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차등 인상’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정급여형은 유지하면서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예상도
[주간경향] 정부가 오는 9월 초에 ‘연금개혁 정부안’을 발표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개혁 정부안을 9월 초까지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현행 9%)과 소득대체율(받는 급여·현행 42%, 2028년 40%)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즉 모수(母數)개혁이다. 지난 5월 21대 국회 임기 말 여야는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기로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 43~45% 사이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모수개혁뿐만 아니라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정부안은 기초연금 인상안과 퇴직연금 개편안 등을 포함해 2가지 새로운 장치를 도입하는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2가지 장치는 지난 8월 중순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되 청년층과 중장년층, 세대별로 인상 속도를 달리 적용하겠다는 것이 하나다. 또 인구·경제 조건 등에 따라 납부액, 수급액, 수급개시연령 등을 조정하는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세대별 형평성 제고” vs “세대 간 갈라치기”
국민연금 의무가입연령은 만 18~59세다. 최소 가입기간(10년) 보험료를 납부하면 수급개시연령(올해 63세·2033년 65세)을 지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9%(직장가입자는 사측이 4.5% 부담)이다. ‘연령’에 상관없다. 지난해 정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2055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노인부양은 국가 및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고 국민연금이 주요 노후소득원이라는 점에서, 제도를 지속하고자 하면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한 일이다. 다만 보험료율이 급등하면 기가입자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미가입자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연금개혁을 위해선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데, 청년층의 제도 불신이 높은 편이다. 정부가 지난해 7~8월 국민연금 가입자 2025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개혁이 필요한 이유로 20대는 ‘장래 연금에 대한 확신’(38.3%)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해외 주요국 연금개혁 사례에서 연령별로 보험료율 인상을 차등 적용한 적은 없었다.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나 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 등 국회·전문가 논의 과정에서 제안된 적도 없다.
이 ‘아이디어’의 출처는 문서상으로는 앞서 복지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이다. 당시 복지부가 보도자료에 별도로 첨부한 자료에는 ‘청년층 간담회를 해봤더니 세대 간 부담의 형평성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정 연령 도달 시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수급 개시가 임박한 연령대 가입자를 대상으로 더 높은 보험료율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 등이 기재돼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보험료율 인상 목표는 13%다. 지난해 재정계산위가 만든 18개 시나리오 가운데, 2093년까지 기금 유지를 위해 비교적 적합한 안은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는 것이었다. 그사이에 있는 14%로 보험료율을 인상한다고 해보자. 현실적으로 1년에 4~6%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할 테니 해마다 0.5~1%포인트씩 올리는 방식이 유력하다. 세대별로 차등을 둔다면, 중장년은 14%까지 해마다 1%포인트씩 5년 안에 올리고 청년층은 해마다 0.5%포인트씩 10년 안에 올리는 방식이 나올 수 있다. 최종적으로 14%까지 오르는 것은 같지만 도달 시기가 다르니, 청년층은 초반에 상대적으로 낮은 인상률을 적용받는 것이다.
청년층 내부에선 의견이 갈렸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내부 토론을 짧게 했을 때 연금에 대한 세대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묘수라는 판단도 있고, 세대별로 그 안의 비정규직이나 저소득층 등 계층적 차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조치라는 평가도 있고, 한편으로는 청년세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를 위해서 대승적이고 사회연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청년층 일반적으로 워낙 ‘연금 보험료를 내는 것이 손해다’ 하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중장년보다 청년층 인상 속도가 더디다면 긍정적 인식이 많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설 경비업체에서 일하는 조규원씨(가명·28)는 “보험료 올리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긴 하는데, 부모세대가 내던 보험료와 지금 청년세대 보험료의 금전적 가치를 조율해서 인상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청년세대 보험료율을 천천히 올리더라도 소득이 천차만별이라서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인상을 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굉장히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하는 조치”라며 “청년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낮은 문제는 중장년층이 더 부담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부모세대가 국민연금으로 노후생계에 도움을 받는 부분을 보게 되면 (청년층에서도) 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김지연씨(가명·35)는 “부모세대도 돈벌이가 변변찮은 분들이 많다. 부담을 더 지게 하는 것이 맞을까”라고 했다.
국민연금 가입자 계층 간 형평성은 함께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 등 300여개 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오종헌 사무국장은 “세대 간 형평을 말하면서 계층 간 형평을 걷어차는 일이 아닌가”라며 “중장년층 안에서 비정규직, 저소득자, 자영업자들은 보험료 부담이 커지면 납부유예 등으로 무연금·저연금자로 갈 위험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해외 사례에서나 그간 연금개혁 논의에서 나온 적이 없다.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불필요한 논쟁만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세대 간 사회연대에 기반하는 사회보험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김성주 21대 국회 연금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 2023년 10월 3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도 있다. 최근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중장년층 세금으로 만들어진 청년 정책도 거둬들일 것인가”, “50대가 번 돈을 가정에서 혼자 쓰는 게 아닌데 왜 더 내야 하나” 등의 의견이 보인다.
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함으로써 개혁 동력을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가입자 내 연령대별 형평성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장년은 ‘높은 소득대체율에 높지 않은 보험료를 낸 기간’보다 짧은 기간 높은 보험료를 낸다. 청년층은 거꾸로”라며 “이례적이지만 충분히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고, 그 대신 여러 부작용을 막을 조치는 필요하다”고 했다. 중장년층 안에서 자영업자 등 도시지역 지역가입자도 농어민 보험료 지원처럼 정부가 보험료 절반을 지원하는 안,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지원을 위해 사회보험 두루누리사업(저소득 1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보험료 80% 지원)을 확대하는 안, 경력단절 여성 가입자 보험료 감면 제도 신설 등이 오 정책위원장이 제안한 정책들이다.
■“제도 재정안정 효과” vs “급여소득 감소 우려”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 현 확정급여형(DB)을 유지하되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거나, 확정기여형(DC)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다.
연금은 급여지급 방식에 따라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으로 구분한다. 받을 돈을 미리 정해놓는 게 확정급여형으로, 국민연금이 이 방식을 택한다. 확정기여형은 자신이 낸 보험료에 약간의 이자를 더해 받는, 말하자면 소득비례연금이다. 확정급여형도 자신이 낸 보험료에 따라 급여 수준이 정해지지만 국민연금은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값을 넣어 급여액을 결정한다. 즉 소득 재분배 기능을 지녀 가입자는 자신이 낸 총보험료보다 (이자 이상의) 많은 급여를 받는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DC형으로 전환하거나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안을 들여다본 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그에 따라 제도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하면 급여액이 급감할 수 있고, 국민연금 실질 소득대체율(20%대 초반)을 비롯한 한국의 노후소득 보장 수준을 따졌을 때 급여 적정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시민사회는 “용돈 연금을 푼돈 연금으로 바꾸려는 개악”(오종헌 사무국장)이라고 비판한다.
조규홍 장관은 국회 복지위에서 “노후보장도 중요하지만 연금이 고갈된다는 국민의 걱정이 크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제고해야 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자동안정화 장치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정부안은 확정급여형은 유지하되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안정화 장치로 기대여명(핀란드), 거시경제 슬라이드(일본)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핀란드는 기대여명이 늘어나면 총급여액은 고정돼 있지만, 월 급여액이 줄어든다. 2030년부터는 기대여명이 증가하면 수급개시연령을 늦추는 장치도 적용한다. 일본은 인구 조건(가입자 감소·평균수명 증가)이 안 좋아지면 급여액을 줄인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 자동조정 장치 도입 필요성 및 적용 방안’(성혜영 외·2023. 12) 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장치는 연금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유지·개선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비용, 잦은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급여 하락을 허용해야 하고, 급여 적정성을 맞추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국민연금에 ‘미적립부채’(암묵적 부채·지난해 1825조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동안정화 장치가 개혁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윤 연구위원은 “제5차 재정계산위 추계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40%로 두고 재정균형을 이루려면 보험료율은 19.8%까지 올려야 한다. 현실적인 사회·정치적 수용성을 고려해 보험료율을 15%로 올린다고 해도 미적립부채는 발생한다”며 “한국도 확정급여형(소득대체율 40%)을 유지하면서, 핀란드와 같이 기대여명을 적용하는 준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는 자동안정화 장치가 미래 시점에 적용될 것이고, 그사이 수급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는 등 제반 환경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기 위해 선행하거나 동시에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한국은 이미 법정 정년(60세)과 수급개시연령(올해 63세) 간 간격이 존재한다. 따라서 기대여명에 따라 급여액을 줄이거나 수급개시연령을 늦추려면 의무가입연령 상향, 정년 연장 등의 정책 전환이 동반돼야 한다. 윤 연구위원은 일본처럼 ‘퇴직 후 재고용’ 등의 방안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에서 자동안정화 장치를 다수 채택한 건 맞지만, 국민연금은 1988년에야 도입돼 현재 수급자들의 급여수준이 낮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안이 정확히 나오지 않아 추측이 어렵지만,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이 20%대 초반인 상태에서 급여액이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며 “정부가 ‘보장성을 놓치지 않고 가겠다’고 한다면 현재 급여수준을 지켜주기 위해 법정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말인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오건호 위원장은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은 연금의 재정균형이 이뤄진 상태에서 도입할 수 있는데, 한국 국민연금처럼 재정불균형이 심한 연금에 적용하긴 어렵다”며 “급격한 급여하락이 있을 수 있는, 강도 높은 개혁이라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선 공론화 과정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올 4월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은 학습·숙의를 거친 뒤 최종 설문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소득보장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재정안정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보다 더 선호했다. “노인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지금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게 공론화에서 국민이 확인을 시켜준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자동조정 장치를 도입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김연명 21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 지난 8월 19일, YTN라디오 <조태현의 생생경제>) 등의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은 국회 몫으로 미뤄왔다.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안이나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안도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 소득대체율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정해져야 논의가 구체적으로 가능해진다. 주은선 교수는 “정부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모수개혁안이 접점에 가깝게 이르렀을 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최소한 지난 국회의 개혁안 정도의 정합성·구체성·완결성을 갖춘 개혁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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