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롯데쇼핑 잡는 칼, ‘티메프’에도 통할까[박상영의 기업본색]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카카오 등에서 기프티콘을 유통하는 모바일 교환권 발행업체 엠트웰브는 지난 19일 거래처에 ‘기업회생절차로 인한 판매 서비스 중지’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엠트웰브는 공문에서 “7월 중순부터 시작된 티몬, 위메프 정산 미지급 사태로 인해 자사 또한 막심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가구·가전제품 온라인 쇼핑몰 알렛츠는 16일 자사 홈페이지에 “당사는 부득이한 경영상의 사정으로 31일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라고 공지했다. 이 업체는 입점업체에 대한 정산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경찰에 사기 혐의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다.
티몬·위메프 여파가 중소 이커머스 업계에도 미치면서 입점업체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티몬·위메프 사태가 터진 지 약 한 달 만에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정산 기한을 단축하고, 판매 대금도 별도로 관리해 유용하는 것을 막는 내용의 제도 개선 방향을 내놨다. 이번 사태가 정산 주기를 늦추고 판매 대금의 일정 비율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아 생겼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율 규제’라는 국정 기조에 사로잡혀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업체의 유동성 문제와 복잡한 지급결제 구조 탓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지만 아직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불공정 거래 행태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2021년 공정위 VS 2024년 공정위
이런 우려에는 현행 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는 플랫폼 업체와 입점업체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실제 대규모유통업법은 자신의 물건을 판매하는 사업자를 규율하기 위해 도입됐다. 단순히 중개만 할 뿐 거래 당사자로 뛰어들지 않는 플랫폼 업체에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플랫폼 업체에 정산기한 등 일부 규제만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여·야간 이견이 있어 새로운 법 제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제도 개선을 신속히 내놔야 하다보니 기존 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전자상거래법 등 다른 법률도 플랫폼 업체를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자상거래법은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 권리와 의무를 다룰 뿐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한 판매업자 사이 거래는 규율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도 플랫폼 시장에서 분쟁을 막거나 거래를 개선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이같은 주장은 규제 당국인 공정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이같은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2021년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앞장서 주장했다. 당시 공정위는 “기존 법에는 계약서 제공 의무와 표준계약서 등 분쟁 예방, 거래 관행 개선을 위한 근거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사업은 단순히 중개 역할을 떠나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축적한다. 사용자 행동과 선호하는 것을 분석한 데이터는 플랫폼 사업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업체에 자연스럽게 힘이 생기면서 다양한 형태의 피해도 발생했다. 기존 법으로는 이를 막는 데 한계가 있어 유럽연합(EU)과 일본도 각각 2020년에 플랫폼 업체를 규율하는 별도의 입법을 추진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는 탄력을 받았다. 플랫폼 규제 필요성이 제기된 초기에는 입점 업체에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경영을 간섭하는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막아야 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2021년 공정위가 추진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온플법)’이 대표적이다. 법안에는 입점 업체에 상품·용역을 구입하도록 강제하거나 손해를 부당하게 떠넘기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율규제’에 플랫폼 입점업체 피해는 커져
그러나 3년이 넘도록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업계의 반발에 ‘자율 규제’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법안은 흐지부지됐다. 대신 정부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규율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추진 중이다.
당시 업계의 반발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조항은 플랫폼 업체와 입점업체 간에 작성하는 계약서였다. 이 계약서에는 ‘거래되는 재화 또는 용역이 온라인플랫폼에 노출되는 순서, 형태 및 기준’을 담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계약서에는 ‘입점업체의 제품과 자사가 판매하는 상품 등을 다르게 취급하는지 여부와 기준’ 등도 공개하도록 했다. 검색 노출 순위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의 공개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플랫폼 사업자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공정위는 네이버·구글 등 플랫폼 업체가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유리한 방식으로 노출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계약서야말로 규제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EU는 한발 더 나아가 검색 노출 순위 결정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의 결정 요소를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용어로 공개할 것을 의무화했다.
정부가 플랫폼 업체의 갑질에 미온적으로 나서면서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중소 입점업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올해 7월 중소기업중앙회 온라인플랫폼 입점 중소기업 1103개사를 대상으로 온라인플랫폼 거래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경험한 입점업체는 숙박앱 7.5%, 배달 앱 5.3%, 온라인쇼핑몰 5.1%로 집계됐다.
온라인쇼핑몰 입점업체는 상품의 부당한 반품(48.4%)을, 배달 앱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래 조건을 불리하게 설정·변경(62.5%)한 점을 가장 많이 겪은 불공정거래·부당행위로 꼽았다. 숙박앱은 불필요한 광고나 부가서비스 강요(40%)가 가장 많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전임 정부에서 추진한 온플법 필요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법 한 전문가는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법에는 독과점이든, 갑을 문제든 따로 나눌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효과적인 규제를 위해 하나의 법에 모두 담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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