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대통령비서실에 딱 두 번 전화…국정 개입 상상도 못 해”
“하루 40여 통 민원 편지…취직·융자 청탁 빼고 최선 다해 온정 베풀어”
(시사저널=강찬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8월15일은 고 육영수 여사의 50주기였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가장 자애롭고 정갈한 모습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육 여사는 생전에 알게 모르게 힘들고 어려운 국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남편 박정희 대통령에게 민심을 그대로 알려 '청와대 야당'으로 불렸지만 국정이나 인사에는 털끝만큼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런 육 여사를 3년간 보좌해 여사의 처신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84)이다. 육 여사가 1974년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운명할 때까지 매일 지근거리에서 모신 청와대 제2부속실의 유일한 행정관이었다. 필자는 광복절 직전 그를 만나 3시간 가까이 얘기를 들었다. 김정숙·김건희 여사 등 전현직 영부인들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는 마당이라 그가 전하는 육 여사의 행적은 더욱 돋보였다. 주제별로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의 육성 발언을 정리했다.
박정희 대통령한테 매달 활동비 20만원 받아
특활비 "육 여사는 매월 대통령에게서 20만원을 활동비로 받아 하루 40여 통씩 오는 편지 속 민원을 해결하는 데 썼다. 여사는 대통령에게 수표를 받으면 바로 나에게 넘기고, 나는 총무비서실을 통해 현금으로 바꿔 서랍에 넣어둔다. 이튿날부터 여사는 편지에 적힌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얼마씩 돈을 보내라고 지시하신다. 그때는 대다수가 가난했다. 육 여사는 취직 청탁이나 융자 민원은 빼고, 가능한 여건에서 최선의 온정을 베풀었다. 학비가 없다는 중고생에게는 돈을 보내주는데, 반드시 교장에게 보내 학비로만 쓰이게 했다. 돈은 신권이 아닌 쓰던 돈을 보내 받는 국민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배려했다. 또 전국 77개 나환자촌을 틈만 나면 찾아가 환자들 손을 잡고 안아주었다. 그들이 '저희가 가진 게 이거밖에 없다'면서 사과를 건네자 바로 한입 베어 물면서 '너무 맛있네요. 남편에게도 갖다드리겠어요' 했다. 나환자들이 다들 울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나환자들을 '문둥이'라 부르면서 병이 전염될까 봐 근처에도 안 가려 했던 때다. 육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청와대 빈소에 너무 많은 국민이 찾아와 따로 제2 빈소를 차렸을 정도다. 5일장이었는데 닷새 내내 긴 줄이 이어졌다."
영부인 의상 "여사 옷은 전부 저렴한 국산 옷감을 손수 디자인해 가까운 양장점에 맡겨 만든 것들이다. 양장점이 알려지면 손님이 몰릴까 봐 이름도 안 밝혔다. 여사는 자신의 옷을 큰딸(박근혜)에게도 입게 했을 정도로 검소했다. 큰딸이 대통령을 대신해 하와이 교민 행사에 갔을 때나, 서강대를 수석졸업해 상을 받을 때 입은 옷이 어머니의 한복이었다(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시 육 여사가 '새 옷 못 해줘 미안하다'고 했다고 주변에 말했다)."
대통령 전용기로 타지마할 관광?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박정희 정부 때는 대통령도 전용기가 없어 일반 승객과 함께 민항기를 탔다. 1973년 큰 영애가 하와이 갈 때도 KAL기를 일반인들과 함께 타고 갔다. 내가 수행했는데 기장이 '승객 여러분, 지금 이 비행기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딸 박근혜양이 타고 있습니다'라고 방송을 한 게 기억난다."
"청와대 참모들, 시중에 도는 '대통령 염문설'까지 직언"
민심 전달 "육 여사는 대통령과 함께 식사할 때 나를 자주 불러 함께 먹었다. 멸치나 말린 꽁치 같은 간소한 식단이다. 그때 민심을 가감 없이 전했다. 당시 반정부 문인의 대표 격인 김지하 시인이 여권의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내가 알아보니 '빨갱이' 아닌 리버럴리스트 정도였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김지하씨 두고 말이 많은데, 얘기 들어보면 불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함께 육 여사를 모신 라은실 비서는 대통령에게 '모 여배우와 연애하신다는 소문이 났습니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은 '아시아 영화제 참가자들 초청 행사 때 그 배우와 악수한 기억밖에 없는데…' 하셨을 뿐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의 직언 "육 여사와 박 대통령은 주변에 바른 소리 하는 사람 있는 걸 고마워했다. 그러니 대통령 염문설까지 얼마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거다. 특히 육 여사는 비서들이 당신을 추어올리는 말을 하면 바로 '마음에 없는 얘기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듣기 싫은 얘기를 듣기 싫어하지 않는 분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영부인의 태도 "육 여사는 대통령과 함께한 행사에서는 손도 안 들었다. 동선도 늘 대통령 두세 발짝 뒤다. 육 여사가 자동차 안이나 행사장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 본인만의 일정엔 부속실 직원인 나만 대동한다. 사실 육 여사의 '제2부속실'이란 게 나와 여비서 2명이 전부였다."
"육 여사, 항상 대통령 두세 발짝 뒤에 서"
'명품백 선물' 논란 "역시 상상도 못 한다. 육 여사는 늘 청와대에서 손님들을 접견하는데, 선물 가져온 이를 본 적이 없다. 아예 안 된다는 걸 다들 알고, 또 만나는 분들이 수준 있는 분들이니 불상사 날 일이 없었다. 양주동·박목월·봉두완씨 등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자주 들으셨다."
전·현 영부인들의 인사 개입 논란 "육 여사 추천으로 누군가 장관, 의원이 됐다면 세상에 금방 알려졌을 거다. 그런 구설 난 적 있나? 여사한테 오는 전화는 나나 여비서가 다 받는데 빈민구제를 위해 여사가 세운 양지회 멤버들이나 친한 여성 성악가 한 분과만 통화할 뿐이었다. 장관·의원이나 그들 부인과 통화하는 경우는 없었다."
영부인들의 국정 개입 구설 "국정 개입은 상상도 못 한다. 육 여사는 정치 얘기 나오면 '대통령 하실 일'이라며 한 치도 개입 안 했다. 억울한 국민의 민원도 공직자들에게 절대 전화하지 않고 대통령에게만 얘기해 해결되도록 했다. 내가 여사를 보좌한 3년 동안 그분이 대통령비서실에 전화하는 거 딱 두 번 봤다. 한 번은 '새마을 담당 정종택 비서관 연결해 주세요'였는데 새마을 양잠 행사 참석과 관련해 질문이 있어서였다. 또 한 번은 '김성진 공보비서 대주세요'였다. 그날 조간에 '박 대통령이 ○○ 지역을 시찰했다. 김정렴 비서실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 수행했다'는 1단 기사를 보시고 그런 거다. 여사가 김 비서관에게 '대통령 동정 기사 보면 밤낮 김, 박 실장 얘기만 나오는데, 국민들 지겨우시지 않겠나. 앞으로는 수행한 다른 분들 이름도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 맞는 얘기잖나. 그 후로는 두 실장 대신 '○○ 장관이 수행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바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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