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 최초의 40-40 오타니? 1993년 시애틀 1순위 지명 A로드가 아니었다면[스조산책 MLB]

노재형 2024. 8. 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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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24일(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9회말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뒤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USATODAY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그래도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발견된다.

1993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무려 31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스타 둘이 드래프트 1, 2순위로 거론됐다. 한 명은 20년 넘게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다 선수 생활 막판 스테로이드 스캔들로 이미지를 구겼고, 다른 한 명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단명했다.

전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이하 A로드), 후자는 대런 드라이포트(이하 대런)다. 둘 중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당시 대런이 A로드보다는 위였다. 캔자스주 위치타주립대 3학년 대런은 메이저리그 즉시 전력감이었다.

대런은 1992년, 1993년 칼리지월드시리즈에서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끌었으며, 2년 연속 투수로 '퍼스트 팀 올-아메리칸(first team All-American)'에도 선정됐다. 1993년 NCAA 최고 선수의 영예인 골든스파이크어워드를 수상했고, 대학 3년 동안 26승5패, 261이닝, 평균자책점 2.24, 274탈삼진을 기록했다.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하드 슬라이더로 무장한 대런은 누가 봐도 전체 1순위 후보였다. 그런데 대런은 타자로도 매우 뛰어났다. 지명타자와 외야수를 본 그는 3년 동안 타율 0.316, 25홈런, 89타점을 때렸고, 3학년 때는 장타율이 0.709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A로드의 실력이 폄하될 수는 없었다. 플로리다주 웨스트민스터 크리스티안 스쿨의 스타 유격수였던 A로드는 3학년 때 33게임에서 타율 0.505, 9홈런, 36타점, 35도루를 마크하며 호타준족 및 5툴 플레이어 야수로 최고의 유망주였다. A로드는 미식축구에도 재능을 보여 마이애미대학의 장학생 스카우트 제의를 받가도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프로의 길을 선택했다.

시애틀 매리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AP연합뉴스

여기에서 또 살펴봐야 할 것은 당시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제도다. 1965년 시작된 드래프트는 2004년까지 40년 동안 AL과 NL이 매년 번갈아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직전 시즌 AL과 NL 최하위팀에 번갈아 1순위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얘기. 양 리그를 합쳐 일괄적으로 성적 역순으로 하는 지금 방식과는 달랐다.

199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권은 AL 최하위팀 차례였다. 직전 시즌, 즉 1992년 AL 최하위는 서부지구의 시애틀 매리너스였고, NL 최하위는 서부지구 LA 다저스였다. 그런데 성적은 시애틀이 64승98패로 63승99패의 다저스보다 좋았다. 지금 같았으면 다저스가 1순위 지명권을 행사했을 터.

어쨌든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시애틀은 모두의 예상대로 고등학생인 A로드보다 대학생 대런을 선택할 것이 유력했다.

드래프트 보름을 앞두고 스포팅뉴스는 '많은 스카우트들은 위치타주립대 구원투수 대런을 최고의 선수로 평가했다. 그러나 넘버원 픽을 가진 시애틀은 그와 계약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란 걱정을 해 과연 대런을 선택할 지는 알 수 없었다'며 '또 다른 톱 픽 후보인 마이애미 고교 유격수 A로드가 2순위 지명권을 가진 다저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예상했다.

6월 4일 드래프트 당일 LA데일리뉴스는 '다저스가 오늘 발군의 유격수 A로드를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은 대런에게 손을 뻗을 것이다. 대런이 9월에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것이라고 보는 스카우트들이 많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LA 다저스 대런 드라이포트. 로이터연합뉴스

이 때문에 다저스가 A로드와 이미 계약에 합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토미 라소다 다저스 감독은 LA데일리뉴스에 "A로드를 베로비치 다저타운에 초청했을 때 우리는 굉장히 친해졌다. 그와 그의 가족은 다저스의 선택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고 밝혔다.

A로드도 훗날 LA 타임스에 "루 피닐라 시애틀 감독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투수를 원하고 있었고, 대런은 메이저리그 준비를 마친 투수지만 난 아니었다. 그래서 난 다저스의 지명받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다저스와 기본적인 계약에 합의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드래프트 결과는 '1순위 A로드→시애틀, 2순위 대런→다저스'였다. 이후의 역사는 기록된 대로다.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 24일 다저스타디움에서 40홈런-40도루 고지를 밟았다. 4회말 시즌 40호 도루를 성공하고, 3-3으로 맞선 9회말 2사 만루서 끝내기 그랜드슬램을 터뜨려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40-40 달성자가 됐다. 앞서 40-40 클럽 회원 5명은 서로 다른 날짜에 40홈런과 40도를 마크했는데, 오타니는 특정 날짜와 경기에서 두 기록을 동반 달성했다. 모든 팬들과 언론이 열광하는 이유다.

다저스 선수로는 첫 40-40 기록이라고 한다. A로드는 1998년 42홈런, 46도루를 마크하며 역대 3번째 40-40의 주인공이 됐다. 1993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이 모두의 예상대로 대런을 택했다면, A로드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면, 오타니가 40-40을 달성한 첫 번째 다저스 선수가 아니었을 지 모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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