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후 “안전교육 했다”던 아리셀 대표…수사 결과는? [취재후]
지난 6월 24일,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화성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 화재 사고가 있었습니다.
참사 다음 날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취재진 앞에서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이며 '불법 파견은 없었고, 안전 조치는 적절히 이루어졌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유가족들이 대기하는 화성시청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서 어제(23일) 이 사고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아리셀 측 주장은 사실이었을까요?
■ '불법 파견' 있었나
참사 희생자 23명 중 18명은 외국 국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원청사인 아리셀이 아닌, 무허가 인력파견업체 메이셀을 통해 사실상 '불법파견' 형태로 근로했다는 정황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지만, 아리셀 측은 부인했습니다.
"불법 파견은 없었습니다."
- 박순관 아리셀 대표 (2024년 6월 25일)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불법 파견과 관련해서는 근로자 파견 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로부터 근로자 파견 대상 업무가 아닌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 업무에 근로자 파견의 역무를 (아리셀이) 제공받고 (메이셀이) 제공한 혐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 강운경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 (2024년 8월 23일)
현행 파견법상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 근로가 금지돼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아리셀은 5월부터 메이셀을 통해 근로자 53명을 신규로 공급받았고, 충분한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채 이들을 위험한 공정에 투입시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불량률은 두 달 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불량도 등장했습니다.
제품이 찌그러지거나 실구멍이 생긴 건데, 아리셀 측은 우레탄 망치로 불량 부위를 억지로 결합하거나 실구멍을 다시 용접해 양품처럼 만들어 생산을 강행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 땜질 처방으로 생산을 이어온 겁니다.
■ 배터리 보관, 적절했나
아리셀이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생산을 강행한 이유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였습니다.
방위사업청에 보낼 물량을 맞춰야 했는데, 지난 4월 품질검사에서 '규격 미달' 판정을 받은 겁니다.
이후 5월부터는 하루에 70여만 원의 지체금을 내야 했습니다.
결국 6월 납기일이 다가오자, 5월 10일부터는 평소 생산량 2배에 가까운 '하루 5천 개'를 목표로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생산이 끝난 배터리라도 제대로 보관해야 했습니다.
"보관 상태는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 박순관 아리셀 대표 (2024년 6월 25일)
하지만 참사의 징후는 5월부터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참사 1달 전인) 5월 16일부터는 전기 폭발의 징후가 될 수 있는 발열 전지가 발견되었음에도 안전성에 대한 검증도 실시하지 않았고, 별도로 보관하던 발열 전지를 모두 양품화하였습니다."
-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 (2024년 8월 23일)
■ 참사 이틀 전 화재, 후속 조치 적절했나
참사 이틀 전인 6월 22일,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아리셀 측은 참사 원인과는 다른 이유로 발생한 거로 추정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현장 작업자가 적절하게 조치해 진화했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돼서 (119신고 없이) 생산을 재개했습니다. 당시 발생한 화재는 지금 문제가 된 화재 원인과는 다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 (2024년 6월 25일)
그런데 수사 결과는 달랐습니다.
참사 이틀 전 전해액이 들어간 전지가 폭발해 불이 난 거로 파악됐는데, 아리셀 측은 원인 분석도, 후속 조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폭발이 일어난 배터리와 같은 시기에 생산된 배터리들에 대한 분리 조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 배터리들은 6월 24일 오전 9시 20분쯤 사고 장소였던 3동 2층으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 노동자 안전 교육과 점검, 제때 이루어졌나
"안전 점검은 저희가 정기적으로 받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출구 같은 것도 작업자들이 처음 출근하셔도 잘 볼수 있게끔 조치했습니다."
- 박순관 아리셀 대표 (2024년 6월 25일)
하지만, 경찰은 인명 피해가 커진 결정적 이유로 '안전 조치'를 꼽았습니다.
아리셀 측은 노동자를 채용할 때마다 진행해야 하는 '사고 발생 시 긴급조치 및 대피요령'에 대한 교육을 제때 하지 않았습니다. 피난 훈련을 포함한 소방 훈련 및 교육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비상구와 비상 대피로에 대한 정보 제공이 없는 등 총체적인 부실 때문에 최초 폭발 이후 대피를 위한 37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다수 근로자들은 출입구 반대편에 고립된 채 사망하였습니다."
-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 (2024년 8월 23일)
■ 탈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나
사고 당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경로는 출입구와 비상구 2개였습니다.
"출입구 외에 비상구가 마련돼 있었고, 문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 (2024년 6월 25일)
하지만 그중 일부는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 반대 방향으로 열리도록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있는 비상구마저 항상 사용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전지 트레이가 대피로를 막고 있던 겁니다.
또 비상구로 가는 문은 잠겨있었는데, 이를 열기 위해 사원증 또는 지문 인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 절차가 '정규직'만 가능했다는 겁니다.
실제 비상구로 나와 생존할 수 있었던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이었는데, 정규직 한 명이 '지문'을 찍고 문을 열어 탈출할 때 따라 나온 경우였습니다.
"비상구는 누구든지 상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직급의 차이에 따라서 또는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에 따라서 이 문을 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건, 이미 비상구의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겁니다."
- 고혁수 경기남부경찰청 강력계장 (2024년 8월 23일)
■ 군납 시작하던 2021년부터 '성능 조작'
경찰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난 사실이 있습니다.
아리셀은 2021년에 배터리의 군납을 시작할 때부터 '품질검사용' 배터리를 별도로 만들어 시료와 바꿔치기하거나, 시험 데이터를 조작해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군에 납품된 전지는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 원 상당입니다.
■ "누군가 대피하라고 안내만 했더라면…."
언론 브리핑을 하던 경찰은 "희생자분들은 이 배터리 화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지 못했다. 안전교육이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라며, " 누군가가 대피하라, 따라 나와라, 이런 안내만 했어도 상당수의 희생자를 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 된 '인재'로 드러났습니다.
영상편집: 김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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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기자 (212@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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