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추돌 후 '뒷목 뻐근' 보험금 줬는데…범퍼카 충격보다 약해

이하은 2024. 8. 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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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개발원, 자동차 충돌 사고 재현 시험 결과
'나이롱 환자'에 과다 보험금…전체 보험료 인상 불러
"보험금 산정 기준에 시험 결과 적용해야"

저속 주행 중인 차량과 부딪힌 경미한 사고의 경우 상해 위험이 극히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보험업계는 이같은 근거를 활용해 진료비 심사와 보험금 산정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5일 보험개발원은 2020~2024년 국립과학수사원, 연세대 원주의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자동차 사고 시 부상 위험에 대한 연구' 결과, 시속 10㎞ 내외로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에서 상해 위험이 거의 없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22일 김관희 보험개발원 시험연구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 충돌 사고 시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사진=이하은 기자

범퍼카보다 약한 충격…부상자 '0'

시험에는 20~50대 성인 남녀 53명이 참여했으며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에 탑승한 채로 진행했다.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이 많은 추돌, 접촉, 후진(주차 중) 충돌 사고를 재현했다.

시험 후 전문의 검진, MRI 촬영,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진행했고, 참여자 53명 중 이상 소견이 발견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차량의 경우 범퍼 커버, 도어, 백도어 등 주로 외장부품이 손상됐다.

김관희 보험개발원 시험연구팀장은 "시험 후 뻐근하다고 언급한 참여자는 있었지만,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충격량의 관점에서 다쳤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딪힌 자동차의 속도 변화는 시속 0.2~9.4㎞로 나타났다. 추돌사고는 5.5~6.7㎞/h, 접촉사고는 0.2~3.4㎞/h였다. 충돌 전후 속도 차이가 클수록 상해 위험이 큰데, 이같은 속도 변화는 범퍼카 충돌과 비슷하다. 같은 시험에서 범퍼카가 충돌했을 때는 5.8~6.6㎞의 속도 변화가 나타났다.

보험개발원은 "연간 약 5만 명이 범퍼카를 이용하지만 부상이 신고된 건은 한 건도 없다"며 "자동차는 범퍼카보다 탑승자 보호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속도 변화가 비슷하면 자동차 탑승자의 부상 위험이 더 적다"고 설명했다.

보험개발원이 진행한 자동차 충돌사고 시험 모습 / 사진=보험개발원

"의료적 판단 의존이 나이롱 환자 키워"

보험개발원은 이같은 공학적 시험 결과를 치료비 및 보험금 산정 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자동차 사고 시 탑승자의 부상 여부는 주로 의료적 판단에 의존한다. 피해자가 상해를 주장하고, 의료진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악용해 스치듯 발생한 사고에도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청구하는 '나이롱 환자'가 많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실제 최근 자동차 사고 경상자의 진료비가 급증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3년 교통사고 상해 등급 12~14급의 경상자 평균 진료비는 85만3000원으로 10년 전의 30만원보다 55만원 증가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쟁도 잦다. 보험연구원이 A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 민원을 분석한 결과, 보험금 관련 가해자의 민원은 2016년 21건에서 2019년 113건으로 52% 증가했다.

이같은 분쟁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면 결국 사회적 비용이 된다. 과도한 보험금 지급으로 전체 운전자의 보험료가 오르는 부작용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보험금 산정 시 의료적 검사 외에 자동차 충돌시험 결과 등 공학적 근거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험개발원은 "경미한 자동차 사고에서 보험금, 특히 진료비가 과도하게 증가해 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의료적 검사는 탑승자의 현재 건강 상태를 판단할 뿐, 사고와 부상의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후면 추돌 사고로 상해 주장 후 장기치료를 받았던 A씨 차량 모습. 2015~2021년 치료비로 1600만원이 발생했고, 이후에도 지속 치료를 요구했다. 법원은 보험사로 하여금 A씨에 위자료 50만원을 지급하고 더이상의 치료비 지급은 불필요하다고 판결했다. / 사진=보험개발원

공학적 분석, 제도화 가능할까

보험개발원은 제도화 방안으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등의 개정을 꼽았다. 현재 독일, 스페인 등은 공학적 분석을 통한 차량 속도변화 기준(8~11㎞/h)을 정하고, 해당 기준 미만일 경우 상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국내에서도 법적 분쟁 시 공학적 분석 결과를 이용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21~2023년 경미한 사고 관련 가·피해자간 소송 50건 중 48건에서 '공학적 분석에 기반한 상해위험 분석서'가 증거로 채택됐다.

A씨의 경우 자동차 사고 후 6년간 치료를 받으며 16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고, 추가 치료를 요구했다. 보험사가 이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상해위험 분석서를 인용해 A씨에게 보험사로부터 위자료 50만원을 받고 치료를 종결하라고 판결했다.

당장 제도화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전반적인 교통사고 진료비와 보험금 지급이 까다로워질 것이란 우려 등 사회적 반발이 예상된다.

다만 보험개발원은 공학적 근거에 대한 수요가 이미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보험개발원이 경미한 교통사고를 경험한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험금 관련 인식조사에서 85.6%가 탑승자 상해위험 판단에 공학적 근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는 가해자 540명, 피해자 540명, 가·피해자 420명이었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공정한 보상을 통한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쟁 해소, 운전자 보험료 부담 경감을 위해 공학적 근거가 활용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하은 (haeu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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