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축복기도’ 둘러싼 법원의 엇갈린 판단[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과 평화의 은총이 넘쳐나게 하소서. 아멘”
2019년 이동환 목사가 기도문을 읊었습니다. 평범한 축복기도입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기도를 이유로 결국 목사 자격을 박탈 당했습니다. 이 목사가 있던 곳이 ‘퀴어문화축제’였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는 결국 법원을 찾았습니다. ‘동성애 찬성·동조’라는 모호한 문구로 목사의 자격을, 교인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엇갈린 판단을 내놨습니다. 한쪽은 교회의 징계가 과하다며 이 목사의 손을, 다른 한쪽은 종교단체 내부 결정이라며 교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약 한 달 동안의 시차를 두고 내려진 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9년 이 목사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습니다. 이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소속 담임목사였습니다. 이 목사의 축복식은 곧바로 논란이 됐습니다. 이 목사는 2020년 10월 열린 재판위원회(교회 내 법원)에서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고, 2022년 10월 확정됐습니다(정직 판결).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목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2020년에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징계를 내렸습니다. 더 강했습니다. 2023년 12월 교인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출교’를 처분했습니다. 처분은 지난 3월 확정됐습니다(출교 판결).
이 목사는 정직 판결과 출교 판결이 부당하다며 각각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7월 출교 판결의 효력을 일시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에 대한 결정이 먼저 나왔습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1민사부(재판장 송중호)는 이 목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약 한달이 지난 8월 21일, 2년 정직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46민사부(재판장 김형철)는 교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종교단체 내부 징계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종교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교인의 국민으로서 일반적인 법률관계, 법률적 권리를 제한할 때만 한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2개 재판부는 첫 단계부터 다른 판단을 내놨습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1민사부(이하 출교 재판부)는 사안의 성격을 고려할 때 법원의 개입 대상이라고 봤습니다. 먼저 출교 재판부는 ‘출교’ 처분의 함의가 중대하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권징결의(출교 처분)에 중대한 절차상·실체상 하자가 있는지 본안소송에서 다툴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인다”며 “범과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 해도 출교처분까지 한 것이 비례의 원칙이나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목사에 대한 처분이 종교단체 내부의 불이익을 넘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제46민사부(이하 정직 재판부)는 개입할 이유가 없어 각하 판결을 내렸습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실체적인 내용에 대한 판단없이 곧바로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교와 정직 처분의 무게를 다르게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은 정직 처분이 후속으로 이어진 출교 처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이 목사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통상 각하 처분을 내리면 소송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직 재판부는 예외적으로 본안에 대한 판단도 길게 내놨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도 정반대였습니다.
정직 무효 소송과 출교 효력 정지 소송,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동환 목사측의 핵심 주장은 동일합니다. ①성소수자 축복기도를 동성애 찬성·동조로 규정하고 징계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며 ②이를 규정한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은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교리와 장정은 교회 내부 법 체계입니다. 감리회는 2015년 교리와장정 개정을 통해 제3조 8항을 추가했습니다.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동조 행위에 대해 정직·면직·출교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2015년 개정 당시에도 마약, 도박과 동성애 찬성·동조를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먼저 ‘출교 처분 일시정지’ 결정을 내린 출교 재판부의 결정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성애 찬성·동조를 이유로 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징계가 부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칩니다. 헌법,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감리회’의 추이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CNN 등에 따르면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지난 5월 총회를 열어 기존 교리와 장정에 있던 ‘동성애자 성직자 입회 금지’, ‘동성 결합 축하 시 교회 재판 회부 가능’ 등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또 “과거 출교 사례와 비교해도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정직 재판부가 예시로 든 목사 출교 사례는 ▷목사 신분으로 지속적 혼외 성관계 및 2차례 낙태 권유 ▷교회공금 96억원 횡령 등이었습니다.
반면 정직재판부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입법의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서 정한 교리와 장정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진다고 봤습니다.
동성애 반대 교단이 합의한 것이라면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직 재판부는 “피고와 같은 개신교 사회가 성소수자들의 수면 위 진출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기존 전통적인 개신교 사회에서는 창세기, 례위기 등의 성경 특정 구절을 동성애를 금하는 의미로 해석해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일부 교리 해석도 시도했습니다.
이 목사측은 정직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불복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목사는 “정직 2년이 끝났기에 실익이 없는게 아니다. 이런 판례들이 쌓이고, 저의 징계를 이용해 구성원들을 처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가 동성애 찬성·동조에 줄징계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서울 퀴어퍼레이드 축복식에 참석한 목사 6명이 같은 이유로 고발됐습니다. 또 이 목사에 대한 교회 재판이 부당하다는 성명서에 연서명한 목회자 137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이 목사는 출교 처분 ‘무효’ 소송 항소심도 진행 중입니다. 1심에서는 교회측이 소송에 응하지 않아 이 목사측의 승소로 일단락됐습니다. 출교 처분 효력 정지 소송에서 이 목사측이 승소하면서 교회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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