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몰고 온 ‘햇볕데임’…사과 품위 떨어져 ‘울상’
과일표면 불에 덴듯 색깔 변해
'홍로'에서 '후지'까지 확산조짐
경감제 더 뿌려도 막기엔 역부족
농작물보험 현실 맞게 개정 필요
이달 들어 낮 기온이 35℃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20여일째 이어지고, ‘열대야’ 지속 일수가 최장 기록을 연신 갈아 치우는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사과 햇볕데임(일소) 피해가 커지고 있다. 중만생종인 ‘홍로’에서 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만생종 ‘후지’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의성군 옥산면에 있는 2148㎡(650평) 규모 과원에서 ‘홍로’를 재배하는 김정민씨(68)는 “이달초 햇볕데임 경감제를 뿌렸지만, 20일 넘게 35℃가 넘는 폭염과 함께 밤에도 28℃까지 치솟는 열대야로 열매 절반 이상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고온 다습한 날씨 탓에 탄저병도 차츰 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2일 오전 찾은 김씨 과원에는 실제로 직사광선에 노출된 부위가 누렇게 변색하고, 일부는 썩고 있었다. 몇몇 과실은 탄저병이 이미 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김씨는 이번주 들어 조금씩 수확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팔 수 있는 과일은 절반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인근에 있는 ‘후지’ 밭에서도 일부 햇볕데임 피해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사과는 30℃ 이상 고온에서 비대가 멈추며,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표면이 데인 듯 색이 누렇게 변하는 햇볕데임 현상이 발생한다. 데인 곳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뭇거뭇하게 썩는다. 올해는 특히 6월부터 고온이 시작됐고, 이달 들어서 35℃가 넘는 불볕더위가 지속돼 수확을 앞둔 중생종 위주로 피해를 호소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일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명재철씨(71)는 “평년 같았으면 나무 한그루당 1∼2개 정도 햇볕데임 피해가 나타났는데, 올해는 보다시피 나무에 달린 과실 80∼90%에서 발생했다”면서 “약제와 햇볕데임 경감제 등 방제를 지난해보다 3∼4회 더 했지만, 워낙 고온에 강한 볕이 오래 지속돼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충북 충주·보은, 충남 예산 등지도 마찬가지다.
충주에서 2만9752㎡(9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운영하는 유성종씨(62)는 “20년 넘게 사과를 키웠지만, 올해만큼 햇볕데임 피해가 심하게 발생한 적은 처음”이라며 “햇볕데임 방제제를 2번 뿌렸는데도 이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군 신암면에서 7603㎡(23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김종훈씨(79)도 “예년에는 햇볕데임 피해를 본 사과가 전체의 5% 정도였는데 올해는 계속된 폭염으로 30∼40%나 된다”며 “사과 과수원 내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초저녁에 고속분무기(SS기)에 얼음 물을 채운 후 살포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하소연했다.
농가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을 열대야’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폭염의 기세가 꺽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명씨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나마 멀쩡했던 사과가 이번주 들어 급격히 증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후지’에도 일부 햇볕데임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낮 최고 기온이 33℃가 넘는 상황이 일주일만 더 계속되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는 착색도 잘되지 않아 수확시기를 늦춘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당초 이달 28일쯤으로 예상했던 수확을 9월5일경으로 연기한 김종훈씨는 “수확 시기를 늦추면 약을 치는 횟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경영비는 경영비대로 더 든다”고 함숨을 쉬었다.
현장에서는 갈수록 이상기후 피해가 심각해지는 만큼 농가 보호를 위해 농작물재해보험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인찬 영주 풍기농협 조합장은 “이상기후로 농업피해가 늘어나면서 농사짓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며 “각종 자연재해와 이상기후로부터 농업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농작물재해보험’을 보다 세밀하고 현실에 맞게 개정해 피해농가가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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