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솔 쓰러진 곳에 5m 절벽이…기후위기가 해안 집어삼키다

한겨레 2024. 8. 2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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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슈
해안 침식 현장 르포
서해안에서 대표적인 해송림을 자랑했던 전남 신안군 증도면 우전해변의 송림 지대가 해안 침식으로 깎여 나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 전국 54곳 첫 실태조사
기후변화·골재 채취·방파제…
해변 곳곳 깎이고 모래 대량 유실
해수면 상승 가세 땐 대재난 위기

우리나라 연안 해안에서 백사장을 형성하는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 어디라고 예외가 없다. 모래가 유실되는 것뿐만 아니라, 해변을 감싸는 해안지대까지 깎여 나간다. 우리가 바다와 만나는 생활 터전이자 생존의 공간인 연안 해안이 침식으로 훼손되고 있는 것. 해안 지역의 인공시설물 막개발, 무분별한 모래 채취, 기후변화로 더 잦아진 기상 이변,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녹색연합은 지난 1월 기초 조사를 시작으로 7월까지 동·서해안 연안에서 해안 침식 실태를 조사했다. 국내 시민단체로는 처음이다. 기초 조사는 문헌 조사와 위성 지도를 바탕으로 사전 조사를 했고, 현장 조사는 전국 54개 해변의 백사장 구석구석을 밟으며 관찰했다. 조사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바다 쪽에서 육지를 살피는 시선을 유지한 것이었다. 조사 대상지는 도보 탐사와 더불어 드론을 최대한 활용했다. 군사시설 주변을 제외하면 하늘에서 관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54개 해안 중 침식 사면이 2m 이상 발생했거나 토양까지 드러난 곳이 18곳이었다. 34곳의 해변에서 침식 저감 시설을 설치했는데도 침식과 구조물 무너짐 현상이 발견됐다. 침식이 진행되는 해변에선 대부분 대형 발전소, 항만 시설, 방파제, 이안제 등 연안 토건 개발로 인위적인 교란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송 무너지고 백사장 사라지고

서해안의 대표적 해송림을 자랑했던 전남 신안군 증도의 우전해변에선 송림 지대가 바닷물로 깎여 나가고 있다. 이곳은 서해안에서 나타나는 해안 침식 중 가장 충격적인 현장이다. 길이 200m 이상의 해변에서 모래가 사라지면서, 백사장을 보호하는 형태로 붙어 있는 해송림이 무너지고 최고 5m 높이의 절벽이 생기고 있다. 주요 수종인 곰솔은 뿌리까지 드러내며 기울거나 드러누웠다. 수령 50년에서 100년가량의 곰솔이 군데군데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은 참담했다.

증도는 2007년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을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특히 우전해변의 해송림은 산책 코스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숲길 길이만 2.5㎞가량으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울창한 솔숲 그늘을 걸으며 바다를 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지만, 최근 몇년 사이 급속한 해안 침식으로 더는 숲길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이정표와 안내판이 쓸려 나갔고, 길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드나들던 숲길 입구는 ‘출입 금지’ 간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전해변은 전라도 해안의 원형을 간직한 곳이어서, 급격한 해안 침식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전남 신안군을 비롯해 충남 보령, 태안 등 서해안은 모래 입자가 작고 결이 부드럽다. 바닷가에서 손으로 만지거나 발로 걸어보면 동해나 남해 쪽과는 그 감촉이 다르다. 그런데 우전해변을 포함해 신안군의 해안에선 10년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 매년 찾아오는 태풍의 해일과 파랑, 그리고 연안류와 이안류 때문에 모래가 바다 쪽으로 유실되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2022년부터는 그 진행이 더 활발해졌다.

과거의 모래 채취도 해안 침식에 영향을 미친다. 증도를 비롯해 신안군의 여러 섬들은 2002년까지 서해안의 대표적인 모래 채취 지역이었다. 1973년부터 2002년까지 신안군 해역공유수면에서의 골재 채취량은 2700만㎥(15톤 트럭 300만대 분량)였다. 허가받은 채취량이 그렇다. 신안군과 진도군은 불법 채취된 골재 분량을 8천만㎥로 추정한다. 모두 합하면 1억㎥가 넘는다. 신안군에서는 2002년 모래 채취를 금지할 당시에도 전체 해안선 1270㎞ 중 약 6%(76㎞)가 침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오늘날 우전해변 침식은 과거 모래 채취의 악영향이 20년이 지나서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충남 서해안은 해수욕장으로 이용하는 곳 외에는 대부분 호안과 옹벽 등 콘크리트 시설로 둘러싸인 인공 해변으로 변해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구조물들조차 침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캠핑족들에게 일몰 감상 명소로 알려진 태안군 운여해변이 대표적 사례다.

해수욕장에 모래 퍼붓기

빼어난 경관과 해안림으로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2018년부터 급격히 침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2022년 해양수산부(해수부)의 연안침식 조사에 따르면 2015년과 비교해 단면적이 40%가량이나 줄었다. 배후지 훼손을 막기 위해 해안선 500m 구간에 콘크리트 호안을 설치했는데, 이후 북쪽 자연해안에서 오히려 침식이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호안으로 인해 해안선이 단조로워지고 새로 유입되는 모래의 양이 감소하면서 자연해안에 그 피해가 전가된 것이다. 북쪽 해안선이 무너지면서 블록 호안이 설치된 구간도 함께 망가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을 아래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블록과 소나무가 뒤엉켜 있는 해변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침식은 해수욕장 운영에도 영향을 준다. 해수부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해수욕장 중에서 부산 지역이 가장 심각한 침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 단계인 시(C)등급과 ‘심각’ 단계인 디(D)등급을 나타내는 ‘침식 우심률’이 88.9%에 이른다. 부산은 해운대, 송정, 다대포 등 해수욕장 8곳 중 7곳이 모래 공급, 즉 양빈을 하지 않으면 운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접어들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투입한 모래는 총 71만4398㎥였다. 25톤 덤프트럭 4만대 분량이다. 162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이 중 해운대해수욕장에 쏟아부은 모래가 전체의 82.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운대는 2010년께부터 모래 유실이 이어지고 있다. 2015~2017년 사이에는 백사장 너비가 평균 69m에서 49m로 20m나 줄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 해수욕장이 인공수혈을 하지 않으면 연명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동해안 해수욕장도 위기다. 경북 포항시 송도해수욕장은 모래 유실이 심각해 2007년 문을 닫았다. 이후 해수욕장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300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했다. 모래 공급을 본격 추진하고 침식을 줄이기 위한 수중 방파제도 설치했다. 포항시는 2022년과 2023년 해수욕장 재개장을 위해 노력했으나 올해도 문을 열지 못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주요 해수욕장은 양빈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영진해변(가까운 쪽)과 사천진해변(먼 쪽)의 해안 침식은 주문진항의 방파제와 이안제 건설로 바닷물 흐름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녹색연합 제공

강원도 역시 전체 해안 곳곳에서 침식이 관찰된다. 가장 심각한 곳은 강릉과 삼척이다. 강릉 사천진해변과 영진해변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경포대와 함께 강릉에서 가장 ‘핫’한 해변으로 각광받았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전국에서 찾아온 20~30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곳의 해안 침식은 관광객의 발길보다 더 가파르게 해변의 모래를 잠식하고 있다.

사천진해변은 경포해수욕장에서 해안선을 따라 약 5㎞ 북쪽에 있다. 2018년 겨울올림픽 이후 강릉까지 케이티엑스(KTX)가 다니면서 인기 관광지로 떠올랐다. 그런데 2021년께부터 모래가 사라지면서 해변의 카페와 식당에서 설치한 해수관로 구조물까지 드러날 정도로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천진에서 북쪽으로 약 4㎞ 떨어진 영진해변도 상황은 비슷하다. 해변 도로까지 위협받을 정도다. 과거 아름다운 모래를 자랑하던 해변 풍광은 사라지고 지금은 도로와 카페, 식당 등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인해 해안가가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방파제가 조류를 왜곡·차단

사천진과 영진의 해안 침식은 인근 주문진항의 방파제와 이안제 건설로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1990년대부터 동해안을 비롯해 전국 해안에서 항·포구 정비사업으로 많은 방파제와 이안제, 수중 방파제를 건설했다. 그런데 이런 인공구조물이 연안 해안의 조류에 영향을 준다. 해안의 형태와 환경에 따라 파도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여건에서, 밀물·썰물 때 바닷물의 흐름(조류)을 마구잡이 개발이 차단하거나 왜곡해 해안 침식의 가속 페달이 되고 있는 셈이다. 동해안은 크고 넓은 바다와 접한다. 그래서 파랑의 영향도 남·서해안보다 더 크고 세다. 겨울에 파랑으로 해안의 모래가 밀려 나갔다가 여름에 다시 퇴적되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10년 전후부터 무서운 ‘너울성 고파랑’이 늘고 있다. 2014~2016년에만 109회가량 발생했다. 너울성 파랑은 물결이 먼바다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다 수심이 얕은 해안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현상으로, 발생이 불규칙해 예측하기 힘들다. 이런 너울성 고파랑으로 겨울철 모래가 사라지는 양상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여기에다 태풍의 고파랑도 커지는 추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파랑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이다.

연안 해안 개발 사업으로 동해안 최고의 해안 사구가 사라진 현장도 있다. 강릉시 하시동 안인사구 일대다. 안인사구는 동해안 최대 크기(23만3964㎡)의 해안 사구다. 해송과 갯방풍이 모래를 감싸듯이 펼쳐진 해안 사구의 원형을 뽐내던 곳이었다. 다양한 해안 식물과 법적 보호 동식물이 서식해 동해안의 생물다양성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2008년 환경부는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서도 해안 침식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진입로가 침식으로 자취를 감췄고, 최근 몇년 새 300~400m가량의 사구가 사라진 자리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섰다. 응급 복구용 토목 구조물로 임시방편 대응을 하고 있지만, 해안 사구의 완충 작용이 없어져서인지 밀어닥치는 파도의 힘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강릉 안인사구 훼손은 안인 화력발전소 시설 보호를 위한 대규모 방파제 건설 등 막개발이 부른 해안 침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녹색연합 제공

안인사구의 해안 침식은 막개발이 부른 해안 침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로 옆 안인 화력발전소는 연료용 석탄을 바다에서 하역해 운송하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부터 바다 한가운데 대규모 방파제를 건설했다. 항·포구의 방파제 공사로 인한 침식은 보통 공사 시작 10년 이후부터 인근 1~10㎞ 해변에 나타난다. 그런데 안인사구는 화력발전소의 방파제가 들어서고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침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파제가 동해안 유일의 해안 사구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환경정책기본법은 환경 오염이나 훼손의 복구 비용 부담에 대해 ‘오염 원인자 책임 원칙’(제7조)을 명시했다. 강릉 안인사구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안인 화력발전소의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한 당사자다. 통상 이 정도 훼손이면 강릉 화력발전소에 사구 복원 명령을 내리고 필요한 조치를 한다. 그런데 환경부, 강릉시, 해양수산청 등 관련 기관 모두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2021년 강릉 시민대책위원회가 화력발전소 시공사인 삼성물산을 골재채취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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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모니터링, 평가, 대책 시급

막개발로 인한 해안 침식은 해수면 상승의 영향과 맞물리면서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연안 해안을 이용하는 개발 사업에서 방파제를 비롯한 인공구조물을 조성할 때는 엄격하고 정확한 환경영향평가가 필수적이다. 현재 연안 해안 개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해안 침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며, 조사도 예측도 부실하다. 환경부가 해안 침식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연안 해안의 환경영향평가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다. 해수부도 해안 침식에 대한 전국 조사와 대응을 하고 있지만, 현장의 심각성에 비춰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국내의 해안 침식을 조사·연구하는 전문가 상당수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고 해수면 상승이 해안 침식을 촉진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강원대 김인호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는 “해수면 상승이라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고려할 때 연안 해안 침식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밀한 모니터링과 전문성을 갖춘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으면 해안 침식은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해수면 상승을 기후위기의 대표적 징후의 하나로 꼽는다. 우리 동해와 서해에서도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다른 요인의 해안 침식에 해수면 상승의 영향이 더해지면 재난적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후위기는 일정한 단계를 넘어서면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는 특징이 있다. 가뭄이나 폭염 같은 기상이변의 정도가 극한으로 치닫고 충격의 강도가 훨씬 세진다. 올여름 불볕더위와 열대야는 기후위기가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다. 서울에서 30일 넘는 열대야는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의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연안 해안을 대책 없이 개발한다면 더 빠른 속도로 백사장이 사라지고 우리 삶의 터전과 미래까지 위협할 것이다.

박성준 녹색연합 활동가,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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