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때 남산 끌려가 특허 포기한 발명가···“유족에 7억 배상”
박정희 정권 때 염색 관련 기술 특허권을 뺏긴 발명가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재판장 이세라)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를 발명한 고 신모씨의 자녀 2명에게 국가가 총 7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연된 이자까지 더하면 신씨 자녀들이 받을 돈은 총 23억6000여만원이다.
홀치기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직물 특수염색 기법으로, 신씨가 발명한 후 5년여 걸친 소송 끝에 1969년 특허권을 얻었다.
이후 다른 업체들이 해당 기술을 모방하자 신씨는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1972년 5월 1심 선고에 따라 5억2000여만원을 배상받기로 한 상태였다.
하지만 항소심이 진행되던 때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신씨를 남산 분실로 끌고 갔다. 수사관들은 방송사 기자를 사칭해 인터뷰를 하자고 꼬였고 신씨를 구금한 뒤 폭행과 협박을 했다. 이 과정에서 신씨는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고 특허권을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각서를 받은 항소심 재판부는 ‘소 취하’를 이유로 소송을 종결했다.
신씨가 당한 일의 배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가 연행되기 전날 열린 수출진흥 확대회의에서 홀치기 수출조합이 상공부 장관에게 “민사소송 판결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건의했고, 이를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이 수출업자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남산 분실에서 풀려난 신씨는 되려 허위공문서 작성죄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처분을 받았다.
신씨는 2006년 11월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각하됐다. 그는 명예 회복을 하지 못 한 채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족이 다시 신청해 지난해 2월 2기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고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신씨는 불법 감금돼 심리적, 육체적 가혹행위를 당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소 취하서에 날인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신씨는 자녀가 재차 진실규명을 신청하기 전에 사망해 생전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좌절됐다”며 “공무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일어날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신씨가 1972년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해 받기로 한 5억2000여만원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고려해 총 배상액을 산정했다고 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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