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을 '행복의 나라'로 이끈 정인후란 '매력'[EN:터뷰]
※ 스포일러 주의
8월 극장가에서 조정석만큼 바쁜 배우가 있을까. 코미디 '파일럿'에서 여장남자 한정우/한정미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조정석은 이제 격변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변호사 정인후가 되어 관객들 앞에 섰다.
법정 개싸움 일인자인 변호사 정인후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거짓 상황도 스스럼없이 만들어내며 승소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게 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의 변호를 맡게 되고, 재판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더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대면하고 분노한다. 이에 정인후는 굴복하지 않고 정당한 재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정인후로 변신한 조정석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코믹한 이미지와 달리 진중한 모습을 선보인다. 때때로 특유의 능청스러운 듯한 모습도 엿보이지만, 정인후는 엄혹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이자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파일럿'을 본 관객이라면 '행복의 나라' 조정석은 어쩐지 낯설게 다가오는 동시에 그가 이토록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였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드라마, 영화는 물론 예능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중인 조정석은 지금을 두고 "앞으로도 없을" 시기라고 표현했다. 특히 극과 극의 캐릭터를 동시에 관객 앞에 선보일 수 있는 상황에 "내 연기 인생에 이런 일이 또 올 수 있을까"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웃음기 빠진 역할에 흥미를 느끼다
조정석이 '행복의 나라' 정인후를 만나 좋았던 건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역할들과 거리가 있는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그는 "웃음기가 빠진 역할이어서 나에게는 더 흥미로운 역할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는 "우리 영화가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사이 재판 과정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중간에 정인후라는 가공의 인물로 인해서 판타지 같은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정석이 말한 '판타지'는 바로 무려 3박 4일 동안 촬영한 골프장 신이다. 전상두(유재명)를 향해 할 말 다 하는 정인후의 모습은 폭력적인 권력을 향한 시민의 일갈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준다. 이러한 대리만족은 조정석이 골프장 장면을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다.
무엇보다 '행복의 나라'는 정인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다. 조정석은 이러한 정인후를 두고 '길잡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이 정인후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몰입하면 영화를 더 극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렇기에 조정석에게 중요한 것은 균형 있는 분배였다. 그는 "법정 신, 취조 신, 골프장 신, 엔딩 등 모든 흐름에 감정을 잘 분배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며 "북받치는 감정이 여러 곳에서 튀어나오는데, 그걸 흐름에 맞게 잘 분배하는지 등을 많이 생각하면서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감정의 분배에 중점을 두되 조정석은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다. 정인후의 감정이 충실히 쌓이면 관객들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감독님도 끝까지 중요하게 말한 건 배우의 감정이었다. 우리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배우의 진솔한 감정이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정석에게 중요한 건 '관객'
'행복의 나라'는 길잡이 정인후와 함께 박태주, 전상두 세 명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나아가는 영화다. 박태주를 연기한 이선균,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 모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다. 그러다 보니 조정석은 현장에서 두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배움이라는 게 누가 뭘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만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배우는 순간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라고 했다.
박태주로 분장하고 나온 이선균을 처음 본 순간, 조정석은 이선균이라는 배우에게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얼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선균을 향해 "이 영화 하길 너무 잘한 것 같다"라고 했다.
조정석은 "내가 대사를 할 때 여러 표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받아주고 리액션하는 상대 배우의 연기가 되게 어렵다. 그런데 (이선균 배우가) 그런 것들을 너무너무 잘해줬다"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주축 인물인 전상두로 변신한 유재명을 본 순간 조정석은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질투의 화신'에서 유재명 배우와 연기해 봤는데, 그에게서 볼 수 없는 눈빛을 발견하고 무서웠다"라며 "정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인후가 변호인단 상견례 이후 전상두와 복도에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찍으러 가면서 조정석은 속으로 전상두가 격분해 호통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됐을 때, 조정석의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유재명이 연기했다.
그는 "'어떻게 저런 눈빛으로'라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냉소적이면서 조소 아닌 조소도 느껴지는데, 그런 톤과 느낌으로 연기하는데 되게 놀라웠다"라고 했다.
이처럼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순간순간이 조정석에게는 배움으로 다가왔다. 조정석의 노력 그리고 배움의 시간이 모두 '행복의 나라'에 녹아 있다. 그런 만큼 조정석은 보다 많은 관객이 '행복의 나라'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는 "공연할 때 공연장에 관객 꽉 찼을 때 정말 짜릿하다. 많은 분이 우리가 하는 공연을 보며 웃고 우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즐겁다"라며 "그런데 무대에서 볼 때 관객이 별로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정석에게 제일 중요한 건 '관객'이다. 많은 관객이 자신이 연기하는 걸 볼 때 배우로서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어떠한 역할도 경계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다. 이번 '행복의 나라'의 정인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관객들이 '행복의 나라'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해보길 바랐다.
"우리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인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우리가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정인후가 누군가를 열심히 변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의롭다고 볼 수 없는 인물이 사람의 목숨은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전상두에게 말하잖아요. 그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한 번 새기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행복의 나라'로 뛰어든 사람들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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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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