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남았는데 대책은 사라졌다

이재호 기자 2024. 8. 2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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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선언 뒤 코로나19 최대 규모 유행… 치료제 동나자 ‘뒷북’ 대응 나선 정부
2024년 8월16일 경북 경산시 한 약국에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가 동났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전북 전주에 사는 안아무개(84)씨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2024년 8월14일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갑자기 목소리가 잠기고 열이 나더니 체온이 38도가 훌쩍 넘었다. 운신이 어려웠다. 이튿날 근처에 사는 딸(51)이 타이레놀과 자가진단키트를 가져왔다. 검사 결과는 ‘양성’. 딸이 가져다준 약을 먹어도 몸살 기운이 가시지 않아 8월16일 인근 병원에 갔다. 의사는 자가진단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로 진단검사를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치료약을 처방하지도 않았다. 안씨가 사는 지역 인근에는 치료약(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이 동이 나버려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60살이 넘는 ‘고위험군’ 환자들은 치료약을 처방받아 증상이 발현된 뒤 5일 이내에 먹어야 중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안씨는 결국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여러 감기약만 잔뜩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8월17일엔 안씨의 아내 김아무개(81)씨도 감염됐다. 안씨의 딸은 한겨레21에 “부모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중증으로 발전하지 않을지 걱정이 됐으나, 치료제도 처방받지 못해서 너무 답답했다”며 “8월19일에는 나까지 코로나19에 걸려버려서 부모님을 도울 수도 없고 가족에게 옮기지 않을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재유행 부른 엔데믹의 역설

안씨 가족과 같은 코로나19 환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8월19일 질병관리청 발표를 보면, 코로나19에 걸려 의료기관(전국 병원급 이상 220곳 표본감시)에 입원해 있는 환자는 8월 둘째 주(4~10일) 기준 1359명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다. 질병청은 8월 마지막 주(25~31일)에는 주간 확진자 수가 35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코로나19 유행 종식을 선언한 뒤 1년3개월 만에 온 최대 규모의 유행인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한 정부의 준비가 부족해 의료체계에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재유행은 강한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 때문은 아니다. 질병청은 현재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KP.3)는 2021년과 2022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오미크론 계열 바이러스로, 특별히 전파력이나 치명률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신 전문가들은 지난겨울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재유행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엔데믹의 역설이다.

감염병 유행을 억제하려면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할 때 인구 집단이 감염되면서 면역력을 키우거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하지만 질병청 발표 자료를 보면, 2023년 동절기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는 60살 이상 고위험 인구의 40%가 참여해 상대적으로 높은 접종률을 보였으나, 2024년 4월15일 시작된 접종에는 접종률이 20%에 그쳤다.

이 때문에 2024년 초 800명 안팎을 맴돌다가 300명대까지 낮아졌던 코로나19 입원환자가 7월 들어 빠르게 증가했다. ‘기후붕괴’로 폭염 일수가 늘면서 실내 생활이 증가한 것도 환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 의존도가 높아졌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냉방기기를 사용하면서도 환기를 잘 하지 않아 바이러스가 확산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 이에 감염병의 관점에서 더는 겨울이 여름보다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은 옛말이 된 것이다.

감염 전문가들은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축포를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풍토병으로 전환되면 이후 1~2년 정도 대규모 유행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지난겨울에 유행 규모가 크지 않았으면, 인구 집단의 면역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다음 계절엔 유행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대응했어야 하는데 방역당국이 안이하게 판단한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고 있는 2024년 8월20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호흡기센터에 코로나19 발생 증가로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붙은 가운데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약 없는 약국, 치료주사 없는 병원

안이하게 판단한 정부의 책임은 환자와 의료기관의 몫이 됐다. 경기 김포시의 한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ㄱ씨는 2024년 8월5일 지역 보건소에 팍스로비드를 신청했다가 ‘재고가 없다’며 신청이 반려돼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팍스로비드를 처방하는 병원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더니 의료진도 난감해했다. 이후 이 지역 병원들은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팍스로비드 재고가 있는 약국을 찾으면 처방을 내주겠다’고 말했다. ㄱ씨는 “최근에는 자녀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부모를 위해 치료제가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수시로 오고 있다”며 “8월 셋째 주엔 지역 약국들에 5~6명분의 약이 각각 들어왔는데, 경기 파주, 충북 제천에서도 약을 사러 왔고 금세 동이 나버렸다”고 했다. 치료약을 수소문해줄 자녀가 없는 노인들은 약을 구할 방도도 없다.

치료약 품귀는 전국적이었는데,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실이 질병청에서 받은 ‘코로나19 치료약 수급현황’ 자료를 보면, 8월 첫째 주 기준으로 전국 약국과 의료기관의 치료약 신청량은 19만8천 명분이었지만 공급량은 3만3천 명분(16.7%)에 그쳤다. 질병청이 환자의 증가 속도를 과소평가하고 치료약 공급 계획을 안이하게 세운 까닭이다. 질병청이 매주 발표하는 코로나19 입원환자 현황을 보면, 이미 입원환자는 7월 초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주간 치료약 사용량도 6월 넷째 주(23~29일)에 1272명분에서 7월 다섯째 주(7월28일~8월3일)엔 4만2천 명분을 넘어섰다.

일부 병원에서는 치료약뿐만 아니라, 이미 중증이 된 환자의 증상을 완화할 렘데시비르와 같은 항바이러스 주사제도 동나고 있다. 경기도 시흥에 있는 신천연합병원의 백재중 내과 과장은 “코로나19 환자가 빠르게 느는 만큼 중증환자도 늘어 이들을 치료할 렘데시비르도 거의 바닥난 상황인데, 주사제(렘데시비르)마저 없으면 그때는 정말 우리 같은 중소병원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진다”며 “전공의 집단 휴직 이후 상급종합병원과 대형병원들이 중환자 전원도 거의 받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 환자를 전원할 수도 없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당초 정부는 2024년 4월께 국내 코로나19 치료약이 동날 것으로 예상하고, 이 시점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계획했었다.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되면 정부가 일괄적으로 구매하는 방식이 종료되고, 의료기관과 약국이 필요한 물량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난겨울 유행 규모가 크지 않고, 치료제는 바닥나지 않았다. 이에 방역당국은 급여 등재 계획을 11월로 미루고 치료약 추가 구매도 미룬 것으로 나타났다. 방역당국은 전국적으로 치료제 부족 사태를 겪은 뒤에야 부랴부랴 예비비 3268억원(치료제 약 26만2천 명분)을 확보해 치료제 추가 구매에 나섰다.

대형병원으로 중환자 전원도 어려워

현재 방역당국이 파악한 코로나19 유행 규모가 최소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의료 현장에선 검사해서 양성이 나와도 치료약을 처방해줄 수도 없기 때문에 코로나19 검사를 잘 하지 않고 있다. 경남 지역의 한 지역 거점 국립대학병원 관계자는 8월19일 “현재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면 양성률이 3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추가적인 검사를 하지는 않고 있다”며 “코로나19 환자가 너무 빠르게 늘어 1인실 입원 원칙을 폐기하고, 오늘부터 5인실에도 코로나19 환자를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환자 입장에서도 비급여 항목으로 3만~8만원에 이르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동기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액의 검사비를 내고 양성 판정을 받더라도 치료제를 처방받기도 어렵고, 직장을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종식 선언 이전에는 ‘양성’ 판단을 받으면 직장에서 유급휴가를 받고 쉴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증상이 발현된 뒤 3~5일 동안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2023년 8월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가장 낮은 단계인 4단계로 전환했고, 자가격리 의무도 사라졌다. 현재는 대부분의 직장이 코로나19에 감염돼도 휴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환자를 돌보는 의료기관 종사자들마저 코로나19 감염 이후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상병수당’ 역시 윤석열 정부의 코로나19 종식 선언 이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상병수당은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부상으로 일하지 못할 때 쉬면서 치료에 집중하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로 2020년 7월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협약 체결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하고, 2025년부터 정식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시행일이 2027년으로 미뤄졌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감염병 대응 단계를 낮추고 정부가 엔데믹으로 전환을 선언하는 것은 백신 접종이 잘 이뤄지고, 치료약이 충분히 전제돼야 가능한데 현재는 방역과 관련해선 정부가 없는 상태”라며 “코로나19 진단검사 비용을 정부가 책임져 접근성을 높이고, 치료제 공급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이 8월 말까지 예고된 가운데 2024년 8월20일 오후 경남 함안군 칠서면 칠서초등학교 이룡분교장에서 방역전문업체 직원이 살균·살충 등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대비’를

“오미크론 유행 이후인 2022~2023년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0.1% 수준이고, 특히 50살 미만은 0.01% 미만이므로 이번 여름철 유행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불안감이 커진 국민을 안심시키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치명률이 0.1%에 불과해도, 방역당국이 추산하듯 환자가 35만 명 발생하면 수천 명의 중환자가 생기고, 사망자는 350명에 이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학계에선 현재의 코로나19 유행이 추석 연휴까지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처서(8월22일)를 넘겨서도 더위가 지속해 냉방기기 사용이 줄지 않는 가운데 9월 초 전국의 학교가 개학하고, 9월 추석 연휴로 유동인구 역시 늘 것이기 때문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당장의 코로나19 확산세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올겨울이나 내년에 찾아올 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들어 코로나19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한 가짜뉴스 등이 확산하면서 국민의 접종 의지가 많이 떨어졌는데,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접종률을 높여야 내년에 또 발생할지 모를 재유행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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