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의 배에 제왕절개 자국이 선연했다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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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 어미는 젖을 물리려고 아기를 계속 찾아. 그러다 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미가 느끼는 절망감과 상실감, 그게 나도 보여, 눈에 확연히 보여. 못 하겠더라고,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 하재영 작가의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 나온, 개 번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다.
"번식업자의 손을 벗어난 그들은 도살업자의 손에 넘겨진다. 몰티즈, 치와와, 시추 같은 소형견은 개소주로 담가진다. 번식장 주인에게 그들은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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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 어미는 젖을 물리려고 아기를 계속 찾아. 그러다 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미가 느끼는 절망감과 상실감, 그게 나도 보여, 눈에 확연히 보여. 못 하겠더라고,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 하재영 작가의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 나온, 개 번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번식장 말이다.
지난 7월에 직접 가봤다. 전남 함평에 있는 번식장이었다. 30년간 강아지 공장을 운영해온 60대 주인이 몸이 아프다며 폐업한 곳이다. 불법 번식장이 있는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비좁은 철제 뜬장에 ‘엄마’ 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구멍이 뻥뻥 뚫려 발도 딛기 힘든 열악한 곳에 가두고, 강제 임신을 시키고, 배를 갈라 계속 새끼를 뺐다. 배에는 제왕절개 자국이 선연했다.
동물 구조 단체 네 곳이 힘을 합쳐 60마리를 구했다. 활동가는 “번식장 주인이 그나마 ‘마지막 양심’은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 표현이 적합한가 싶었으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고 납득했다. “번식업자의 손을 벗어난 그들은 도살업자의 손에 넘겨진다. 몰티즈, 치와와, 시추 같은 소형견은 개소주로 담가진다. 번식장 주인에게 그들은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돈이어야 한다.”
어렵게 구조된 개들을 20일 만에 만나러 갔다. 인천에 있는 동물 구조 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의 보호센터. 작은 발이 ‘뜬장’의 구멍에 빠지지 않는 땅. 더위를 피할 시원한 공기와 적당한 햇볕이 드는 공간. 갖고 놀 수 있는 딸랑거리는 장난감. 새끼를 낳는 기계처럼 여겨졌던 개들이 처음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실컷 놀던 개들이 쌔근쌔근, 안온한 낮잠을 잤다.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힘겹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복슬복슬한 ‘망고’가 뒷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었다.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가 말했다. “보호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자궁이 터진 아이들도 있었고요. 다리도 아프고, 종양도 거의 다 있고, 치료비만 최소 3000만원 이상이에요. 그래도 밥 잘 먹이고 영양제도 먹이니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30년간 새끼를 빼서 돈을 번 번식업자도, 불법으로 하는 걸 어찌 알겠느냐며 태연했던 지자체 공무원도 그 지경이 된 개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하필 그 존재가 눈에 띄어, 죽지 않게 하려고 하나하나 품에 안은 이들이 다 떠안아 감당하고 있다.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죄’ 하나로.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SNS에는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라는 요청이 넘쳐나지만, 모든 연민에는 뼈저리게 힘든 현실이 청구된다. 효율의 논리를 적용해 ‘적당히’만 번식장에서 데리고 올 순 없었느냐고 물었다.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가 말했다. “절대로 그 열악한 곳에 남기고 올 순 없었어요. 새 삶을 선물해줄 수 있기 때문에요. 우리가 잠깐 힘들더라도.” 그 말을 하며 이 대표가 쓰다듬던 개 ‘키위’가 기분 좋은 듯 꼬리를 흔들었다. 이름을 과일로 다 지었단다. 달콤새콤하게 잘 살라고.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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