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살아도 암에 절대 안걸린다”···특별한 건강 비결 있다는 이들 정체는?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8. 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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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2] 죽을 듯이 먹어대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이 녀석은 좀처럼 아픈 법이 없습니다. 방탕하게 살아도 튼튼하기가 그지없지요. 노년에 접어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암’에 절대 걸리지 않는 걸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가 암에 쉽게 노출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녀석의 정체는 ‘코끼리’. 우람한 몸집에 코로 먹이를 먹는 모습이 귀여움을 자아내지만, 사실 이 녀석의 강점은 믿을 수 없는 건강함에 있습니다. 큰 몸집일수록 암세포가 생길 가능성이 큰 것이 의학적 상식. 어찌된 일인지 이 녀석은 암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칭하는 우리 인간이 암으로 고통받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조물주가 이 녀석에 엄청난 은총이라도 내려준 걸까요.

“암 그게 뭐예요.” 아프리칸부시코끼리. [사진출처=Muhammad Mahdi Karim]
세포가 많으면...암세포도 많다
“세포가 많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기존 과학계는 몸집이 큰 동물들이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여겼습니다. 세포가 많을수록, 그만큼 암세포로 변이될 여지가 많다는 분석이 기반이었습니다. 발암 확률이 세포 전체에서 일정하다면, 아무래도 고래와 같은 큰 동물들이 인간보다 더 암세포가 생길 확률이 높겠지요.

우주에서 미사일(암)이 무작위로 떨어졌을 때 태평양 작은 섬나라(작은 육체) 보다 광활한 러시아(큰 육체)가 맞을 확률이 더 높은 것처럼요.

개의 경우 몸이 큰 종일 수록 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메리 블룸, 미국애견협회
영국의 의학통계학자 리차드 페토의 생각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개를 봐도 그렇습니다. 소형 품종보다 대형 품종이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증명됐습니다.

우리 인간을 보더라도 다른 환경적 요인을 통제한 뒤 실험한 결과, 키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보다 암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이 드러났었지요(작은 키는 더 이상 루저가 아닙니다). 키와 암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발견된 셈입니다.

“큰 키가 뭐 어쩌고 저째.” 20세기 초 미국인 로버트 와들러는 키가 254cm 였다.
덩치 큰 동물 이상하게 암에 안걸리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할수록 통념과 반대되는 결과들도 잇달아 도출됐습니다. 세포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실험용 쥐가 인간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암이 발생하는 것이었지요. 쥐의 암 발병 빈도를 인간에게 적용했다면 우리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을 정도였습니다.
“저 덩치 큰 놈들은 어떻게 저리 건강하댜...” [사진출처=Amirekul ]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코끼리나 고래와 같은 거대한 동물들의 암에 전혀 걸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같은 종끼리는 신체가 클수록 암이 더 많이 발생하는데, 다른 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신체 크기와 암 발생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1975년 이를 처음 발견한 학자 페토의 이름을 딴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입니다.
“암은 인간들이나 걸리는 것이지~ ” 고래도 암에서 자유로운 동물로 여겨진다. 남방긴수염고래. [사진출처=Michael Catanzariti]
암에서 자유로운 코끼리에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다
“그들에겐 특별한 비결이 있다.”

이 역설을 설명할 요인을 찾기 위한 학자들의 연구가 줄을 이었습니다. 2015년 마침내 페토의 역설을 설명할 유의미한 논문이 발표됩니다. 유타 대학교 소아 종양학과 조슈아 쉬프만이 주도한 연구팀에 의해서였습니다. 동물원에 찾아간 연구팀은 코끼리 혈액 표본을 구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건강관리? 그까이꺼 대충~” [사진출처=Muhammad Mahdi Karim]
이들은 한 유전자를 주목합니다. ‘TP53’으로 불리는 녀석이었습니다. 1979년 발견된 TP53은 신체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포나 DNA가 손상을 입으면 작동해 세포를 복구하거나 이상세포를 제거합니다. 우리 신체 내에서 병원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게놈의 수호자’로 불리는 배경입니다.

연구팀은 코끼리 신체 내에 20쌍의 TP53을 발견합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1쌍보다 무려 20배나 많은 셈이지요. 코끼리 세포 수는 100조개. 인간의 37조개에 비하면 2.5배 정도 많습니다. 그에 비해 이를 보호하는 ‘병원 시스템’은 20배나 많으니 건강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상 세포가 발견된 즉시 TP53이 출동할 테니까요.

“내가 신으로 숭배되는 이유가 있지 촤하하.” 힌두교 코끼리 신 가네샤. [사진출처=J.Ash Bowie]
인간의 신체 내 병원 시스템은 코끼리에 비하면 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1쌍의 TP53이 37조개 세포를 관리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립니다. 이 한 쌍이 고장이 나기라도 하면, 인간은 난치병에 직면합니다. 실제로 암 환자 중 50%는 TP53에 이상이 생긴 경우로 추정됩니다. 메스와 청진기가 없는 의사가 환자들을 책임지는 것과 같은 셈이지요.
‘게놈의 수호자’ TP53
이제 우리 질문은 코끼리가 어떻게 수많은 TP53을 보유하게 되었나로 향합니다. 우리 인간도 그들처럼 많은 게놈의 수호자를 보유했다면 더욱 행복했을텐데요. 이 역시 ‘진화의 선물’로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세포가 더 많아지는 방식으로 진화할수록 더 많은 암세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 만큼 이를 방어할 체계 역시 함께 진화했다는 설명이지요. 실제로 코끼리의 고대 사촌 격인 매머드는 14쌍의 TP53을 보유했지만, 현생 코끼리는 더 많은 20쌍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체 건강 측면에서는 코끼리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보다 우월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보다 건강하다네 그려 허허” 코끼리 조상으로 여겨지는 팔레오마스토돈.
우리 인간은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 무릎 꿇지 않고 극복하면서 진일보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TP53을 활용한 암 치료법 연구에 나선 것이지요. 모든 세포를 사멸하는 기존의 항암 치료법은 부작용이 크지만, TP53을 재활성화하는 치료법은 신체에 무리가 덜합니다. 항암 치료에 저항성을 갖는 암세포들은 TP53에 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1689년 종양 제거 수술을 묘사한 그림. 인간은 오랜 역사동안 부단히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것도 마법의 요술봉은 아니어서 조기 노화 등의 부작용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기존 치료법보다 진일보한 건 분명하지요. 의학계에서는 TP53을 활용한 치료법이 5~10년 안에 개발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미물에게서도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류 모두가 암으로부터 해방되는 날, 인간과 코끼리가 함께 미소 짓고 있기를. 그 때까지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를.

“나한테 잘 배우드라고. ” [사진출처=Charles J. Sharp]
<세줄 요약>

ㅇ세포가 많을 수록 암에 걸릴 가능성도 높은 것과는 다르게 코끼리는 인간보다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

ㅇTP53, ‘게놈의 수호자’로 불리는 세포가 인간보다 20배 많아서였다.

ㅇ암 정복의 장미빛 미래는 코끼리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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