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소대장은 왜 그토록 몸을 씻었을까 [독서일기]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강 펴냄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시온주의 운동가들은 중동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에 협력하면서 유대 국가의 기반을 쌓았다. 더 많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유입시키고, 그들만의 경제권을 만들고, 무장력을 키웠다. 라시드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열린책들, 2021)에 이렇게 썼다. “영국인들이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떠났을 때, 유대 국가기구를 새롭게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수십 년간 영국의 보호 아래 그런 기구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온주의 운동의 대표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일은 오직 무력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죠.
1947년 11월30일부터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영국군에 편제되어 있던 유대인 부대와 유대인 군사 조직은 곧바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마을을 공격했다. 시온주의 군사 집단은 1948년 봄,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아랍인 마을을 모두 파괴하는 ‘달렛 구상(Plan Dalet)’을 실행했다. 이 작전 가운데, 4월9일 예루살렘 근처 데이르 야신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은 유명하다. 시온주의 무장단체는 마을 주민을 거의 몰살했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개리 버지는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새물결플러스, 2019)에서 이 학살은 시오니스트들이 의도적으로 벌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저항하는 마을들은 ‘데이르 야신’처럼 될 거라는 선전 문구를 아랍 마을들에 뿌렸다.” 이때 팔레스타인인 30만명이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났어요.
이스라엘은 그해 5월14일 건국을 선포하고, 이튿날 유엔이 확정해준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을 추방하는 군사작전을 다시 벌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재앙)’라고 부르는 이날, 40만명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새로 생겼다. 라시드 할리디는 이스라엘 건국 전후에 벌어진 두 차례 팔레스타인인 추방을 나크바의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로 불렀다. 두 단계의 나크바에서 생긴 난민의 합계가 75만명이죠.
시오니스트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리 버지는 그들의 목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점령지(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인구는 이스라엘보다 두 배나 빨리 증가하고 있다. 점령 아래 살고 있는 38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050년경에는 1200만명이 될 것인데, 이유는 팔레스타인 여자들이 각각 다섯 명에서 여섯 명의 아이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은 약 두 명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은 겨우 800만명이 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벌인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의 여성과 아이를 죽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죠.
소대장을 문 벌레는 무엇이었을까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강, 2023)은 50년 세월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1949년 9월9일에서 13일에 이르는 닷새간의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건국 직후부터 1949년 2월까지 벌어진 아랍 연합국과의 제1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했다. 〈사소한 일〉 제1부는 그 뒤에 벌어진 이야기로 주인공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 남쪽의 이집트 접경지대를 지키는 이스라엘군 소대장이다. 이 주인공을 특별나게 하는 것은 강박에 가까운 위생 관념과 몸 씻기인데, 이것은 소대장을 신생국가 이스라엘을 체현하는 ‘정치적 몸(the body politic)’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국가를 인간의 유기적 신체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이 은유에 따르면 국가는 신체와 똑같이 병에 걸리고 병균에 오염된다. ‘전쟁=병’이고, ‘테러리스트=병균’인 것이다. 소대장의 위생 강박은 건국 이후 잠시도 안보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죠.
부하들에게 연설하기를 즐기는 소대장은 이스라엘군이 이곳을 지키는 이유로 이 쓸모없는 사막을 “교육과 발전과 문화가 꽃피는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모순되게도 사막을 수색하던 중에 샘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베두인을 죽이고(“어떤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일한 생존자인 베두인 소녀를 막사로 데려와 강간하고 살해한다. 소대장은 베두인 소녀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냄새” “모든 악취”로 채워진 짐승으로 묘사한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런 감각적 혐오(냄새)는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 지으려는 욕구와 관련된다고 말하며,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그런 감각적 혐오는 상대에 대한 편견과 폭력을 합리화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해요.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겠죠. 멕베스 부인의 손 씻기가 그랬듯이 소대장이 되풀이한 몸 씻기 역시 그의 죄의식을 나타낸다고.
소대장은 제1부 시작 부분에서 저녁을 먹고 막사에서 잠을 자다가 어떤 벌레에게 허벅지를 물린다(벌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1부가 끝날 때쯤, 그의 허벅지는 “분홍색과 누런색 고름”이 가득 고여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기게 된다. 그런데 제1부 최대의 수수께끼는 작가가 그 벌레의 이름을 끝내 특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 벌레가 막사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거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막사에는 다른 벌레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거미에게 물렸다”라고 적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번번이 벌레의 이름 대신 “물것”이라고 쓰는 걸까. 이 수수께끼는 이스라엘 안보가 처한 곤경과 모순을 보여주죠.
1988년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언했고, 다음 해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회원국 절대다수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정을 거부했는데, 이렇게 되면 형식 논리상 팔레스타인인의 군사행동은 무엇을 하든 테러가 되고 만다. 실제로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인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한다. 팔레스타인인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을 물어뜯는 ‘물것’인 셈이다. 여기서 안보 불안증(히스테리)이 생기는데, 이스라엘이 마주한 이런 곤경은 누가 만들었죠?
억울한 쪽은 정규군 지위를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팔레스타인 전사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하나. 팔레스타인 땅에 불법 건설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의 주민들은 절대 민간인이 아니다. 그들은 ‘일하며, 싸우며!’를 실천하는 가장 적극적인 약탈자들이다.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서 죽거나 사로잡힌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을 민간인으로 분류하지도, 인질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민간인 희생자가 아니라 전사자이고, 인질이 아닌 포로다. 제2부는 더욱 할 말이 많은데, 지면이 다했네요.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