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파월의 16분 연설, 프랭크시나트라의 ‘마이웨이’ 같았다[★★글로벌]
연준, 주저 없이 책임 다해” 자평
마치 프랭크시나트라가 명곡 ‘마이웨이(my way)’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23일 와이오밍주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의 연설이었습니다.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를 열망하는 전 세계 관중들에게 그는 “이제 정책을 조정할 때가 왔다(The time has come for policy to adjust)”는 말로 충분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한 지속 가능한 경로를 향하고 있다는 내 확신은 커졌다”는 말은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쐐기를 박는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통화정책 기조 전환을 확실하게 외친 그의 발언에 미국 증시는 1% 이상 상승했고 금값도 유가도 모두 뛰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듣고 싶어했던 그의 통화정책 전환 메시지는 16분 10초에 이르는 전체 연설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날 파월 의장의 연설을 아우르는 내러티브는 팬데믹 쇼크가 몰고왔던 고통의 시간, 그리고 고용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분투한 연준의 노력입니다.
이를 축약하자면 <시장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연준이 적기에 잡을 것이라는 신뢰를 보여줬고> <연준은 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인플레이션을 2%대로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프랭크 시나트라가 자신의 인생 여정을 ‘마이웨이’라는 노래에 담아 부르듯이 그는 연설 말미에 “이러한 확신은 수 십년 간 구축됐고 우리의 행동으로 강화됐다. 그것이 나의 평가(That is my assessment)”라고 읇조립니다.
그는 먼저 2019년 팬데믹 발발 후 위기 상황에서 늘 그렇듯이 미국인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혁신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어 당시 행정부가 긴급 경기부양책으로 제시한 2700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경기부양 패키지(Cares Act)를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며 연준 역시 조기에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경제 불황을 막기 위해 전례 없이 많은 권한을 사용했다고 전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특히 2021년 3월부터 목표치를 밑돌던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뛰어오른 데 대해 “초기 인플레이션은 광범위하지 않고 응축적으로 발생했다”며 “나와 내 동료들은 이러한 팬데믹 관련 요인이 지속적이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통화정책 대응 없이도 인플레이션 급등이 상당히 빠르게 지나갈 것으로 생각했다”고 초기 상황 판단을 고백했습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잘 고정돼 있으면 개입보다는 관망을 하는 게 중앙은행의 적절한 태도라는 것이죠.
그는 실제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한동안 이 같은 일시적 추정과 일치하다가 2021년 10월부터 추정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상품에서 서비스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강력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이를 인식했고 그해 11월부터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사실 이 대목에서 경제 전문가들이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늦었다고 지적합니다.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이 결합돼 공급이 제한되고 총수요는 급증하는 상황을 연준이 ‘일시적’이라고 과소평가하고 너무 늦게 ‘인플레 파이터’가 됐다는 것이죠.)
연준의 태세 전환으로 2022년 425bp, 이듬해 100bp 인상 등 현재의 기준금리에 도달하게 된 것이죠.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치닫던 2022년 여름과 비교해 지금 4.5%포인트나 낮아진 것은 고용시장에 막대한 희생을 초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낸 것이라 의미가 크다고 강조합니다.
이 대목부터 그의 연설은 마이웨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며, 결과는 최고였다”는 감성적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을 피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마술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는 “팬데믹발 수요 및 공급의 왜곡이 완화하는 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궁극적으로 디스인플레이션에 큰 역할을 했다”며 “제한적인 통화 정책은 총수요의 완화에 기여하고 총공급의 개선과 결합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췄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노동 수요가 완화되면서 역사적으로 높았던 실업률 대비 채용에 실패한 빈 일자리(Job Vacancies) 덕분에 대규모의 파괴적인 해고 조치 없이도 노동시장이 정상화됐고, 이는 노동시장이 더이상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는 요소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파월 의장은 설명했습니다.
종합하면 팬데믹이 야기한 수요 공급의 왜곡 현상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총수요 조절을 위한 연준의 노력, 그리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잘 고정돼 온 점 등이 작용해 인플레이션 목표가 2%를 향한 지속가능한 경로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2년 전 잭슨홀 미팅 포디엄에 섰을 때 그는 향후 연준의 조치가 실업률 상승과 성장 둔화라는 고통을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2년이 흘러 복기해보면 실업률 상승과 성장 둔화라는 고통이 염려했던 만큼 크지 않았으며, 이는 연준에 대한 시장의 신뢰와 더불어 연준 역시 해야 할 책무에 대해 주저하지 았았기에 가능했던 성과라고 보는 것이죠.
파월 의장은 이를 ‘역사적으로 이례적인(historically unusual)’이라는 수식어로 자평합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명백히 드러난 우리 지식의 한계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현재의 도전에 유연하게 적용하는 겸손과 질문 정신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파월 의장은 지난 3년 간 팬데믹과 각종 지정학 리스크가 야기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준이 무엇을 얻고 놓쳤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며 열린 자세로 외부의 비판을 듣겠다며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으로 연준 의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금리를 낮춰라”, “우리는 매우 강한 달러와 매우 약한 연준을 갖고 있다”, “우리의 적은 중국이 아닌 연준”이라는 비난과 정치적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급격히 상승한 기준금리에 대해 정치적 언급을 자제했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것은 정치적 손익 계산을 넘어 미국 경제와 세계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위협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최근 대통령실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이례적으로 아쉽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중앙은행의 독립성 관점에서 후진적인 외압 신호입니다.
역대 어느 연준 의장보다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을 경험했던 그였기에, 또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트럼프 후보 측의 반발이 커지는 상황이라 이날 연설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처럼 의연한 톤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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