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점프업] 반려견 디스크 치료제 성공, 사람까지 도전한다

홍아름 기자 2024. 8.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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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UNIST 교수 겸 슈파인세라퓨틱스 대표
생체 고분자로 반려견 척수손상 완치
“인간 대상 임상시험하고, 세계 시장 모색”
김정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겸 슈파인세라퓨틱스 대표. 뒤에 있는 그림들은 김 교수와 같이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두 딸의 작품이다./홍아름 기자

하루 종일 앉아서 지내는 직장인들은 허리디스크나 목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다. 흔히 디스크라 부르는 척추 질환은 척추의 뼈 사이 충격을 흡수하는 디스크(추간판)가 손상되거나 돌출돼 발생한다. 디스크는 사람뿐 아니라 반려견에도 흔히 나타난다.

김정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겸 슈파인세라퓨틱스 대표는 최근 생체 내 고분자를 활용한 세계 최초 반려동물 척수손상 치료용 의료기기 ‘슈파인젤’을 출시했다. 젤에 든 고분자가 신경조직의 흉터 생성을 막아 재생을 돕고, 마비 증상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지난 20일 울산의 UNIST 연구실에서 만난 김정범 교수는 “척수손상은 희소 질환으로,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어렵다고는 생각했지만, 연구를 좋아하고 새로운 방향에서 답을 찾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맞는 연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정범 교수는 UNIST 부임 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며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와 ‘셀(Cell)’에 논문을 게재했을 정도로 줄기세포 분야의 대표 연구자다. 당시 김 교수는 세포의 유전자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슈파인세라퓨틱스가 출시한 동물용 디스크 치료용 하이드로젤./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번 반려견용 치료제도 줄기세포를 활용해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기존 제약회사들이 디스크의 손상된 세포를 줄기세포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치료제를 개발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참고했다. 김 교수는 “토양이 좋으면 씨앗에서 싹이 나듯이 줄기세포가 효과를 내려면 손상 부위의 환경도 중요하다고 봤다”며 “피부에 상처가 나면 습윤밴드를 붙이듯이 디스크의 신경 흉터에 달라붙어 회복을 돕는 고분자 성분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줄기세포와 고분자가 섞인 치료제의 효과를 고분자만 있는 대조군과 비교하기 위해 실험을 하다 우연히 고분자만 있어도 충분한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줄기세포 연구자가 줄기세포 없는 치료제를 개발한 계기였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 없는 치료제가 줄기세포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라고 보고 2017년 바로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줄기세포 치료제는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해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만드는 단계에서 다른 세포가 만들어지면 암이 발생할 수 있는데, 생체 고분자는 이미 생체에서 여러 개 섞여서 존재하니 독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어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지마비를 겪는 중증 환자견에 슈파인젤을 사용하자 평균 2주 이내에 다리 운동 능력을 회복했다. 생체 고분자 제품을 넣기 위해 수술했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걷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재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슈파인세라퓨틱스는 지난 4월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인허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회사를 꾸려나가기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전까지 2년 동안 휴직하며 협력 네트워크를 쌓았다. 이 기간 스위스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스위스 소재 제약회사의 임원들을 만나 협업하기로 약속했다.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진행하던 연구 과제도 모두 끊겼지만 모두 치료제의 가능성을 믿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김 교수는 앞으로는 슈파인젤을 인간 치료로 확장해 세계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척수손상 환자가 50만명씩 나온다. 미국 시장만 12조원에 달한다. 조에티스, 베링거인겔하임 동물건강, 머크 동물건강과 같은 글로벌 동물약품 제약사와의 협력을 추진해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김정범 교수가 치료제를 사용해 보고 싶다는 척수손상 환자들의 메일을 보여주고 있다./홍아름 기자

김 교수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제품 개발에 나선 건 척수손상 환자들의 메일 때문이다. 연구 소식을 접한 환자들이 김 교수에게 치료제 개발을 묻는 메일만 200여통을 보내왔다. 그는 마음 속 한 켠에 환자들의 메일이 늘 남았다고 했다. 독성 시험과 전임상부터 인체 대상 임상시험까지 하면 최소 3년이 걸리는 일이지만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슈파인세라퓨틱스는 현재 동물을 대상으로 전임상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개 14마리에 슈파인젤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척수손상이 어떻게 치료되는지 예후를 지켜보고 있다. 이미 동물용으로 허가받은 약이어서 인체 대상 약물로 개발하기 위한 동물실험 데이터가 잘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치료 메커니즘을 확장해 척수손상과 허리디스크는 물론 골관절염의 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김 교수에게 최종 목표를 묻자 ‘세계 최초의 척수손상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과 함께 ‘회사를 성공적으로 꾸려 지금의 슈파인세라퓨틱스가 있도록 도와준 학생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라고 꼽았다. 매출 몇억원이나 상장 같은 여느 기업의 목표와는 달랐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나 척수손상 치료제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동물실험에도 1년 이상 걸린다”며 “긴 시간 동안 고생했던 졸업생들을 데려와 다 같이 즐겁게 연구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교원이 창업한 기업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이나 세일즈 분야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술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 중간 단계에 들어서면 어떻게 기업을 끌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정 또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08), DOI: https://doi.org/10.1038/nature07061

Cell(2009), DOI: https://doi.org/10.1016/j.cell.2009.01.023

Nature(2009), DOI: https://doi.org/10.1038/nature0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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