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쿵푸팬더는 뺏겼지만…이제는 ‘오공’이 있다! [특파원 리포트]
전 세계를 들썩이고 있는 게임, '검은 신화:오공(黑神話:悟空)'.
화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위압감 넘치는 원숭이를 보면 유추할 수 있듯, 이 게임은 중국 신화 '서유기'를 모티브로 합니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다니며 분신술, 여의봉으로 전투를 벌입니다. 중국 명승지 36곳이 게임 배경으로 선정돼 생생한 그래픽으로 구현됐습니다.
중국 게임 개발사 게임 사이언스가 개발하고 텐센트가 투자한 대작으로, 전 세계 동시 접속자가 2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중국 게임 팬들은 물론 관영매체·정부까지 나서 오공의 성공을 연일 자축하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게임의 성공에 이토록 환호하는 이유, 다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쿵푸'도 '팬더'도 있는데…왜 '쿵푸팬더'는 없을까?
지난 3월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래곤볼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공전의 히트작입니다.
도리야먀 아키라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중국 외교부가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도리야마 아키라 선생은 저명한 만화가로,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많은 중국 네티즌들도 별세에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도, 외교관도 아닌 만화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외교부까지 나선 이유는 바로 중국인들이 드래곤볼 덕에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 합니다.
비록 일본 만화기는 하지만, 손오공이 여의주를 모으는 중국 문화적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드래곤볼은 일본인 뿐만아니라 중국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 문화를 정작 스스로는 활용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드래곤볼이야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암흑기에 머물러 있던 1980년대에 나온 작품이니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미국과 국력을 겨루는 수준이 되고 나서도 좀처럼 자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렇다 할 창작물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가 세계적 인기를 독차지하자 중국 매체들 사이에서 '왜 우리는 이런 걸 못 만드느냐' 하는 한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 중국 매체의 기사 제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쿵푸'도 '팬더'도 있는데, 왜 '쿵푸팬더'는 없을까?"
■"중국의 문화를 '세계로'!"…오공에서 터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드래곤볼과 쿵푸팬더를 제외하고도 중국 문화와 역사를 모티브로 한 콘텐츠는 참 많습니다.
디즈니의 뮬란이 그랬고, 전 세계적인 유명작은 아닐지언정 수많은 한국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만화 '봉신연의'· '용랑전' 등 중국의 문화요소를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해낸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다른 나라들이 중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히트작으로 뽑아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중국만은 세계무대에서 뽐낼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문화를 세계로' 라는 구호가 나온 지 오래지만, 국력 신장에 편승한 문화상품 판매나 중국어 교육 확대 등을 매개로 존재감을 알렸을 뿐 보다 직관적인 콘텐츠에서 오는 '한 방'은 없었습니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 국경 안에서 중국 문화는 언제나 최고의 IP(지식재산권)로 대접받았습니다.
2019년 여름 개봉한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 이하 나타)'가 그렇습니다.
중국 도교 신화에 나오는 '나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중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단기간에 흥행 수익 1억 위안(약 187억 4천만 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해 중국 박스오피스 1위로 쿵푸팬더3의 흥행수입까지 뛰어넘으며 '애니메이션 굴기'라는 말이 탄생하는 등 화제 몰이를 했습니다.
평론가와 대중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IP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중국 국내 흥행으로 그쳤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이 경쟁력을 갖춘 게임 산업에서 마침내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오공'이 대박을 쳤으니 문화적 자부심이 부풀어 오를 만 합니다.
중국에서 오공의 인기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게임 상품의 화제 몰이를 넘어 '손오공의 화려한 재림'이고 '중화문화가 거둔 빛나는 성공'입니다.
중국에는 문화 수출을 단순히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자유민주 진영과 대비되는 현대 중국의 가치관을 다른 나라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매개의 하나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외교부까지 나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게임 흥행을 자축할 정도로 중국 정부도 오공의 인기를 각별히 여기고 있습니다.
게임을 '정신적인 마약'이라고까지 강하게 비판하며 규제할 때는 언제고, 찬사를 쏟아내며 태세 전환에 나선겁니다.
오공의 배경이 된 명승지를 가지고 관광 홍보영상을 찍는가 하면 게임 유저들이 공짜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장료를 면제해 주는 등, 오공의 인기에 힘입어 침체된 내수를 살리려는 움직임까지 보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때아닌 구설수로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개발사가 게임 크리에이터들에게 메일을 보내 페미니즘, 코로나19, 중국 게임산업 정책 등 중국 정부가 반기지 않을만한 민감한 내용 들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된겁니다.
사실이라면 고대하던 히트작 오공의 성공을 퇴색시킬 수도 있습니다.
근두운을 탄 손오공이 마침내 국경선을 넘어 중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렸지만, 검열 논란과 함께 지금 중국의 어두운 이면까지 조명받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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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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