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혼 다룬 드라마가 묻는다, 가족이 뭔데?
*이 글은 ‘굿파트너’의 주요 장면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KBS2, 사랑과 전쟁)에서 거의 매주 등장했던 대사다. 이 대사와 드라마 제목은 한때 ‘밈’처럼 쓰였다. 물론 ‘사랑과 전쟁’ 이전에도 이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았으나 이혼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켜 시청자가 이혼 찬반투표를 할 수 있도록 설정한 드라마는 이 드라마가 유일했다. ‘사랑과 전쟁’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막장 드라마’와 같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복잡한 내 삶과 징글징글한 가족은 ‘0단계 순한 맛’에 불과했음을 깨달으면 어느새 안심되곤 했다. 막장 드라마의 뜻밖의 효능이랄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혼
이혼이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인기 있는 소재가 된 지 오래다. 주로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2020년 ‘우리 이혼했어요’(TV조선)를 시작으로 예능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MBC), ‘이혼 숙려 캠프’(JTBC), ‘이제 혼자다’(TV조선)가 대표적이며 2024년 8월에는 ‘한 번쯤 이혼할 결심’(MBN)이 시작됐다.(여기에 ‘돌싱’을 소재로 한 콘텐츠까지 더해지면 더 많아진다) 드라마는 너무 많아 나열하기 어려우므로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대표작만 꼽는다면, ‘남이 될 수 있을까?’(GENIE TV), ‘신성한 이혼’(JTBC), ‘끝내주는 해결사’(JTBC) 등이 있다. 어디 예능과 드라마뿐일까? 배우 황정음, 아나운서 최동석·박지윤 등 유명인들의 이혼 소식도 일일연속극 보듯 관람하는 시대다. 그만큼 ‘남’ 그중에서도 ‘남의 이혼’ 이야기는 대중의 관음증적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혼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이혼이 더는 특별하거나 기구한 운명에 처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도 변화했다. 과거에는 자극적 재현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공감대 형성과 솔루션 제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혼을 ‘인생 실패’가 아닌 ‘인생 2막’으로 여기도록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것도 변화 양상 중 하나다. 이혼 예능에 ‘오은영 박사’가 있고, 드라마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는 것처럼.
‘굿파트너’(SBS)는 이혼 드라마의 미덕과 효능을 고루 갖춘 드라마다. “이혼이 천직인 스타 변호사” 차은경(장나라)과 “이혼이 처음인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를 중심으로 한 “휴먼 법정 오피스”를 표방한 이 드라마는 이혼을 소재로 한 다른 드라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다양한 이혼 사례가 옴니버스 방식으로 등장해서 익숙하게 볼 수 있다. 거기에 일반인은 잘 몰랐던 사법적 전문성이 더해져 서사적 재미와 정보 습득의 유익을 골고루 누릴 수 있다는 게 ‘굿파트너’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극본을 쓴 최유나 작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경험을 살려 2018년부터 그림 작가와 함께 ‘메리지레드’라는 인스타툰을 연재했고, 드라마는 그걸 바탕으로 구성됐다. 그러니까 이혼 전문 변호사의 전문성에 웹툰 작가의 전문성이 더해지고, 연기자들의 호연이 추가돼 최선의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사이다’보단 복잡한 현실 반영한 서사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장점은 현실적인 이혼 사례들이 단순하게 ‘등장’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의 복잡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남편이 반복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이혼에 실패하고 불행한 부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여성,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이혼으로 딸 혼삿길이 막힐까봐, 자신마저 떠나면 남편이 굶어 죽을까봐 결국 이혼을 포기하는 여성의 사례는 가부장 중심 가족 구조에서 여성이 겪는 딜레마적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변호사들 또한 괴롭다. ‘의뢰인의 승소’에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때론 나쁜 가부장을 변호해야 하거나 남편의 자살 시도와 가스라이팅에 결국 이혼 소송을 포기해야 하는 의뢰인을 끝까지 설득하지 못할 때 직업윤리와 개인적 소신의 충돌을 경험하기도 한다.
드라마는 기존 가치관과 어긋난 선택을 보여주기도 한다. 함께 주말 캠핑을 하며 돈독해진 두 부부 사이에 일어난 불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산이 많은 가해자 남성은 아내에게 20억원을 지급하는 대신 양육권을 가지려 한다. 이에 한유리는 “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 안 된다고 피해자 여성을 설득하지만, 피해자 여성은 결국 20억원을 선택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거나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포기할 수 있나’라는 보편적 가치관과는 어긋난 선택이다. 서로 양육권을 갖지 않으려고 다투는 부부 사례도 그렇다. 많은 양육자가 ‘양육권’을 원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렇게 당위와 현실이 충돌하는 복잡한 사정을 드라마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굿파트너’의 또 다른 장점은 이런 이야기가 서로의 ‘거울’이 된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되, 그 모든 이야기가 차은경의 이혼 이야기, 한유리의 가족 이야기와 맞물리도록 구성됐다. 차은경은 이혼 전문 변호사지만 이혼 당사자이기도 하다. 차은경의 남편인 내과 의사 김지상(지승현)은 아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딸 재희(유나)의 주 양육자로 살다가 차은경의 비서 최사라(한재이)와 바람을 피운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는 아내를 향한 열등감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비관이 더해진 최악의 선택이지만, 김지상은 모든 책임을 차은경에게 돌리며 아내와 엄마 자격을 묻는다. 차은경은 그런 김지상의 태도에 분노하지만 재희를 향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유리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적이었던 아빠가 회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이혼한 것이다. 한유리는 아빠를 향한 분노, 그리고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과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엄마에 대한 연민을 성급하게 일에 투사해 실수하곤 한다. 이 두 사람이 맡은 이혼 사건들은 이들의 ‘거울’이 되며 문제해결의 ‘복선 역할’을 한다. 한유리는 아이 대신 20억원을 선택한 엄마에게 감정 이입해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기도 하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이혼하지 못하는 여성을 답답해한다. 23년 동안 열심히 일해 회사를 일구며 유학 보낸 두 딸과 아내를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아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 소송을 하게 된 남성은 차은경이 처한 상황과 오버랩되고, 남편의 외도로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한유리 엄마의 상실감과 상처는 차은경과 공명한다.
전통적인 ‘정상가족’이 간과했던 것들
드라마의 마지막 장점은 ‘성장물’이자 ‘여성 서사’로서도 의미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업계 최고인 차은경의 세계에 불쑥 들어온 사회초년생이자 초보 변호사 한유리는 초반부터 사사건건 차은경과 대립한다. 차은경도 그런 한유리를 못마땅해하지만, 차츰 각자의 세계를 조금씩 허물어 서로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본인 이혼 소송 대리인으로 자신을 지목한 차은경에게 한유리가 “왜 하필 저예요?”라고 질문하자 차은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한변은 필요해. 나랑 다르니까. 한변은 나랑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졌어. 해결 방식도 다르고.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해두자.”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로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성장물이자 여성 서사로서도 합당하다.
이혼은 부부 사이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개인과 가족의 의미를 재고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김지상은 차은경이 가정에 소홀했다며 엄마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가스라이팅이다. 차은경의 직장 생활은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이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행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남성이 하면 가족을 위한 가장의 헌신이고, 여성이 하면 이기적 욕망으로 간주해 ‘엄마의 자격 없음’을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조건은 무엇이고, 결혼 생활은 어떠해야 하며, 합당한 부부 관계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까?
이 질문은 차은경과 한유리를 비롯한 의뢰인들을 관통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간 가족을 ‘제도’가 아닌 ‘운명 공동체’로 이해했고, 그것이 깨지는 것을 실패로 여겨왔다. 그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가부장제’라는 낡은 구도에 일방적 헌신과 강요된 역할을 구겨 넣으며 개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정상가족’을 유지해왔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 오래된 관습을 지키느라 온전한 개인이 되지 못한 우리가 외면한 질문을 직면하게 한다. 가족은 무엇이며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을까? 이혼 드라마가 단순하게 인물들의 사정을 보여주거나 (주로 화해로 귀결되는) 감정적 해결로 이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정물’로 재현되는 이유는 가족은 언제든 재구성할 수 있는 ‘제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물론 쉽게 갈라설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을 드라마는 간과하지 않는다.
파트너, 신뢰와 평등을 전제로 한 협력 관계
이 글을 준비하며 드라마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누구의 ‘굿파트너’일까? 기본적으로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굿파트너라는 설정이겠으나, 드라마는 부부, 동료, 부모와 자녀, 여성과 여성 등 다양한 ‘파트너들’을 상상하게 한다. 파트너는 동반자 혹은 협력자란 뜻을 가졌다. 즉, 신뢰와 평등을 기본값으로 할 때 의미 있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다. 앞서 소개한 드라마 ‘사랑과 전쟁’ 제목이 부부 사이를 ‘사랑’과 ‘전쟁’으로 함축한 것과 비교해보면 ‘굿파트너’는 가족에 관해 더 나은 질문을 하게 한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제목이다.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된 이 드라마는 과연 시청자에게도 ‘굿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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