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소송, 제조사가 입증하라"…업계 긴장하는 이유 [주가를 움직이는 법안]
더불어민주당 염태영·허영 의원 발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조사가 '결함 없음' 입증해야"
현대차·기아 등 업계는 예의주시
22대 국회 들어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고 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과 같은 당 염태영 의원 안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도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개정 필요성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야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6건 발의했다. 2022년 12월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이도현 군(당시 12세) 가족이 지난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입법 청원을 제기한 게 계기가 됐다. 반면 업계에선 관련 법안이 처리될 경우 “입증 책임 분배의 공평성이 훼손되고 소송이 남발돼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野 제조물 결함 입증책임 제조사로 돌리는 제조물 책임법 발의
현행법은 소비자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를 개인이 직접 밝히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발진 의심 사고로 대법원에서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 신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도 관련법 정비를 위한 국회 논의가 급부상한 배경이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교통안전공단에 제출된 급발진 신고는 236건이었다. 여기에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비롯해 이달 1일 ‘청라 벤츠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는 등 논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허 의원이 발의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은 제조사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적용 범위도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제조물’로 자동차뿐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폭넓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당 염 의원 안에도 이 같은 입증책임 전환 원칙이 명시됐다.
정부·여당도 법 정비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3일 국무회의를 열고 급발진 의심 차량의 제조사가 사고 차량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차량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피해자가 ‘제조물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영상자료, 기록물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제조물 공급 당시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반면 자동차 업계는 개정안 추진이 과도하다고 맞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료제출 명령 도입으로 업무상 비밀을 제공해야 할 수 있다는 부담이 생겼다”며 “증명책임까지 제조사가 안게 될 경우 무리한 소송을 업체가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된다”고 했다. 개정안 적용 범위도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제조물로 자동차 ‘등’으로 규정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조업계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책임 분배 공평해야”…경제계 ‘예의주시’
개정안이 통과돼 입증책임이 제조사로 전환되면 자동차 제조업 관련 기업들의 주가엔 악재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 등이 해당한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적용 대상 기업이 확대될 수 있어 경제계도 입법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만~1만5000개 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부품기업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구상권 청구 문제도 뒤따를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개정안이 당장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입증책임 전환은 지난 21대 국회 때도 업계 반대가 커 처리가 쉽지 않았다”며 “법안 취지 자체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정무위가 업무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과 유사한 취지와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난해 6월 열린 정무위 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제조물 책임법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 “민사소송의 기본적인 원칙인 입증책임 분배의 공평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2대 국회 들어 정무위가 여야 정쟁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것도 법안 처리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여야 의원들은 국가보훈부가 관할하는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국민익위원회 간부 사망 사건과 관련해 맞붙고 있다.
다만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법 개정에 대한 논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차량 급발진 사고를 확인하기 위한 페달영상기록장치 장착 의무화 등 방안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염 의원실 관계자는 “배기가스 색깔이나 엔진 소리 등을 참고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며 “국민의힘 측에서도 조정을 위한 협의에 충분히 응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원 기자 top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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