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완벽 차폐로 '100억 미래' 꿈꾸는 연구소기업
원자력연 특허 기술로 제작한 라돈 차폐 도료, 올 연말 시장 진출 앞둬
출연연-중소기업 합작 '연구소기업', 일회성 기술이전 아닌 지속적 상호관계로
# 지난해 10월, 신축 아파트 40여곳에서 폐암을 유발하는 독성물질이 권고치 이상 검출됐다. 국제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이 물질의 이름은 '라돈'. 일상 속 호흡을 통해 폐에 흡착되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신축아파트에서 라돈이 잇따라 검출되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졌고, 건물을 지을 때부터 라돈을 차단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22일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만난 김갑수 해븐코리아 대표는 "페인트칠하듯 벽면에 바르기만 해도 라돈을 90% 이상 차폐할 수 있는 새로운 도료를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라돈 키퍼'라는 이름의 신제품으로, 기존 라돈 차폐 도료보다 코팅 지속력을 높이고 인체 유해성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중소기업 '해븐코리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과 손잡은 연구소기업이다. 원자력연으로부터 '라돈 차단용 조성물 및 제조 기술' 등 특허 5건을 이전받아 2023년 출범했다. 원자력연의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라돈 차단 물질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시제품을 제작 중이다.
라돈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방사성원소 '라듐'이 붕괴하면서 생성되는 기체다. 공기 중은 물론 지하수에도 소량 포함돼 있는데, 건물에 균열이 생기면 그 틈새를 통해 실내로 유입된다. 공기보다 무거운 성질상 밀폐된 공간에 갇힐 경우 짙은 농도로 축적될 수 있다. 주기적인 환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면 그나마 위험성을 줄일 수 있지만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여름철과 겨울철엔 환기만으로 역부족이다.
김 대표는 라돈 키퍼 시제품을 직접 팔뚝에 뿌리며 "친환경 소재를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직접 몸에 닿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이 나서 시범용으로 마련된 벽면 소재에 라돈 키퍼 시제품을 뿌렸다. 내용물은 하얀 액체 형태로 분사됐는데, 독한 페인트 냄새가 풍기리라는 예상과 달리 무취에 가까웠다. 김 대표는 "벽면에 바른 후 마르는 데까지 약 1시간 소요되고, 24시간 내 벽에 흡착돼 건물의 틈 사이로 유입되는 라돈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한양건설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오랜 기간 건설업에 몸 담은 김 대표는 "무엇보다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출연연의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했다는 데서 제품의 신뢰도를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븐코리아는 원자력연의 9번째 연구소기업이다. 원자력연에서 출범한 연구소기업은 해븐코리아를 포함해 정읍시에만 벌써 3곳이다. 원자력연의 제1호 연구소기업이자 대덕연구개발특구 최초 민관합작회사인 '콜마비앤에이치(BNH)'는 시가총액 1조원 규모 기업으로 성장해 연구소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가 됐다.
연구소기업은 단순히 연구원 출신 연구자가 창업하거나 연구개발특구 안에 설립된 기업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출연연이 기존 기업과 기술과 현금을 공동 출자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거나(합작 투자형), 기존기업에 기술을 현물 출자해 기존 기업을 연구소기업으로 전환(기존기업 전환형)한 기업이다. 일회성 기술이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출연연이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는 모델이다.
이렇게 설립된 연구소기업에게는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해주는 혜택이 제공된다. 출연연이 개발한 원천기술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사업화를 장려하기 위함이다. 단 조건이 있다. 설립 주체인 출연연은 연구소기업의 자본금 규모 중 10퍼센트(%)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1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연구소기업 자격이 사라진다.
2023년 특허 기술 5건을 해븐코리아로 이전한 당사자인 박종석 첨단방사선연구소 방사선융합연구부 책임연구원도 이날 참석해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연구자들도 자본금 규모 10%의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신기술을 개발, 연구소기업에 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는 좀 더 발전된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애쓰고,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이를 시장에 선보이고 다듬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오는 9월 라돈 키퍼 전용 생산시설을 추가로 설치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회사인 한양건설을 통해 시장에 진입한 뒤 점차 판매처를 늘릴 계획이다. 그는 "2028년엔 라돈 키퍼의 매출을 100억원까지, 2030년엔 약 200억원까지 올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정읍(전북)=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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