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2018, 2024 다음은? 주기 짧아지는 ‘기록적 폭염’

양창희 2024. 8. 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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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삶으로 성큼 다가와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손에 잘 안 잡히는 기후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기 위해, KBS광주 뉴스7 제작진은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와 함께하는 <기후탐사대>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역대급 폭염을 나며 ‘광프리카’라는 별명이 생긴 광주의 여름 하늘.


예고편만큼 본편도 요란합니다. 올 여름 더위 얘기입니다. 올 여름은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더울 거라는 예측이 많았죠. 뚜껑을 열어보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역대급 폭염'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2024년 여름은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더위로 꼽히는 '1994년 폭염'과 '2018년 폭염'을 소환하는 중입니다.

■ '역대급 폭염' 소환한 2024년 여름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2018년 폭염입니다. 최강 더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1994년 폭염의 기록을 24년 만에 갈아치운 녀석입니다.

더워도 너무 더웠던 그해 여름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합니다. 농작물은 말라붙었고, 양식장은 폐사한 물고기로 뒤덮였습니다. 심지어 열기에 아스팔트 도로가 들뜨는 곳도 있었습니다.

2018년 8월, 폭염으로 바닥을 드러낸 금강. (출처 : 연합뉴스)


그런 2018년 폭염에 필적하는 게 올해 더위입니다. 특히 '열대야'는 올 여름이 더욱 심각합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최장 열대야 일수를 기록한 지역이 속출했습니다. 2018년에 세워진 기존 기록을 깬 겁니다. 제주 북부는 한 달 반이 넘도록 열대야가 지속되며, 밤에도 온도계가 25도 아래로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더위를 더 못 견디게 하는 건 '습도'입니다. 서울 기준 올해 7월과 8월(23일까지)의 상대습도는 각각 81%와 73%로, 2018년 같은 기간 67%와 63%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폭염일수나 온열질환자 숫자 등은 2018년에 못 미치기도 하지만, 올해 폭염이 2018년과 견줄 만큼의 대단한 더위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 주기 짧아진 '기록적 폭염'…"더울 확률이 높아진다"

다시 찾아온 역대급 더위,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주목하는 건 점점 짧아지고 있는 '폭염의 주기'입니다. 1994년 폭염의 기록이 2018년 경신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4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에 필적하는 2024년 폭염은 겨우 6년 만에 발생했습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4배 빠른 속도입니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윤 교수는 "여름이 끝나지 않은 만큼, 올해 여름이 2018년의 기록을 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1994년에서 2018년, 2018년에서 2024년의 시간이 굉장히 단축돼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당장 내년 여름이 더 덥겠냐고 물어보면 답은 못 드리지만, 더울 확률 자체는 굉장히 높아지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장기 기후 분석 작업을 해 온 기상학자인 윤 교수가 말하는 '더울 확률'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성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2030년 이후 '뉴 노멀'…매년 폭염 기록 바뀔 수도"

그렇다면, 올해 폭염의 기록은 또 언제 깨질까요? 2018년 여름쯤은 우스운 폭염이 매년 찾아오게 되지는 않을까요?

윤 교수가 주도한 한-미 국제공동연구팀이 올해 6월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 질문의 답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실 가스를 줄이려는 노력이 없다면 2030년대 이후부터는 매년 폭염 기록이 깨지는 '뉴 노멀'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점점 짧아지는 기록적 폭염의 주기.


날씨는 본질적으로 매년 요동칩니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에 비유해보죠. 가장 시원한 여름을 1, 가장 더운 여름을 6이라고 해 봅시다. 어느 때는 1이 나올 수도, 또 어느 때는 6이 나올 수도 있겠죠. 1994년과 2018년, 2024년 여름은 모두 6이 나온 상황일 겁니다. 이처럼 매년 자연스럽게 생기는 날씨 변동 즉, '자연적 변동성'은 인위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 온난화보다 폭염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자연적 변동성에 더해 지구 온난화까지 가속화돼 '더울 확률'이 높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손에 쥔 주사위 자체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1부터 6까지 있었던 주사위 눈이 3부터 8까지로 바뀌어 버린 겁니다. 주사위의 무게중심도 뒤틀려서 던질 때마다 높은 숫자만 반복적으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1~6 주사위에서는 꽤나 더운 여름이었던 '3'과 '4'는 어느새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느껴지게 되고,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7'과 '8' 수준의 더위는 그야말로 신세계일 것입니다. 새로운 일상, 이른바 '뉴 노멀'의 등장입니다.

윤 교수는 "연구팀의 계산으로는 2030년이 지나면 굉장히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 같다"며 "매년 폭염 기록을 갈아치운다거나 매년 계속 더워지기만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 "희망은 있다"…온실가스 줄이면 시나리오 달라져

지금도 버티기 힘든데, 더 심한 폭염이 일상화된다는 예측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워진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비관적인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윤 교수의 연구에서는 희망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온실 가스를 얼마나 저감하느냐에 따라, '뉴 노멀'의 등장 시기가 상당히 늦춰지거나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23일, 기후 소송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연구 결과, 온실 가스를 줄이려는 노력을 반영한 'SSP 245' 시나리오의 경우, '뉴 노멀' 도달 시점은 2040년대 중반 이후로 늦춰집니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아예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새로운 주사위가 아니라, 우리가 알던 1부터 6까지의 주사위가 그대로 손에 남아 있는 겁니다.

윤 교수는 "새로운 일상이 찾아오는 '출현 시점'(TOE, Time Of Emergence)을 예측하는 것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끝나지 않는 폭염…"더운 9월 될 확률 60%"

태풍이 지나가도, 처서가 지나도 더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습기가 더해지며 늦여름 피로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9월 예보를 보면 힘이 더 빠집니다. 기상청은 1개월 또는 3개월 단위로 장기 예보를 합니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다, 낮다, 비슷하다'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확률을 매기는 방식입니다. 통상적으로는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비슷하게 둔다고 합니다. '더 덥다 40%, 비슷하다 30%, 덜 덥다 30%'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오는 9월은 평년보다 더 더울 확률이 무려 60%로 예측됐습니다. 올해 기상청이 내놓은 3개월 전망에서 60%라는 숫자가 나온 건 9월이 처음입니다. 기상청 입장에서는 최대한 강하게 '더운 9월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셈입니다.

9월의 더울 확률을 60%로 예측한 기상청. (자료 : 기상청)


학창시절, 에어컨도 없던 여름 교실에서 더위를 이겨 보려 공책으로 부채질을 하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안 움직이면 금방 시원해질 테니까 기다려 봐." 가만히 있으니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땀을 식혀 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버티고 기다리는 걸로 더위에 맞설 수 있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5~6년 뒤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폭염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 역대급 폭염을 힘겹게 버티는 우리가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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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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