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억 물린 서학개미 어쩌라고”…반도체 대명사였던 인텔의 배신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4. 8. 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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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ETF, 인텔 때문에 수익률 울상
주가 반토막에도 여전히 PER 80배
오픈AI 투자 제안 뿌리친게 큰 실책
CPU 점유율 뚝...인재들도 대거 떠나
투자 올인 나선 파운드리서 반등 기대
올 들어 반토막난 인텔 주가.(자료=구글파이낸스)
인재도 투자자도 인텔을 떠나고 있다. 서학개미들도 마찬가지다. 2024년 들어 8월 16일까지 1조2500억원어치의 인텔 주식을 팔았다.

그러나 미쳐 인텔을 떠나지 못한 서학개미들은 이 주식을 여전히 4300억원 규모로 보유 중이다. 월스트리트에선 인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일부 공격적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감안해 저평가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수년간 인텔은 ‘언젠간 반등할 저력이 있다’는 월가의 예상과 비호를 받아왔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장들을 되도록이면 자국 내 유치하려 하면서 이같은 수혜는 곧바로 인텔의 수혜로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전혀 기술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다 단기 실적까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이같은 월가와 국내외 투자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2분기 매출 128억3000만 달러에 주당 순이익 0.02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이 늘어나도 시원치 않은데 1년새 1% 감소한 수치다. 월가의 예상치를 밑돌자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주가는 지난 8월 2일(현지시간) 하루새 26.1%나 폭락했다. 일 단위 하락률에선 1974년 31% 폭락 이후 5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다.

인텔 주가는 올 들어 8월 16일까지 무려 56.3%나 하락했다.

인텔을 높은 비중으로 담고 있는 국내외 ETF는 주가 수익률이 신통치 않을 정도로 ‘빌런’(악당) 역할을 수행 중이다.

반도체 ETF 내 비중이 높을수록 전체 수익률을 높인 엔비디아와는 완전히 반대 포지션이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같은 상황은 한때 ‘반도체의 왕’ 소리를 듣던 인텔 직원이나 투자자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증권가 관계자는 “중장기 비전이 필요한 성장주에게 단기 성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인텔이 모조리 보여주고 있다”며 “인텔은 AI 주도권을 가질 기회도 있었고, 기술 혁신에 나설 인재들도 풍부했지만 이제는 브랜드만 남고 성장은 멈춘 회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6년,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대규모 해고(1만2000명)를 단행하며 단기 성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PC 성장과 함께 크던 인텔이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에서 한발 늦어지자 실적과 주가 모두 뒤쳐지기 시작한다.

직원을 대거 줄이며 원가 절감에 나서는 등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된 것이다.

새로운 매출처를 찾기보다 당장의 비용 절감에 나서는 상황은 후임 밥 스완 CEO 재임기간에도 이어졌다.

직원들을 ‘비용 덩어리’로 보는 시각에 인텔 인재들은 대거 경쟁사로 이직했다.

월가에선 인텔을 떠난 직원 상당수가 경쟁사인 AMD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만년 2등’ AMD의 점유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컴퓨터의 두뇌 격인 ‘CPU’ 시장에서 인텔의 영향력은 지금의 TSMC가 파운드리에서 절대 강자인 것 처럼 절대적인 1등이었다.

그러나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인재 유출과 경쟁사의 각성은 CPU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AMD는 인텔이 주춤할 때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 엔지니어 경력의 리사 수를 CEO로 영입한다.

기술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인텔을 떠나온 인재들까지 품은 AMD는 점유율이 쭉쭉 늘어난다.

최근 반도체 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매출은 서버 분야다.

AI 시대와 맞물려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2014년 AMD의 서버용 CPU 점유율은 한 자릿수였지만 올해 1분기엔 23.6%로 성장했다.

인텔은 90%가 넘던 점유율이 이젠 70%대로 떨어졌다.

인텔은 본업인 CPU에선 AMD의 맹추격을 허용했고, AI에 꼭 필요한 GPU와 파운드리 사업에선 각각 엔비디아와 TSMC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월가에선 인텔이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특히 오픈AI를 놓친 것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손 잡고 생성형 AI 시장을 연 오픈AI는 인텔의 반도체로 AI를 훈련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해보면 이를 위해 자신(오픈AI)의 지분 15%를 10억 달러에 사라고 인텔에게 제안했다.

최근 AI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푼돈’으로 AI 개척자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밥 스완 인텔 CEO는 이같은 제안을 거절한다. ‘돈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픈AI는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30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 2022년 11월 챗GPT를 출시하며 AI 열풍 개막을 알렸다.

인텔은 한발 늦었지만 올 들어 소프트뱅크와 AI 칩 생산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 손해보지 않고 내 것을 지킨다’는 인텔의 단기 성과주의는 계속해서 거물들과의 협상을 어렵게 하고 지속적인 회사 규모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인텔의 고육책은 또 다시 직원 해고였다. 전체 직원의 15% 수준인 1만5000여명을 감원하기로 한 것이다.

또 올 4분기부터는 배당금 지급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배당 투자자들의 민심도 잃었다.

2022년 기준 배당수익률이 4~5%에 달해 ‘고배당주’였던 인텔은 이런 매력조차 잃게 됐다.

그렇다면 인텔의 투자 가치는 아예 사라진 것일까. 일각에선 오히려 지금이 매수 기회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역발상 투자’의 근거는 바로 인텔이 미국 회사라는 점이다.

지난 3월 미국 정부는 인텔에 약 11조6000억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인텔도 이에 발맞춰 약 2000억원의 현금(블룸버그 추정)을 마련했다.

지난 2분기에 보유 중이었던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주식 118만주를 매도한 것이다.

이는 TSMC가 독점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에 주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는 막대한 투자가 필수다.

8월19일 기준 반도체주 주가순자산비율(자료=야후파이낸스)
40%가 넘는 TSMC의 영업이익률을 감안하면 냉탕(적자)와 온탕(흑자)을 오락가락하는 인텔에게 파운드리 사업은 ‘정해진 길’과도 같은 평가를 받는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일말의 기대만 보여도 주가가 반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주가 급락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77배(야후파이낸스 기준)에 그친다. 다만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80배가 넘기 때문에 월가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성장이 멈춘 것처럼 보였던 스타벅스 주가가 CEO 교체 소식에 하루만에 24% 폭등한 것은 미국 주식만의 매력”이라며 “주가 상한선이 없고 성장 기대감이 무궁무진한 미국 기술주에 대한 장기 보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텔은 지속적인 기대감과 실망이 교차하면서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언제든 적자로 전환할 수 있는 위험한 주식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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