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피눈물 내는 '거래정지'…평균 438일, 100개 종목 10조원 묶여
거래정지 기간 단축에 시장 공감대…거래소, 연내 대책 마련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기자 =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거래정지 상태에 놓인 상장사가 총 100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시가총액을 합치면 10조원가량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438일이었고, 1년 이상 거래정지가 된 경우도 전체 절반에 달하는 50개사였다.
거래정지가 장기간 이뤄지면 투자자 보호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증시 활력을 저해하고, 투자자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거래재개 및 상장폐지 절차를 단축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한 용역을 발주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의 경우 현재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하는 방안이 골자다. 최종 대책은 올해 안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평균 438일 거래정지…3년 넘은 기업도 9개사
현재 거래정지 상태인 상장사는 총 100곳이다. 코스닥 기업이 74개로 가장 많았고, 코스피 21개사, 코넥스 5개사 순이다.
이들 100개사의 시가총액을 더하면 10조8천549억원 규모였다.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438일이다. ▲ 4년 이상 거래정지 3개사 ▲ 3년 이상∼4년 미만 6개사 ▲ 2년 이상∼3년 미만 9개사 ▲ 1년 이상∼2년 미만 32개사 ▲ 1년 미만 50개사였다. 1년 이상 거래정지된 상장사만 총 50개사다.
2020년 3월부터 거래정지가 된 이큐셀, 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 주성코퍼레이션은 거래정지 기간이 1천600일을 넘어섰다. 4년 넘게 자금이 묶인 셈이다.
주성코퍼레이션, 이큐셀의 시가총액은 각각 1천68억원, 2천165억원으로 합치면 3천억원이 넘는다.
거래정지 기간 투자자들은 해당 종목을 털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2022년 3월부터 800일 넘게 거래정지가 된 선도전기(코스피)의 한 주주는 "AI 수혜주로 전력주가 뛰어오른 것을 보면 속이 터진다"며 "거래재개만 기다리고 있다.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은 소액 주주 돈을 언제까지 묶어만 둘 것이냐"고 호소했다.
선도전기는 지난해 감사인 의결 미달로 인한 상장폐지 사유 해소가 결정됐지만, 횡령·배임 혐의가 추가 발생하면서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거래정지가 장기화한 각종 종목 토론방에는 "돈 묶어두고 이자는 붙여주느냐", "거래재개든 상장폐지든 빨리 팔고만 싶다" 등 토로도 나오고 있다.
코스피 최장 4년 심사…자금 묶인 투자자들 '희망고문'
거래소는 감사보고서 의견거절, 자본잠식, 매출액 미달, 횡령 및 배임 등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바로 상장폐지를 시키지는 않는다.
통상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를 통해 해당 기업의 영업지속성, 재무건전성, 경영투명성 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한다. 이후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업에도 증시 퇴출 전 충분한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이러한 장기간 개선 기간이 부여된다.
문제는 이 개선 기간이 코스피의 경우 최장 4년에 달한다는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2심제(기업심사위원회→상장공시위원회), 코스닥시장에선 3심제(기업심사위원회→1차 시장위원회→2차 시장위원회)로 실질 심사가 이뤄진다.
장기간 심사를 거쳐도 상장폐지 결론이 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 경우 투자자에게 최종 매매기회를 주기 위해 정리매매 기간이 부여되는데, 통상 보유한 주식 가치는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이 많다.
장기간 거래재개를 기다려온 투자자에게는 '희망고문'으로 끝나버리는 셈이다.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사의 영업활동과 신용등급에는 부정적 영향이 생겨 되레 개선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생긴다. 역시 피해는 주주 몫이 된다.
코스피 4년→2년·코스닥 3심→2심제 단축 추진
거래소는 개선 기간 단축 방안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거래소 관계자는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심사에 소요되는 기간을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은 상장폐지 절차를 3심에서 2심제로 단축하는 방안을 골격으로 논의 중"이라며 "올해 안에 대책을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개선 기간 단축 필요성은 자본시장 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거래정지는 투자자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그 필요성은 충분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이 개선 방향으로 향해서 시간을 더 주는 것이면 괜찮은데, 좀비 기업인데 계속 시간만 끌고 가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며 "이런 경우라면 과감하게 상장폐지로 유도해 시장의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위원은 "거래정지 이후에도 기업 개선 가능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신속한 상장폐지를 통한 정리매매로 종목을 정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게 투자자들에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거래정지 기간을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단축시켜야 한다"며 "투자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금이 묶이면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까지 사례를 보면 거래정지 기간을 늘린다고 상장폐지를 시킬 회사를 안 시키는 것도 아닐 때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dh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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