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기분상해죄인가"…'정서적 학대' 운명은[세상을 바꿀 법정]
헌재 번번이 '합헌' 결정…법안 개정도 교육계 vs 복지계 팽팽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기분 나쁘면 고소하는 거죠. '기분 상해' 죄예요."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 사이에선 씁쓸한 농담이 만연해졌다. 정당한 생활지도에도 반감을 가진 학부모가 급기야 '기분을 상하게 했다'며 고소를 남발한다는 불만이 응축된 표현이다.
해석을 덧대면 이는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 정서적 학대 금지 규정의 모호함을 단번에 꼬집는 표현이기도 하다.
아동복지법 제17조는 금지 행위를 규정한다. 금지 행위 가운데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5호)가 명시됐다.
별다른 설명 없이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이라고만 적혀 있어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법 조항을 들고 지속해서 헌재 문을 두드리고 있다.
◇헌재 단골 된 아동복지법…"명확성 원칙 반하지 않는다" 합헌·각하
헌재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번번이 합헌·각하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14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A 씨는 해당 법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법 조항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추상적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당시 한 원생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원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혼자 복도에서 쭈그린 상태로 밥을 먹게 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헌재는 법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해석이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다양한 형태의 정서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함으로써 아동의 건강과 행복,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에는 또 다른 어린이집의 보육교사 B 씨, 2019년에는 학부모 C 씨가 같은 이유로 다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나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한 달 만인 지난해 8월에는 초등교사노동조합(초교조)이 헌법소원을 냈지만 각하 결정이 나왔다. 헌법소원 청구인인 초등학교 교사 D 씨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권 침해의 '현재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여러 차례 반복된 합헌과 각하 결정에도 교육계는 여전히 헌재를 찾고 있다.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특수교사 E 씨는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다만 이번에도 인용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시선이다. 교육지원청에서 근무했던 박종민 변호사는 "현실의 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다양한데 모든 상황을 법조문 안에 담을 수는 없지 않겠나"라며 "물론 정서적 학대의 의미가 모호한 측면이 있으나 대부분의 법률 용어가 그런 식으로 구성되고 사례를 통해 판례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적 학대 구체화하자" vs "아동학대 범위 축소"…법 개정도 난항
위헌 소송에서 나아가 법 개정 움직임도 활발하다. 여기서도 쟁점은 법안의 구체성이다.
교사 출신인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 '서이초 5법'을 대표 발의했다.
개중에는 정서적 아동학대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정서적 학대를 '반복적·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일회적이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는 행위'로 명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교사들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법안 발의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아동권리연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단체들은 "정서적 학대의 내용을 구체화할 경우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다"면서 법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단체들은 "아동학대의 범위를 축소하고 아동 권리 보호에 있어 중대한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사실상 피해 아동이나 그 보호자가 심한 정도를 입증할 책임을 떠안는다는 점에서 아동 학대 관계 법령의 입법 취지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복지계 반대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개정안은 당론에서 제외됐다.
익명을 요청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권과 아동 권리의 균형을 맞추면서 정서적 학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게 마땅치만은 않을 것"이라며 "갈등 국면으로 번지는 데는 양쪽 다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라 지지부진한 논의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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