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출산까지 계획”…‘수능 만점’ 의대생, 여친 살해 전말 [사건 속으로]
혼인무효 소송·이별 요구에 흉기로 20대女 살해
피해자父 “내 돈으로 병원 건물 얻으려 딸 조종”
피고인母 “아들, 졸업 막힐까 공포 휩싸여있었다”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의대생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드러났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병원을 운영할 건물을 마련하기 위해 내 딸을 이용했다”며 엄벌을 호소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지난 21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25)씨의 1심 두 번째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피해 여성 A씨의 아버지와 최씨의 어머니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씨는 지난 5월6일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 A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초 경찰은 오후 5시20분쯤 한 남성이 건물 15층 옥상에서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약 2분 만에 최씨를 구조했다. 이후 옥상에서 최씨를 데리고 3km 떨어진 파출소로 데려갔는데, 이때까지 숨진 여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구조 과정에서 흉기와 피해자 모두 발견되지 않았고, 최씨가 범행 직후 옷까지 갈아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경찰이 같은 현장에 다시 출동한 건 첫 출동 1시간20분쯤 뒤였다. 최씨가 “약이 든 가방을 옥상에 두고 왔다”는 진술을 토대로 현장을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A씨 시신을 발견, 최씨를 긴급 체포했다. 해당 진술 역시 최씨가 먼저 경찰 측에 말한 게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투신 동기를 묻는 경찰 추궁에 침묵을 유지하던 최씨는 경찰 설득으로 부모와 통화했고, 그제야 두고 온 소지품 등을 언급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0일쯤 전인 4월 중순, 최씨와 A씨는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이들은 지난 2월 다시 만나 교제를 시작했는데, 교제 두달 만에 혼인관계가 된 셈이다. 뒤늦게 혼인신고 사실을 안 A씨 부모가 ‘혼인무효’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반대하자 갈등이 시작됐다. 피해자 부모의 이별 요구에 피해자는 자해를 시도했고, 피고인도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이별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지난 5월 말 피해자에게 연락해 만남을 청했고, 그 자리에서 미리 계획한 범행을 저질렀다.
법정에 나온 A씨 아버지는 증인신문에서 “재판장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한 가지 사실이 있어 법정에 섰다. 최씨는 사회에 다시 구성원으로 돌아와서는 안 되는 중범죄자”라며 “최씨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나와 아내에게 혼인신고 사실을 말한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혼인신고 배경에는 돈 문제가 얽혀있었다. A씨 아버지는 “교제 기간동안 딸이 최씨를 만난 건 10차례도 안 된다. 최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혼인신고를 한 것”이라며 “최씨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 운영을 위해 건물이 필요했고 제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제 도움을 받기 위해 딸을 혼인으로 구속시켜뒀다. 이후 시나리오까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세뇌시켜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왜 살인에까지 이르렀을까. A씨는 올해 7월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하고, 사건 당시인 5월에도 회화학원을 다니는 등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씨는 A씨가 유학을 떠나는 상황에까지 대비했다고 한다. 먼저 혼인신고를 빌미로 A씨를 잡아둔 뒤 유학 도중 피해자가 일시 귀국하는 시점에 출산도 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피해자 부모에 들켜 계획이 틀어지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같은 날 최씨의 어머니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범행 당일 피고인이 나갈 때 잡아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죄송하다”며 “계속 말리다가 둘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좋게 얘기할 거라고 해서 제가 데려다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부모가 ‘딸이 집에 들어오면 혼인무효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해 집에서 나온 딸이 돌아가지도 못하고 제 아들 역시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며 “혼인신고 사실을 피해자 부모가 알게 된 뒤 유학도 못하게 됐고 모든 금전적인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피해자 어머니는 계속 피해자가 살 오피스텔을 알아보고, 이와 관련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까지도 메시지를 보냈다”며 “진짜로 피해자가 부모님이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간 것이 맞느냐”고 따져 물었다. 최씨 어머니는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비밀번호도 바꿨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고, 집에 들어가면 혼인무효 소송을 진행할 거라고 했다. 저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재차 답했다. 이어 “아들은 피해자 측이 혼인무효 소송을 걸어서 의대 졸업이 막힐까,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며 최씨가 사건 당시에도 불안증 약을 먹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들을 대신해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아들을 이렇게 힘들게 한 것을 비롯해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서울 소재 유명 의대에 재학 중이었으며 과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입학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의대 지원 이유에 대해 “롤 모델은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라고 하는 등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며 지난 2020년 한 차례 유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이 사건이 알려진 뒤 해당 학교로부터 재입학이 불가능한 ‘징계 제적’ 처분을 받은 상태다.
최씨에 관한 심리 분석 등을 실시한 결과 ‘폭력 범죄 재범 위험성 평가(KORAS-G)’는 높은 수준이었지만, ‘사이코패스 평정 척도(PCL-R)’는 사이코패스 진단 기준에 못 미쳤던 것으로 파악됐다. 증인신문을 모두 마친 재판부는 최씨 측 의견을 받아들여 최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진행한 후 다음 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최씨의 다음 공판은 10월7일에 열릴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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