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91)"온 정신 쏟아낸 인내의 결과물"…망건 제작 명맥 잇다
"조상들이 의관 정제하며 몸소 실천한 마음가짐 잊지 않길"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에 사는 전영인(55) 선생이 지난 9일 국가무형유산 망건장(網巾匠)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외할머니인 고(故) 이수여(2020년 97세 일기로 별세) 망건장 명예보유자, 어머니 강전향(81) 망건장 보유자에 이어 3대(代)째 망건을 제작하는 전통 기술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망건(網巾)은 조선시대 남자들이 상투를 튼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정리하기 위해 이마에 두른 머리띠다. 망건을 이마와 머리 뒤로 둘러 머리를 단정히 한 뒤 탕건(宕巾)이나 갓을 썼다.
망건은 말의 갈기나 꼬리털인 말총을 엮어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말의 고장' 제주에서 망건을 비롯한 관모(冠帽, 옛날 벼슬아치들이 쓰던 모자) 공예가 발달했다.
강전향, 전영인 모녀 망건장 보유자를 만났다.
"전통 잇게 돼 다행…책임·부담감도 커"
"할머니와 어머니가 해오던 일을 제가 이어가게 돼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한 일이에요."
지난 17일 제주시 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만난 전영인 선생은 국가무형유산 망건장 보유자로 인정된 소감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자그마치 37년간 기술을 연마한 끝에 과거 '인간문화재'라 일컬었던 망건을 만드는 장인(匠人)의 반열에 올랐다.
할머니를 무척이나 따랐던 전 선생은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가 망건을 만들던 모습을 지켜봤다.
이후 1987년 할머니가 망건장 보유자로 인정되면서 정식으로 기능을 전수받기 시작했고, 또 어머니인 강전향 선생이 2009년 망건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뒤에는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기나긴 시간 조금씩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평일에는 제 일 하며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가서 망건을 만들고…. 힘들긴 했지만 그게 제 일상이었고 그렇다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어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어머니 강전향 선생도 기쁘긴 마찬가지다.
강 선생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딸이 '이 일 안 하겠다'고 벗어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느냐"며 "그런데도 끝까지 (망건 일을) 받아들여 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서 (보유자로) 인정했으니 이제부터는 자기 몸 관리도 잘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며 "할머니(고 이수여 선생)도 그렇고 저 역시 보람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살았다. 딸도 이같이 살아가야 하고 그리할 것이라 믿는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전영인 선생도 망건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데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크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려운 삶을 살았던 그 옛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한 생계의 수단으로 망건을 만들었지만, 자신은 할머니부터 이어온 망건을 제작하는 전통 기술의 명맥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옛것이 빠르게 잊히고 사라지는 오늘날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이 어깨를 짓누른다.
전 선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그늘에 있을 때와는 그 압박감이 다르다"며 "망건을 만들고 제자를 발굴하는 등 전승 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내야 할까 하는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물론 저한테도 딸이 있지만 (딸이) 이어가려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선택"이라면서도 "딸이 하겠다고 하면 도움을 줄 것이고, 다른 일반인들이 와서 배우고 싶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과 인내…온 정신을 쏟아야 하는 작업"
망건을 만드는 일은 그리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망건은 윗부분을 졸라매는 당(살춤), 아랫부분을 졸라매는 편자(선단), 그물처럼 얽혀져 이마부분을 감싸는 '앞', 뒤통수를 싸매는 '뒤'로 구성된다.
이 밖에 계급을 표시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관자(망건 좌우에 달아 당줄을 꿰어 거는 단추모양 고리 장식)와 풍잠(망건 앞 중간에 달아 갓을 고정하는 반달모양 장식)을 매달기도 한다.
망건 제작은 망건을 졸라매기 위해 좁고 두껍게 짠 띠인 편자를 짜는 '편자짜기', 앞·뒤를 뜨는 '바닥뜨기', 굵은 말총으로 코를 만들어 줄을 거는 '당 걸기', 망건을 삶아 부드럽게 한 뒤 명주천으로 감싸 모양을 잡아주고, 관자를 다는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사용하는 말총은 짜기 전에 깨끗하게 씻고 항상 물에 적시거나 입에 물고 작업을 하는데, 이는 말총이 수분을 머금어야 부드러워져 작업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하나의 망건을 완성하기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린다.
배우는 과정도 길어서 일반인이 제작한다고 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온전한 결과물을 얻기까지 1년 넘는 시간이 들어간다.
이마저도 입문한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포기하고 만다.
강전향 선생은 "망건을 만드는 과정은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침착하게 온 정신을 쏟아야 하는 작업이자 인내의 결과물"이라며 "흐트러진 마음으로 하면 손이 맞지 않아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망건을 쓰는 일은 조선시대 남성들이 외출하기 전 의관을 정제(衣冠整齊, 의관을 바르고 가지런하게 하다)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그러나 고종 32년인 1895년 단발령 발표와 근대화, 현대화 과정에서 망건을 착용하는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전영인 선생은 오랜 시간 망건을 만들어오면서 옛 전통 관모 중 하나인 망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요즘 느리면 모두 답답해하죠. 인터넷 속도가 느려도, 음식이 늦게 나와도 조급해하고 답답해하곤 한다"며 "너무나 변화무쌍한 시대에 우리가 하는 일은 과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정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옛날 조상들이 의관을 정제하면서 몸소 실천했던 유교적 덕목,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다소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의 의미를 오늘날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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