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스캔들, 위스키 토대 마련하다 [명욱의 술 인문학]
세계사를 바라보면 역사를 바꾼 스캔들이 자주 등장한다.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당나라의 흥망성쇠를 이끈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우리나라의 연산군과 장녹수 등으로, 모두 역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겼다. 중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연 스캔들도 있다. 영국의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스캔들이다. 이 둘은 위스키 발전의 토대도 됐다.
헨리 8세는 여성 편력이 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처럼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총 6번의 결혼을 했고, 2명의 왕비는 처형을 당했다. 이렇게 대단한 스캔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정을 받는 이유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해 성공회라는 영국만의 국교회를 성립시켰고,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가는 절대 왕정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사랑한 여자였다. 카탈리나는 초혼이 아니었다. 형인 아서 튜더의 아내였다. 하지만 아서 튜더가 결혼한 지 20주 만에 병에 걸려 죽자 형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다는 것. 요절하거나 사산이 됐고, 후에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 공주만 살아남게 된다. 자녀가 공주밖에 없을 때 당시 풍속으로 공주가 외국 왕자와 결혼을 하면 왕위 계승권이 외국 왕자에게 넘어가거나 잘못하면 내란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수도원에서 쫓겨난 수도사들은 민간에 스며들어 증류 기술을 세상에 알리거나,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가까운 나라는 바로 이웃인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07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통합을 이루지만 영국의 성공회에 반발이 있었던 가톨릭교도들은 이후 험준한 하이랜드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몰래 위스키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는 합법화를 거쳐 영국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이렇게 보면 헨리 8세나 위스키를 만든 스코틀랜드 사람이나 모두 세상에 순응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결국 역사는 따라가는 인물보다 따르게 하는 인물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