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수도권 전기고속도로' 서울 문턱서 막혀…"전력대란 우려"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 전기사용량 급증 속 송전망 대규모 확충 필요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원전 등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대규모로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해 추진 중인 국책사업 '전기 고속도로'가 서울 문턱에서 막힐 위기에 처했다.
수도권까지 200㎞ 이상 이어지는 동해안-수도권 초고압 직류송전(HVDC) 송전선로가 끝나는 길목에 있는 경기 하남시가 한국전력의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불허했기 문이다.
정부와 한전의 수도권 전력공급 확대 계획의 주요 축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자체 '불허'에 막힌 '동서 전기 고속도로'
2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하남시는 지난 21일 지역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한전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불허 처분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약 7천억원을 들여 2026년 6월까지 기존의 변전 시설을 옥내화해 확보한 여유 부지에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통해 들어올 추가 전기를 받아 수도권 일대에 공급하기 위한 HVDC 변환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초고압 송전망의 끝에 위치한 HVDC 변환소가 없으면 2026년 6월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막대한 재원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었는데, 정작 톨게이트에 차단봉이 내려진 것과 같은 양상이다.
발전소에서 만든 교류 전기는 발전소 근처 변환소에서 500kV(킬로볼트)의 초고압 직류로 바뀌어 200㎞ 이상 길이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타고 주 소비처인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이후 소비처 인근의 최종 변환소에서 다시 초고압 직류 전기를 배전망에 흘려보낼 수 있는 교류 전기로 바꿔줘야 한다.
정부와 한전은 수도권 전력공급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2026년 6월까지 동서 방향의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2036년까지 남북 방향의 서해안 송전선로를 첨단 HVDC 방식으로 설치하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한 상태다.
여러 차례 사업이 지연되는 등 진통 끝에 최근 건설이 가시권에 든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동해안 지역의 만성적인 송전 제약 해소를 위해 우선 추진됐다.
동해안 울진에서 시작된 선로는 경기 양평까지 200㎞ 넘게 이어져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신가평변환소와 동서울변환소를 각각 걸쳐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도록 설계됐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용량은 총 8GW(기가와트)로 이미 착공돼 건설 중인 신가평변환소로 4GW가, 동서울변환소로 4GW의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동서울변환소 건설이 불가능해지면 당초 계획의 절반인 4GW의 전기만 옮기게 된다. 즉 4GW의 발전력이 감소한 셈으로, 이는 설비용량 1.4GW인 최신 원전 3기가 만드는 전기를 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올해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총 17.9GW인데, 송전 가능량은 10.5GW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도 일부 발전소들은 설비를 놀리고 있다.
목표한 2026년까지 8GW 규모의 동서 방향 '전기 고속도로'가 가동되지 못하면 2030년 이후 울진에 건설될 신규 원전인 신한울 3·4호기의 전력망 연계도 어려워질 수 있다.
"동해 송전망 준공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한전 '법적대응' 예고
사업 주체인 한전은 기존 시설을 옥내화해 환경이 개선되고, 증설할 설비는 전자파 문제가 없는 HVDC 설비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남시의 이번 결정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어 한전이 법적 다툼에서 이겨도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완성은 계획된 2026년보다 한참 늦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저희가 느낄 때는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불허됐다"며 "최종 단계에 있는 변환소가 건설돼야만 송전선로가 최종 완공이 될 수 있어 (운영 시기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전동화 전환 가속 등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전기 고속도로' 건설이 차질을 빚어 전력 확대 공백이 길어지면 수도권에서 '전력 대란' 수준의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하남시의 결정이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줘 향후 국책 송전망 사업 진행이 힘겨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수도권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이는 수도권의 전기 수요 급증을 뜻하는 것으로, 전력 공급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현재 수도권 전체 전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GW의 전력 수요가 예상된다.
정부는 클러스터 가동 초기 용인 반도체 산단 내 3G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를 먼저 넣고, 나머지 7GW의 전력은 송전망을 확충해 동해안 원전과 호남권의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와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동해안-수도권 송전망 가동 문제는 장기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인프라 확보와 직결된다.
여기에 늘어나는 전기차, 폭염 등에 따른 냉방 등으로 국내 전기 사용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지난 5월 내놓은 전기본 실무안에서 2038년 국내 최대 전력수요가 129.3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유승훈 교수(창의융합대학장)는 "전력 네트워크는 어느 곳 일부만 안 되도 기능을 할 수 없다"며 "동해-수도권 송전망 준공 자체가 불가능해질 경우 수도권에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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