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선수가 한화에 많이 나와야 한다" 신인 3할 타율도 대단한데…그보다 더 빛나는 것
[OSEN=이상학 기자] “저런 선수가 한화에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황영묵(25)은 신인답지 않은 고감도 타격을 자랑한다. 시즌 막바지로 가는데도 타율이 3할대(.310)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까지 올 시즌 96경기 타율 3할1푼(287타수 89안타) 3홈런 31타점 44득점 OPS .752를 기록 중이다. 규정타석에 46타석 모자라지만 한화 팀 내 최고 타율이다. 지난 5월28일부터 한 번도 3할 타율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하다.
시즌 초반에는 좌투수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경기에 계속 나가면서 빠르게 극복했다. 후반기 들어 오히려 우투수(.292)보다 좌투수(.333) 상대 타율이 더 높다. 수비 실책이 12개로 많긴 하지만 2루수, 유격수를 넘나들며 한화 내야에 없어선 안 될 핵심 내야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김경문 한화 감독은 이런 기록보다 중요하게 보는 게 있다. 황영묵에 대해 “타격 재능이 있다. 신인인데 지금까지 계속 잘해주고 있다”고 말한 김 감독은 “경기에 나가면 제일 열심히 플레이하는 선수다. 얼마나 보기에 좋나. 야구가 매일 경기는 이길 수 없어도 팬들한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절대 욕은 안 먹는다. 우리 대전 팬들이 많은 사랑을 주실 때 감독으로서 영묵이 같은 선수가 더 많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영묵은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도 종종 한다. 요즘은 부상 방지 차원에서 금지시키는 구단도 있지만 간절한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1루에 몸을 내던진다. 황영묵도 그런 선수다. 지난 1일 수원 KT전에선 13-4, 무려 9점 차로 앞선 8회초 2루 땅볼을 치고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크게 앞선 상황에서도 몸을 날렸고, 간발의 차이로 내야 안타가 됐다.
한참이 지난 뒤에도 그 장면을 잊지 않은 김 감독은 “스코어가 많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그렇게 안타를 만든다. 1안타의 귀중함을 선수들이 보고 느꼈을 것이다. 난 그런 플레이가 팀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팀에 저런 선수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절한 눈빛과 승부 근성은 수치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 매일 지켜보는 코칭스태프 눈에 안 보일 수 없다.
황영묵은 익히 알려진 대로 프로에 오기까지 남들보다 6년이 늦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 바로 중퇴했다.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대학 생활 대신 야구에 올인할 수 있는 독립야구단으로 향했고, 군복무 2년 포함 신인 드래프트 지원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더라면 버티기 힘든 시간. 지난해 9월 한화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매사 진지하게 온힘을 다해 뛰고 있다.
이제는 자신감도 제대로 붙었다. 지난 20일 청주 NC전에선 5회말 2사 1루에서 스리볼에 배트를 휘둘렀다. 상대 투수 에릭 요키시의 4구째 공을 받아쳐 2루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김 감독은 “스리볼에선 히팅 사인을 내도 중심타자 아니면 잘 못 친다. ‘혹시 못 치면 어떡하나’ 결과부터 생각해서 그렇다. 우리가 점수를 못 내고 있었고, 영묵이가 펀치력도 있기 때문에 좋은 볼이 오면 쳐보라고 했는데 진짜 치더라. 칭찬하고 싶다. 안타를 쳐서가 아니라 마음 속으로 그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며 흡족해했다.
한화는 지난 21일 다리에 불편함을 안고 있는 중심타자 안치홍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며 회복 시간을 줬다. 황영묵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면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안치홍이 빠진 2루 자리에 다시 들어간 황영묵은 23일 잠실 두산전에서 1번 타자로 나가 4타수 3안타 1볼넷 4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한화의 7-4 승리를 이끌었다. 1회말 무사 1루에서 이유찬의 강습 타구를 빠르게 잡고 병살로 연결해 동료 투수 라이언 와이스의 박수를 받는 등 수비도 좋았다.
여기에 과감한 주루도 돋보였다. 4회초 2사 후 중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두산 투수 시라카와 케이쇼의 초구 포크볼이 바운드로 들어가 포수 앞에 떨어졌다. 폭투로 기록되긴 했지만 공이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황영묵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2루로 뛰었다. 김기연이 한 박자 늦게 송구했지만 황영묵의 2루 터치가 빨랐다. 비디오 판독 끝에 아웃에서 세이프 번복. 이어 요나단 페라자의 중전 안타에 황영묵이 홈을 밟아 5-1로 달아나는 득점을 올렸다.
6-4로 쫓긴 8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을 얻어낸 뒤 투혼의 전력 질주도 박수를 받았다. 1사 1루에서 유로결의 바운드된 타구가 3루수 키를 넘어 좌익선상으로 빠지자 과감하게 2~3루를 지나 홈까지 파고들었다. 전력 질주 끝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쓸며 귀중한 추가 득점을 올렸다.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온몸을 날린 황영묵의 흙투성이 유니폼이 어느 때보다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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