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부양에 사활"…한화 김동선의 544억 승부수

정혜인 2024. 8. 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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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신사업 주도 김동선, 부진 '본업' 챙기기
갤러리아, 5개점 역성장에 2분기 적자 전환
반토막 난 주가에 오너 경영인 '파격' 결단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한화그룹 오너 3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부사장)이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화갤러리아의 주식을 직접 공개매수 하겠다고 발표한 건데요. 무려 544억원의 사재를 투입합니다.

공개매수는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로부터 그들의 보유 주식을 장외에서 집단적으로 매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결권 추가 확보로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싶을 때,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려고 할 때, 또는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해 자회사 주식을 사들일 때, 상장 폐지에 앞서 지분율을 끌어올리려고 할 때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공개매수 주체는 주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주주들이 공개매수에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공개매수가 끝나면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이 줄어들어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업이 주체가 돼 공개매수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동선 부사장이 직접 나서 개인 현금을 들여 지분을 매입합니다. 오너 개인이 사비를 들여 직접 회사의 주가 부양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신사업은 잘 나가는데

김동선 부사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입니다. 1989년생으로 미국 태프트스쿨(고교)을 다녔고 다트머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6년, 2010년, 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3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죠.

김 부사장은 2014년 한화건설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15년 한화갤러리아의 면세사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는데요. 당시 한화건설 과장이었지만 경영수업 차원에서 면세TF에 참여해 명품 브랜드에 한화면세점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약 2년간 개인사업을 하며 식당업도 벌였습니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 부사장. / 그래픽=비즈워치

김 부사장은 2020년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담당으로 그룹에 복귀했습니다. 현재는 주로 그룹 유통업과 식음업, 그리고 로봇 등 신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김 부사장이 현재 갖고 있는 직책은 (주)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 한화로보틱스 전략담당, 에프지코리아 글로벌전략담당, 아쿠아플라넷 전략부문장입니다.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신사업 분야는 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 에프지코리아를 통해 들여온 '파이브가이즈'입니다. 김 부사장은 브랜드 유치부터 1호점 오픈 준비 과정까지 직접 챙겼는데요. 파이브가이즈의 창업주를 여러 차례 만나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적도 괜찮습니다. 한화갤러리아 식음료 사업부문은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106억원의 매출액을 냈는데요. 올 상반기에만 그 두 배가 넘는 215억원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이외에도 김 부사장은 한화푸드테크 출범, 미국 로봇 피자 브랜드 '스텔라피자' 인수 등 다양한 신사업도 지휘 중입니다. 이 같은 성과에 김 부사장은 최근 한화갤러리아에 새롭게 만들어진 직책인 미래비전총괄까지 맡았습니다.

고꾸라진 백화점

문제는 '본업'입니다. 한화그룹 유통업의 핵심은 한화갤러리아가 운영하는 백화점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실적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한화갤러리아가 현재 국내에 운영 중인 5개 백화점은 지난해 모두 역성장했습니다. 올 상반기에도 이 점포들의 매출액은 뒷걸음질 쳤는데요.

최근 백화점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아쉬운 결과입니다. 매출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백화점이 부진하다 보니 한화갤러리아의 실적도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2분기에는 코스피 재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적자까지 냈죠.

/그래픽=비즈워치

당연히 주가도 바닥입니다. 한화갤러리아가 재상장한 지난 3월 31일 주가는 장중 2650원까지 올랐는데, 이 가격이 재상장 이래 가장 높은 가격입니다. 이후 갤러리아의 주가는 계속 하락해 지난해 10월에는 주당 993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김 부사장이 나섰습니다. 그는 주식을 계속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원래 한화갤러리아 지분이 없었는데요. 한화갤러리아 재상장을 마친 후 지난해 4월 5만주를 장내 매수하며 처음으로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후 7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주식을 조금씩 사들였고요. 한화갤러리아의 주가가 1000원선 아래로 떨어지자 10월 말부터는 아예 주식을 매일 같이 사들였습니다. 장이 열지 않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주식을 매입했죠.

이렇게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재상장 이후 올해 5월 9일까지 137회에 걸쳐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이 기간 주식을 매입하는 데 들인 돈도 54억8500만원이나 됩니다.

544억원의 승부수

김 부사장의 노력 덕분인지 한화갤러리아의 주가는 지난 2월 1845원까지 회복됐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계속 실적이 악화하다 보니 주가도 좀처럼 상승할 기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김 부사장은 아예 대규모 공개매수를 선언하고 높은 프리미엄을 내걸었습니다. 김 부사장이 내건 가격은 주당 1600원입니다. 이는 한화갤러리아의 최근 1개월 종가 평균(1190원) 대비 약 34%, 지난 22일 종가(1303원) 대비 약 23% 높은 가격입니다. 최근 공개매수에 실패한 사례들만 봐도 이는 꽤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입니다.

한화에너지는 지난 7월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한화 지분 공개매수에 나섰는데요. 당시 매수가는 공개매수 발표일 전일보다 7.7% 높은 수준에 불과했고, 결국 응모율은 65%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 6월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섰던 신성통상의 매수 가격도 발표일 전일 대비 13.3% 높았는데요. 응모율이 고작 27%에 그쳤습니다.

역시 지난 4월 상장폐지에 앞서 공개매수를 추진한 락앤락은 발표일 전일보다 7.0% 할증된 가격을 제시했는데요.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면서 매수 기간을 3주 연장하기까지 했지만 응모율이 52%에 그치자 추가 공개매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픽=비즈워치

이와 비교하면 김동선 부사장이 제시한 가격은 매력적입니다. 실제로 주주들의 반응이 긍정적인데요. 한화갤러리아의 주가는 23일 종가 기준 1511원으로 전일보다 15.96%나 올랐습니다.

물론 아무리 오너 일가여도 단번에 544억원의 현금을 끌어오긴 어렵겠죠. 재계에서는 김 부사장이 자신의 한화에너지 지분 25.0%를 담보로 해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나옵니다. 김 부사장은 한화에너지 외에 한화(2.14%) 지분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김 부사장의 입지는 형들에 비해 그리 단단하지 않습니다. 김승연 회장의 첫째 아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에너지, 우주 사업 등 그룹 중추사업을,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계열사를 책임지는데요. 김동선 부사장이 맡은 유통·레저·식음 분야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습니다. 그러니 경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회사를 대신해 직접 주가 부양에 나선 것도 그 노력 중 하나겠죠.

이번 공개매수가 성공한다면 김 부사장의 지분율은 2.32%에서 19.86%로 치솟습니다. 개인 재산을 544억원이나 투입한 만큼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도록 경영에 매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544억원의 승부수를 던진 김 부사장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사업으로 한화갤러리아를 변화시킬지 궁금해지네요.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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