 더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우리도 같이 사는 사람을 좀 닮아가기도 하잖나. 경희와 함께 사는 선자도 그렇다.
"파친코" 특히 시즌1 전반부에 나오는 의상들을 보면서 한복이 거칠긴 하지만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한복들은 공산품 옷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예적이고 수공업적인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는데다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느낌을 정확하게 받았다면 너무 보람을 느낀다. 한복은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직접 손으로 만든 옷이다. 대지의 색깔("earth tone")이라고 할 수 있는 컬러들이나 자연스러운 구김, 축 걸친 듯한 느낌이 저희 팀의 콘셉트였다. 요새는 심지어 사극에서도 그냥 막 다려지고, 똑바른 의상들이 많이 나온다. 서양 옷들도 많이 그렇게 돼있고. 그런데 우리 옷은 곡선적이고, 자연 원단의, 색깔도 꼭 맞추지 않고 덜 물든 것 같은 옷에… 그리고 계속 빨았다, 한국 사람들은. 빨아 입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 그 어떤 옷보다 내추럴한 게 한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살리기 위한 노력했다. 합성 섬유나 공장에서 할 만한 것들은 쓰지 않았고, 한복 치마도 그냥 무거운 면으로 했다. 속치마 입어서 비칠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겁게 떨어지는 면으로 만들어 실제로 많이 빨았고. 그거야말로 "파친코"의 작가가 강조했던 진정성이 보여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한복이 진짜 예뻐서 그렇게 보여졌던 거라고 생각한다.
시즌1과 시즌2를 통틀어서 가장 어렵게 작업한 옷과 가장 애착이 가는 옷을 하나씩 꼽는다면?
제일 애착이 가는 옷은 선자가 시집갈 때 입었던 결혼식 한복과 일본으로 건너 갈 때 입는 파란색 두루마기다. 극중에서 선자의 어머니가 선자에게 직접 만들어 준 옷인데, 우리도 두루마기는 누빔 하시는 분이 선자 어머니처럼 직접 손으로 다 누벼주셨다. 그 분이 두 벌 누비는데 한 달 반 걸렸다.
이 드라마는 선자에게 바치는 이야기로서 선자의 의상 변화가 아주 중요하다. 선자의 옷은 어떻게 달라지나
한복에서부터 시작한 게 "파친코"이고, "파친코"에서 한복은 엄마의 사랑이나 고향을 상징한다. 한복을 입던 선자는 독립하면서 조금씩 한복을 벗기 시작하고 오사카에 적응하면서부터는 점점 더 일본 옷을 입게 된다. 처음에는 서양 옷을 입던 동서 경희(부자집 딸 출신)의 옷을 조금씩 얻어 입다가, 여성적인 서양 옷을 입던 경희와 달리 어깨도 각지고 힘이 있는 옷을 입는다는 콘셉트인데, 전쟁통에 두 여자가 자식들을 이끌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서 둘 다 일본 옷을 입고 농사일을 하게 된다.
옷에는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가 있다. 선자가 겪는 상황, 선자가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는 정도에 맞춰서 표현했다.
시즌2에서도 선자의 의상이 여전히 수수하긴 하지만, 작은 꽃무늬가 들어간 셔츠 등 약간의 멋부림이라든지 위트같은 것도 보인다. 이 드라마가 의상 고증을 굉장히 열심히 했지만 어느 정도는 영화적이고 예술적 미학을 위해 타협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봤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여지지 않기 위해서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당시 최하위층이 입던 옷이나 자이니치 사진집도 보고. 오사카라는 곳이 생각보다 여성들이 서양 옷을 입는 것도 그렇고, 조금 예쁘게 입었달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눈이 좀 더 클래식한 걸 아름답게 보는 정도의 수준이지 실제로 안 입었던 패턴이나 안 입었던 옷이 나오지는 않는다. 대부분 당시 사진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경희같은 경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스럽고, 희망을 갖고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여자의 마음 같은 것들이 표현이 돼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말보다 보여지는 게 더 많은 옷과 소재(fabric)로써 그런 걸 경희에게 더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우리도 같이 사는 사람을 좀 닮아가기도 하잖나. 경희와 함께 사는 선자도 그렇다.
"파친코" 특히 시즌1 전반부에 나오는 의상들을 보면서 한복이 거칠긴 하지만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한복들은 공산품 옷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예적이고 수공업적인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는데다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느낌을 정확하게 받았다면 너무 보람을 느낀다. 한복은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직접 손으로 만든 옷이다. 대지의 색깔("earth tone")이라고 할 수 있는 컬러들이나 자연스러운 구김, 축 걸친 듯한 느낌이 저희 팀의 콘셉트였다. 요새는 심지어 사극에서도 그냥 막 다려지고, 똑바른 의상들이 많이 나온다. 서양 옷들도 많이 그렇게 돼있고. 그런데 우리 옷은 곡선적이고, 자연 원단의, 색깔도 꼭 맞추지 않고 덜 물든 것 같은 옷에… 그리고 계속 빨았다, 한국 사람들은. 빨아 입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 그 어떤 옷보다 내추럴한 게 한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살리기 위한 노력했다. 합성 섬유나 공장에서 할 만한 것들은 쓰지 않았고, 한복 치마도 그냥 무거운 면으로 했다. 속치마 입어서 비칠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겁게 떨어지는 면으로 만들어 실제로 많이 빨았고. 그거야말로 "파친코"의 작가가 강조했던 진정성이 보여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한복이 진짜 예뻐서 그렇게 보여졌던 거라고 생각한다.
시즌1과 시즌2를 통틀어서 가장 어렵게 작업한 옷과 가장 애착이 가는 옷을 하나씩 꼽는다면?
제일 애착이 가는 옷은 선자가 시집갈 때 입었던 결혼식 한복과 일본으로 건너 갈 때 입는 파란색 두루마기다. 극중에서 선자의 어머니가 선자에게 직접 만들어 준 옷인데, 우리도 두루마기는 누빔 하시는 분이 선자 어머니처럼 직접 손으로 다 누벼주셨다. 그 분이 두 벌 누비는데 한 달 반 걸렸다.
제일 힘들었던 옷은 한수(이민호 분)가 첫 등장할 때 입은 화이트 수트다. 한수 첫 등장 때 화이트를 쓰기로 작가와 얘기가 됐는데, 사실 시즌1 내내 화이트 때문에 고민했다. 화이트도 종류가 굉장히 많다. 약간 아이보리도 화이트고, 화이트도 화이트고… 그리고 화면으로 보면 또 달라서 어려운 컬러다. 화이트 수트는 잘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정장지(地)로 화이트가 잘 있지도 않고. 드라마 속 한수의 수트는 굉장히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워야 해서 제가 각국에서 화이트지를 다 사봤다. 보통 화이트 수트를 입으면 속옷이 비치는데 한수가 입었던 수트는 컬러와 두께감 때문에 안 비친다. 실크와 울이 섞인 영국 원단인데, 영국지가 좀 두껍다. 우리는 화이트를 좀 다운시켜서 노란 빛이 돌면서 빈티지하게 보여지길 원했는데 의도에 맞게 나왔고, 시즌1 예고편이 나왔을 때 보면서 너무 짜릿했다.
할리우드 프로덕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작가이자 쇼 러너인 수 휴(Soo Hugh)는 잠을 안자는 여자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고 했는데
할리우드라고 하면 일은 조금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이런 걸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걸 원해서 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스태프가 진짜 많아서 작은 일에도 백 명씩, 천 명씩 붙어서 일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제가 작품하면서 좋게 봤던 쇼 러너나 프로듀서들은 일 안하고 있는 시간이 거의 없더라. 연락이 안되는 시간도 없고. 메일이 오는 시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수 휴는 하루에 서너 시간 잔다고 하더라. 아트 디렉터도 새벽 4시면 벌써 사무실에 나와있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 팀원들이 오면 함께 작업을 하고. 그래서 열심히 일해 최고가 된 사람들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알고 많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일해야겠다고 느꼈다기보다는 저 노력이 저만큼을 만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의상팀에서도 사람만 뽑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한국이 힘든 게 의상 감독이 할 일이 너무 많다. 옷만 하는 게 아니라 예산도 해야 하고 사람도 충원해야 하고 기타 조율해야할 게 많아서 옷에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의상팀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가 있다. 그 사람이 누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느 날은 촬영이 얼마나 있으니까 사람을 더 쓰고, 이런 걸 주로 관리하고 필요할 때는 저와 상의한다. 도움이 많이 돼서 시즌2 때는 슈퍼바이저를 더 세심하게 뽑았다.
디지털로 촬영했지만 필름 스타일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 "파친코"라는 평가가 있다
독일인 촬영감독 플로리안이 계속 질감 얘기를 했다. 의상의 질감까지 다 살아서 보일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삼베도 더 일으켜서 솜털이 더 살 수 있게 하는 작업 같은 것들을 많이 했다. 최근에 어떤 다른 배우가 화면에서 그게 살아 보였다고 하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보람을 많이 느꼈다.
"냄새가…(흑흑) 빨아가 다 사라졌어예…"
"파친코" 시즌1의 5화. 고향을 떠나 오사카에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선자가 막 세탁한 빨래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장면이 있다. 임신한 몸에 피곤한 나머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동서 경희가 선자가 고향에서 가져 온 옷가지들을 다 빨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더러워졌어도 홀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고향의 내음이 지워지지 않은 유일한 물건이 바로 옷과 보자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민진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지낼 때 선자라는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이 작가는 재일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장에서 한 여성의 일기를 읽게 됐는데, 어머니였던 그 여성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아이의 허리를 줄로 묶어서 돌아다닐 수 있게 하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그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그 여성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덧붙였다.
"그들은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하며, 문서로 남겨지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2023년 8월17일)
이민진 작가가 소설 "파친코"로 자이니치의 삶을 문자로 기록해 책으로 남긴 것처럼, 채경화 디자이너는 그 책 속에 있는 한복과 의상들을 진짜처럼, 정성껏 재현해 영상으로 기록해놓았다.
"시즌 1에서 선자의 결혼식 주례를 봤던 목사님이 있어요. 그분 두루마기를 실크로 만들었는데, 홍두깨로 두드려 만든 원단이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나온대요, 옛날 방식이어서. 그런 광택이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거나, 그런 감정이나, 옷의 질감이 저는 드라마에서 쌓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채경화 디자이너는 인터뷰 내내 "진정성", "진짜여야지 된다"같은 말들을 자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우를 설득할 수 없고, 입는 사람도 옷을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이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할리우드 프로젝트에서 배운 가장 큰 자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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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프로덕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작가이자 쇼 러너인 수 휴(Soo Hugh)는 잠을 안자는 여자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고 했는데
할리우드라고 하면 일은 조금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이런 걸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걸 원해서 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스태프가 진짜 많아서 작은 일에도 백 명씩, 천 명씩 붙어서 일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제가 작품하면서 좋게 봤던 쇼 러너나 프로듀서들은 일 안하고 있는 시간이 거의 없더라. 연락이 안되는 시간도 없고. 메일이 오는 시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수 휴는 하루에 서너 시간 잔다고 하더라. 아트 디렉터도 새벽 4시면 벌써 사무실에 나와있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 팀원들이 오면 함께 작업을 하고. 그래서 열심히 일해 최고가 된 사람들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알고 많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일해야겠다고 느꼈다기보다는 저 노력이 저만큼을 만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의상팀에서도 사람만 뽑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한국이 힘든 게 의상 감독이 할 일이 너무 많다. 옷만 하는 게 아니라 예산도 해야 하고 사람도 충원해야 하고 기타 조율해야할 게 많아서 옷에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의상팀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가 있다. 그 사람이 누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느 날은 촬영이 얼마나 있으니까 사람을 더 쓰고, 이런 걸 주로 관리하고 필요할 때는 저와 상의한다. 도움이 많이 돼서 시즌2 때는 슈퍼바이저를 더 세심하게 뽑았다.
디지털로 촬영했지만 필름 스타일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 "파친코"라는 평가가 있다
독일인 촬영감독 플로리안이 계속 질감 얘기를 했다. 의상의 질감까지 다 살아서 보일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삼베도 더 일으켜서 솜털이 더 살 수 있게 하는 작업 같은 것들을 많이 했다. 최근에 어떤 다른 배우가 화면에서 그게 살아 보였다고 하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보람을 많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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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가…(흑흑) 빨아가 다 사라졌어예…"
"파친코" 시즌1의 5화. 고향을 떠나 오사카에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선자가 막 세탁한 빨래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장면이 있다. 임신한 몸에 피곤한 나머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동서 경희가 선자가 고향에서 가져 온 옷가지들을 다 빨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더러워졌어도 홀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고향의 내음이 지워지지 않은 유일한 물건이 바로 옷과 보자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민진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지낼 때 선자라는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이 작가는 재일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장에서 한 여성의 일기를 읽게 됐는데, 어머니였던 그 여성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아이의 허리를 줄로 묶어서 돌아다닐 수 있게 하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그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그 여성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덧붙였다.
"그들은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하며, 문서로 남겨지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2023년 8월17일)
이민진 작가가 소설 "파친코"로 자이니치의 삶을 문자로 기록해 책으로 남긴 것처럼, 채경화 디자이너는 그 책 속에 있는 한복과 의상들을 진짜처럼, 정성껏 재현해 영상으로 기록해놓았다.
"시즌 1에서 선자의 결혼식 주례를 봤던 목사님이 있어요. 그분 두루마기를 실크로 만들었는데, 홍두깨로 두드려 만든 원단이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나온대요, 옛날 방식이어서. 그런 광택이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거나, 그런 감정이나, 옷의 질감이 저는 드라마에서 쌓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채경화 디자이너는 인터뷰 내내 "진정성", "진짜여야지 된다"같은 말들을 자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우를 설득할 수 없고, 입는 사람도 옷을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이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할리우드 프로젝트에서 배운 가장 큰 자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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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논설위원 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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