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 가을의 첫 발자국, 사진으로 담아내다[청계천 옆 사진관]
100년 전 가을을 기다리며: 당신의 마음에 남은 풍경은?
신문에 실리는 사진 중에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진기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찍는 사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툭 찍는’ 사진도 있습니다. 치열한 현장을 오가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을 때 우연히 아름다운 장면을 만나면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들어 순간을 포착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설명을 붙여 신문에 게재하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2024년 현재 기준 동아일보에는 포토에세이나 고양이눈이라는 사진칼럼이 그런 사진들이 활약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번 주 백년 사진에서는 날씨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100년 전 지난 주 신문에는 툭 찍은 듯한 사진이 꽤 많이 실렸습니다. 날씨 스케치 사진이 1주일에 무려 3장이나 실렸더라구요. 하루치 신문이 4면이나 6면에 불과하고 일주일치 사진이라고 해봐야 지면 전체를 통틀어 20장이 넘지 않는 상황에서 날씨 사진만 3장이 실린 것은 이례적입니다. 100년 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가을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그걸 사진으로 보여주려던 기자들도 많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높은 해상도로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다면 더 생생한 장면을 여러분에게 소개시켜 드릴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않아 아쉽습니다. 저화질의 사진이지만 여러분이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시면 훨씬 생생한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까요?
첫 번째 사진은 1924년 8월 18일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가까이의 무성함과 멀리의 잔잔함이 대비를 이루는 이 장면은,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도 이미 찾아온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감지하게 하며,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게 하는 서정적인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두번째 사진은 1924일 8월 20일 사진입니다.
왼편에 우뚝 서 있는 수수 이삭은 마치 여름의 잔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뒤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수수들은 마치 겸손하게 가을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광각 렌즈가 선사하는 이 독특한 시점 덕분에, 화면 속 풍경은 리듬감을 지닙니다. 마치 자연이 시간의 흐름을 춤추듯 표현하는 듯합니다. 가까운 수수는 자신감을 담아 당당하게 서 있지만, 멀리 보이는 수수들은 그 뒤를 조용히 따르며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이 사진 속에서 자연은 한 계절의 끝과 다른 계절의 시작을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1924년 8월 23일 사진입니다.
둥근 가로등은 그들 곁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평화를 상징하듯 서 있습니다. 여인들의 모습은 이 순간의 고요함을 담아내며, 그저 이곳에서 잠시 멈추어 자연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듯합니다. 가을로 넘어가는 저녁, 한강 위에 서린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소견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신문사 기자들이 잘 안 쓰는 표현입니다. 소견(所見):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이라고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장의 사진 모두 일반적인 사진과 달리 사진 설명이나 관련 기사가 따로 없습니다. 그냥 한 줄짜리 제목만 달려 있습니다. 무책임한 걸까요? 그것보다는 독자들 각자 가을 풍경을 만끽하면서 나름대로의 시상을 떠올리도록 넌지시 여백을 남겨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100년 전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맞이하던 우리나라의 풍경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무엇이 보이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진짜 이번 주만 지나면 가을이 오려나요. 폭염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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