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심 병원조차 "환자 못받아"…응급실, '셧다운' 조짐
"병원 기존 진료환자도 수용불가 전원 요청"
"서울 한복판서 고령 패혈증 환자 병원전전"
"심근경색환자 살릴동안 2시간 넘게 무의촌"
"지쳐 쓰러질 지경 진찰료인상 미봉책 불과"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 서울 한복판에서 한밤중 교통사고로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했다. 서울 서부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환자를 의뢰 받았지만 지난 2월부터 정형외과에서 응급 수술을 하지 않고 있어 수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 시간 뒤 같은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교수)들의 사직이 잇따르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19 환자도 급증하면서 진료 과부하로 인한 '응급실 연쇄 셧다운(운영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 사태로 인한 인력 부족이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대학병원이 기존에 진료를 받으러 다니던 중증 환자들조차 수용이 어려워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전전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복판인 용산에 사는 한 고령의 패혈증 환자는 최근 기존 진료를 보던 대학병원은 물론 인근 병원들로부터 모두 수용을 거절 당했다. 환자는 지병에다 치료에 촌각을 다투는 패혈증이 겹쳐 '패혈성 쇼크' 상태였다. 패혈성 쇼크는 폐와 심장, 간 등 여러 장기의 기능이 동시에 떨어져 생명을 위협하는 다발성 장기부전을 초래할 수 있어 치명적이다. 서울 남서부의 한 병원이 환자를 가까스로 살려냈지만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수원에 거주하는 한 심근경색 환자는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해당 병원 응급실의 응급의학과 교수 1명이 중환자를 포함해 환자 총 15명을 돌보고 있었다. 교수는 결국 환자를 대상으로 인공심장 역할을 하는 에크모(ECMO·체외막 산소화 장치)를 이용해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해 살려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 응급의학과 교수는 "심근경색 환자를 살리는 동안 응급실은 2시간 넘게 무의촌이 됐었다"면서 "환자가 장거리 이송되거나 병원들이 기존 진료 환자조차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정도면 응급의료 체계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서울의 B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환자 진료량이 많고 지방에서 전원 요청도 이어지고 있지만 응급의학과 교수 1명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 법정 지정기준(응급실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5명 이상)을 크게 밑돈다.
B 권역응급의료센터 C 응급의학과 교수는 "며칠 전부터 우리 병원도 야간 근무 결원이 생겼다"면서 "그나마 막아내고 있던 인력이 이탈해 야간에 12시간 동안 센터가 문을 닫게 되면 환자가 갈 곳이 없어 추가 근무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C 교수는 현재의 의료체계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비유했다. 그는 "하루 수십 명을 진료하고 서울에서 중환자가 쏟아지는 곳인데, 요즘 경기나 강원, 전남에서도 전원을 요청하는 전화가 온다"면서 "모두 혼자 다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류가 나중에 발견되거나 처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태 장기화로 외과, 소아청소년과, 내과 등 배후 진료과의 진료량이 폭증한 것도 응급실의 환자 수용이 더 어려워진 주요인 중 하나다.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1차적인 검사나 응급 처치에 이어 배후 진료과에 의한 수술·입원 등 최종 치료가 불가능하면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
A 교수는 "응급실에 내원하는 중증환자 중 한 가지 진료과에 국한되는 문제 만으로 오는 환자는 별로 없다"면서 "여러 과의 협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보니 어느 한 개의 과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수용이 어려운 환자군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응급 수술도 마취과 교수들의 조용한 사직으로 줄었고, 몇 몇 대학병원에서는 마취과 전문의 부재로 인해 수술이 많은 배후 진료과에서 환자 수용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면서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인력 중심 병원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은 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최근 오미크론 하위 변이 바이러스 KP.3가 기승을 부리면서 코로나19 환자가 크게 늘어 응급실의 환자 수용 역량은 더 떨어졌다.
질병관리청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표본감시 입원환자 수는 이달 셋째 주 올해 들어 가장 많은 1444명으로, 한 달 전인 7월 셋째 주에 비해 6.4배 증가했다. 코로나19 환자는 응급실 내 음압격리실에서 진료 받아야 한다. 응급실 내 면역력이 저하된 중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리실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장에 남아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실에 중증 코로나 환자를 대기 시켜 놓고 다른 중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A 교수는 "내달 추석 즈음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정부가 진찰료 인상을 발표했지만 이는 사태 이전 응급의학과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취했어야 하는 조치로, 현장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당장 지쳐 쓰러져 죽을 지경인 현 상황에선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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