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념’ 결핍된 사람이 공직자 될 때

한겨레 2024. 8. 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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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생명체와 인간사회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유전적·문화적 공진화
사회도 ‘사익-공익’ 태생적 긴장

최근 청문회 인사 몰염치 심각
‘공적인 것’의 가치 다시 살펴야

인간은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대략 40억년 전 생명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들 그리고 자연환경과 쉼 없이 관계를 맺으며 분기를 거듭했다.

인간은 중신세 말기 24쌍의 염색체를 지닌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염색체 융합을 통해 23쌍의 염색체를 지닌 호모(Homo)속으로 등장했다. 유전적 진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이후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서 작고 큰 사회를 쉼 없이 구성하면서 집단두뇌를 형성하고 개인의 일생 동안 획득할 수 없는 집단지식을 긴 시간에 걸쳐 구축하며 문화적 진화를 거듭했다. 지금의 인간은 이처럼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공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의 속성이 이렇다 보니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다양성과 공공성은 생명이 존재하는 태생적 기반이다.

낯뜨거운 공직자 인사청문회

사회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구성되는 원리도 유사하다. 개인의 자족, 자생, 자존이 보장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상호부조와 공생이 필수적인 공간이 있다. 사회가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선 개성이 침해되지 않고 보장되어야 함과 동시에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규범이 다른 집단의 간섭 없이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사회에는 일정한 규칙 내에서 개인이 누려야 할 사익과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공익이 공존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존에는 늘 긴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공간의 관점에서 사익은 좀 더 단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지만, 공익은 좀 더 장기적이며 공동체중심적이다. 사익은 다른 사익이나 공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구될 수 있고, 공익은 좀 더 다양한 사익이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태생적 긴장을 다루어 해소하는 데에는 여러 역량과 덕목이 요구된다.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시공간적으로 더 넓은 시야를 지니고 공정하게 관계를 아우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공익을 지키거나 키우는 데 기여해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더 나아가 타인의 장점을 수용하는 능력과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은 관계를 형성하여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핵심적인 역량이다. 또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공유재의 가치를 존중하며 자신의 사익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역량과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공적 영역을 담당하고 그 안에서 사익을 누리고자 분투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사회에선 사회적 긴장이 증폭되고 공동체는 공통의 지향을 잃게 된다.

최근 청문회와 세금 이슈들, 그리고 광복절 행사 분리 개최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공개념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법인카드에 담긴 공공재를 적절한 견제와 감독 없이 자기 판단대로 마음껏 사용하였으면서도 일말의 염치를 느끼지 못하는 청문회 속 인사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어쩌면 우리 시대 공개념의 위기 상황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불감증은 마주한 공공재에 담긴 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한 존중의 결핍에서 발생한다.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는 세법 개정으로 2023년 세수가 전년 대비 약 1조8천억원이나 감소한 일, 상속세율 인하 추진, 금융과 정유산업 등에 대한 횡재세 도입을 주저하는 흐름의 이면에는 부의 공적 성격에 대한 부정과 공공재에 대한 철학의 결핍이 깔려 있다. 생명의 기본조건인 의식주의 핵심을 이루는 집이나 토지는 소득의 소재라기보다 그 자체로 공존을 위한 존재의 토대가 된다. 집이나 토지가 재테크의 첫번째 아이템이 되는 사회에서 공동체는 오아시스와 같을 따름이다. 금융이나 정유산업에서 발생하는 횡재가 실은 상당 부분 공공서비스와 공공인프라, 공공정책 및 천연자원이라는 공유재의 영향 아래 발생하며, 횡재의 임의성은 탄탄한 공공 시스템 내에서야 장기적 견지의 사회적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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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념의 아노미 상태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공개념의 부재 상황은 두가지 측면에서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선, 사익을 견제하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공적 체계가 무력해진다. 사익 추구에 유능하고 몰두하는 사람이 공적 영역을 담당하겠다고 자임하는 경우, 공적 영역은 그들의 이익에 맞추어 형해화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공적 영역, 즉 의식주를 이루는 먹거리와 주택, 인간이 문화적 진화의 기본 궤도에 오르는 데 필요한 의료와 교육, 공정하고 열린 소통을 통해 공적 체계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방송과 언론 등이 공적 속성을 잃어버린다. 더 나아가 사익 추구에 여념이 없는 공적 영역은 그를 위해 여론을 형성하고 거리낌 없는 사적 이익의 추구를 제도화하고,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강제하기에 이른다.

둘째, 공개념의 아노미 상태는 공동체가 존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지닌 문화적 자산과 집단적 의식을 폄훼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광복과 독립운동에 대한 해석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발견한다. 일제 식민 지배 시기의 독립운동은 민족과 국가의 대의라는 공익을 사익보다 우선시하고, 문화적 진화를 통해 긴 시간에 걸쳐 쌓아온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공동체의 자취라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통사를 서술하는 까닭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에 쓴 이 글은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식민 지배의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역설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개념에 대한 깊고 큰 혜안을 지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사익을 모두 희생할 수는 없겠지만, 그 역할을 어렵게 수행한 선배들의 노고와 희생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지니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진화는 우리 고유의 궤도를 지닐 수 있었다.

무엇이 공적인 것인지, 공적인 것들은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인간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요건이다. 최근 여러 이슈들이 이에 대해 숙고할 좋은 계기가 되길 염원할 따름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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