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장 ‘무한 탄핵’, 민주당의 ‘내로남불’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4. 8. 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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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尹-巨野 ‘방송전쟁’ 시작됐다] 야당 되면 “언론 중립”…‘정권 방패’ 유혹 뿌리쳐야

● 이진숙, 출근 사흘 만에 탄핵 초유의 기록
● 사유가 ‘尹 정권 향한 엄중한 경고’?
● 文 정권 방송 장악은 ‘역사’가 기억…‘내로남불’
● 집권 1년 만에 해치운 文 vs 3년 만에 나선 尹
● 전 정부 인사만 귀환시키는 여권도 책임
● 고대영 전 사장 위법 판결에 유감 표명 안 한 민주당
● 방송 ‘이용’에만 관심…‘국민의 방송’ 손 놓아서야

[Gettyimage]
8월 2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 의원들만 참여한 이날 본회의는 이 위원장 탄핵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총 투표수 188표 가운데 찬성 186표, 반대 1표, 무효 1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이에 따라 이 위원장은 7월 31일 취임한 지 사흘 만에 직무가 정지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 상식적 사람이라면 대체 이 위원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야당은 그에 대한 탄핵 소추까지 불사했는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 소추의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아무리 '악한(惡漢)'이 방통위원장이 됐다 한들 헌법에서 규정한 '위헌'이나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한다면 헌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중대한 문제다. 여야 양측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총선 결과도 외면한 채 방송 장악을 멈출 생각이 없는 윤석열 정권에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계속 전달하기 위해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한 이 위원장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경고를 전달하기 위해 탄핵을 한다는 것은 탄핵이라는 제도에 대한 몰이해 혹은 무시라고 할 수 있다. 탄핵은 고위공직자의 위헌이나 위법행위를 심판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정치적 경고'를 날리기 위해 있는 제도가 아니다.

헌재 손에 달린 이진숙의 운명

8일 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물론 김 의원이 이 위원장의 위법행위를 지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제안 설명에서 "이 위원장은 임명 당일 회의를 소집하고 자신을 포함한 상임위원 2명만으로 공영방송 임원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서 2명만으로 의결을 강행하며 방통위 설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의제 행정기구를 독임제처럼 운영한 이 위원장의 위법행위를 용납한다면 행정 독재를 허용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김 의원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경고" 운운한 것은 탄핵의 요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이 위원장이 공영방송 임원 선임 안건을 의결한 것이 야당의 해석처럼 위법이냐는 점이다.

그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출근 첫날인 7월 31일 오전 이 위원장은 김태규 부위원장과 공영방송 이사 선임 관련 자료를 검토했다. 오후엔 회의를 소집해 8월 12일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새 이사진 임명 안건을 의결했다.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을 우선 임명하고, 나머지는 야권 추천 몫으로 남겨놨다. 또 임기 종료를 앞둔 KBS 이사회의 새 이사진 7명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이렇게 공영방송 이사진 임명·추천을 '속전속결'로 진행한 것은 찬반이 나뉠 수 있는 문제다. 야당이 이 위원장의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진 재편을 못 하도록 곧바로 탄핵 소추를 하려는 형국이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여권의 처지가 있을 것이고, 김 의원의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 나온 대로 그 자체가 위법행위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결국 '이진숙 방통위'가 두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재편한 것이 위법이었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탄핵소추안의 운명은 결판나게 된다.

탄핵 소추는 반전 기회

8월 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 광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재명·김두관·김지수 당대표 후보와 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회에 앞서 ‘이진숙 탄핵 공영방송 사수’ 피켓을 들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 위원장은 직무정지 상태로 지내야 하고, 방통위는 김태규 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하는 1인 체제가 돼버리고 말았다. 사실상 방통위가 마비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직무정지에 묶여버린 이 위원장의 대응이다. 이 위원장은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방통위원장으로서 거대 야당의 탄핵 소추라는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탄핵 소추의 부당함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탄핵 소추-자진 사퇴'의 악순환을 더는 지속할 수 없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끝내야 할 때"라고 했다.

이 위원장의 이와 같은 정면 대응은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자진 사퇴한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과 이상인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의 그것과는 기조가 퍽 다르다. 이 위원장으로선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이라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생각한 듯싶다.

이 위원장의 판단엔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그 나름의 자신감이 작용한 듯 보인다. 실제로 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지만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할지 낙관하긴 미지수다. 각자 처지에 따라 정치적으로야 비판할 수 있겠지만 방통위원 2인이 회의를 소집해서 공영방송 이사들을 임명하거나 추천한 것을 위법이라고 단정하는 건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에서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대응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중대한 법 위반은 없었다"며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선고를 내리는 데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일인지 여부가 아니라 위헌이나 위법행위인지에 대한 법적 판단임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이 위원장은 취임 사흘 동안 자신이 했던 행위에서 위법함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구해서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위원장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오직 법적 논리만 갖고 판단한다면 상황은 이 위원장에게 그리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文 정권 위법 판결엔 유감 표명 안 하더니…

8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 세력의 공영방송 장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방통위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무한 탄핵'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 현재 여당과 똑같은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1년도 안 돼 공영방송 이사들의 '강제적 해임'이 진행되고, 그에 따라 재편된 여권 우위 이사회를 통해 사장 해임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2018년 KBS이사회는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고대영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가결했다. KBS이사회는 보도 공정성 훼손 등 8개 사유를 들었고, 문 전 대통령은 곧바로 해임안을 재가했다. 고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임기를 10개월 남기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고 전 사장은 이후 대법원에서 해임 취소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KBS이사회를 여권 우위의 구도로 만들려는 과정에서 강규형 이사에 대한 해임도 있었는데, 이후 대법원은 강 전 이사의 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강 전 이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며 공영방송 이사회의 재편을 막기 위해 방통위원장들에 대한 연이은 탄핵소추안 발의를 해온 민주당이지만, 정작 자신들이 집권여당이었을 때도 공영방송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행위들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 대법원에서 문재인 정권 때 일들이 위법이었다는 판결이 나왔어도 유감 한번 표명한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공영방송을 여권이 장악하지 못하도록 막는 모습은 또 하나의 '내로남불'인 셈이다.

7월 말 민주당이 모두 통과시킨 '방송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6월 13일 방송4법을 만든 뒤 당론으로 발의했다. 방송4법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방송3법에 방통위법 개정안까지 더한 법안이다.

민주당은 현재 9~11명인 이사 수를 21명으로 대폭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직능단체 등 다양한 주체로 확대하는 방송3법을 만들었다. 여기에 5인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방통위법을 추가한 것이다.

방송4법대로 할 경우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에서 민주당에 우호적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는 점에서 여권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방송4법에 대해 "독이 든 사과를 내밀면서 왜 안 먹느냐고 하면 우리는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공영방송 사장을 비롯해 집행부에 대해 상당 기간을 허용해 줬다"며 "문재인 정부 초반 몇 개월 만에 KBS, MBC 사장이 바뀌었나 회고해 보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방송4법이 통과된 것을 비판하면서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방송4법은 문재인 정권이 민주노총 언론노조와 한편이 돼 장악한 공영방송을 민주당이 영구적으로 손아귀에 쥐겠다는 악법 가운데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현행법에 따라 이사를 구성해 놓고,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되니 방송 장악을 위해 친야권 노조 인사로 지배구조를 재편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때만 "언론 중립" 외치는 악순환

8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탄핵소추안이 재적 300인, 재석 188인 가운데 찬성 188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여당이던 문재인 정부 시절엔 공영방송의 경영진과 이사회를 장악하고,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숙제에 손 놓았던 민주당이다. 그러다가 다시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되니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우려를 부각하며, 정작 자신들이 누린 혜택은 기억에서 지운 모양새다. 결국 방송을 자기들 편의 것으로 만들려는 유혹 앞에선 여야가 매한가지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촛불정권'임을 자임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의 수혜자로서 안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와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그래서는 안 된다"며 '내로남불 훈계'를 하고 있는 꼴이다. 사실 집권 3년차가 돼서야 비로소 공영방송을 여권 우위의 구조로 만들려는 윤석열 정부보다도, 집권 1년 만에 모든 것을 해치운 문재인 정부 시절이 공영방송 장악 분야에선 한 술 더 뜬 것 아닐까.

물론 방통위 기능이 마비되고 방송 장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가열되는 데에 대해선 집권 세력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의 정상화 및 공정성에 대한 의지를 신뢰받으려면 자기편 사람들을 중용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인물들을 내세웠어야 했다.

다른 부처 인사에서도 나타났듯 윤석열 정부의 인재풀은 언제나 '그때 그 사람들'에 갇혀 있다. 국민들로부터 전문성 있고, 공정하며, 중립적 인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인물은 찾지 않은 채 정권의 편에 서 있는 과거 인물들만 중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야당 지지층으로부터 '공영방송 장악 기도'라는 반발을 초래하고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에도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어째서 윤석열 정부는 방송 쪽에서도 새로운 인물을 찾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과거 보수 정부 시절 인물들만 귀환시키는 안이한 모습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방통위원장에 대한 '무한 탄핵'이라는 비정상적 사태, 이로 인한 방통위의 기능 마비엔 여권 책임 역시 존재한다.

이렇게 여야가 공영방송과 방통위를 놓고 정치적 대결만 벌이는 사이 방송·통신·정보통신기술(ICT) 정책 수립, 미디어 다양성 증진 같은 미래를 위한 정책 현안은 방치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공영방송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관한 것뿐이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국민이어야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 간엔 공영방송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낯 뜨거운 쟁탈전이 벌어지곤 한다. 그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운 정치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공영방송 내부에서도 여야 편으로 갈려서 구성원들끼리 반목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권은 공영방송을 이용하는 데만 관심을 가졌을 뿐 중립적인 국민의 공영방송을 만드는 데엔 손을 놓아버렸다. 언제나 야당이 돼서야 "언론 중립"을 외치는 상황의 반복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방패로 만들려는 유혹과,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여야 모두 합의 가능한 합리적 대안을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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