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은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더니‥"어린이병원은 암적인 존재"

정승혜 luxmundi@mbc.co.kr 2024. 8.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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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vital)과의 또다른 이름은 '기피과'입니다. 일은 힘들고 근무시간은 길고 의료 수가는 낮고 소송 리스크는 크기 때문인데요, 기피과(소아과) × 기피과(흉부외과)가 중첩되는 ‘소아흉부외과’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기피과입니다.

체중이 1kg 정도인 미숙아의 심장 크기는 가로 세로 3cm 남짓. 이 작디 작은 심장을 잠시 멈추고 저체온 상태에서 치료한 뒤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고난도의 수술을 독립적으로 해낼 수 있는 소아흉부외과 의사는 전국을 통틀어 8명 밖에 없습니다.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도 1년에 몇 명 되지 않는데다, 그 전공의 자격증을 딴 뒤 다시 2년간 어린이 심장을 세부전공으로 하는 펠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소아흉부외과' 전문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뒤가 더 어렵습니다.


■ 서울대도 지난 3년간 지원자 0명‥"정말 평생 외롭고 힘든데 하라고 해야 하나"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서울대도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은 소아흉부외과 전문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가, 올해 2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30년 간 서울대병원의 소아심장수술실을 지켜온 김웅한 교수는 "아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다음 세대는 없구나 생각한 순간에 소아흉부를 전공하겠다고 지원한 후배들이 너무 소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저는 옛날 사람입니다. 의사는 공공재라고 생각하는‥소명의식으로 해왔지만 후배들에게 이 길을 걸으라고 권유할 수는 없거든요. 정말 평생 외롭고 힘든데, 이런 과를 하라고 해도 될까‥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아흉부외과는 왜 '기피과'가 되었을까? 일단 소아심장수술이 성인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성인 심장수술은 판막, 관상동맥, 대동맥 등으로 정형화돼 있지만 소아 심장병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기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몸무게가 1~3kg 밖에 되지 않는 미숙아, 신생아는 심장이 굉장히 작아 섬세하게 다뤄야하기 때문에 수술 인력이 더 필요하고 최첨단의료장비를 사용해야하지만 의료수가는 늘 원가 이하로 책정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 "에크모·수술비 늘 삭감, 삭감, 삭감‥의사는 도둑놈, 과잉 진료하는 사기꾼인가"

대학병원 의사들과 인터뷰를 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수술비, 치료비를 삭감한다는 겁니다. 의아했습니다. 소위 '원가보존율'이 70% 라면 (환자진료를 위해 병원이 100원을 쓰면 30원을 깎고 건강보험에서는 70원만 보상해준다는 뜻) 늘 적자인데 어떻게 병원이 유지될 수 있을까? 수익이 안 나는데 누가 하려고 할까?

"에크모를 써서 환자가 산 경우에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용처리를 해줬어요. 환자가 죽으면 죽을 환자에게 에크모를 썼다고 삭감해요.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에크모 사용이 늘어났고 환자가 죽었다고 에크모 비용을 다 삭감 못 시키니까 이제는 살린 환자도 삭감하는 거예요." 김웅한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정부가, 심평원이 기본적으로 의사는 도둑놈이고, 사기꾼이고, 과잉진료한다고 보는 거죠. 아니 에크모 안 써도 되는데 쓰는 의사가 어디 있습니까? 에크모는 병원마다 몇 대 없어서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어요. 위급한 환자가 아닌데 진료비 많이 청구하려고 쓴다면 정말 에크모가 필요한 환자가 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의사가 그런 짓을 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하는 수술의 50%는 수술료가 없어요. 심장수술을 하려면 전문의 3명, 전공의 2명, 간호사, 체외순환사 등 14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심평원이 삭감한 수술수가는 인건비도 안 되는 거죠. 재료비도 인정 안 하는 게 많고‥수술비는 수십 년 전 그대로‥싸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싸요."

김 교수는 오늘도 심평원의 수술비 삭감에 이의서를 썼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린 생명 살려보겠다고 수술하는 제가 보험 사기꾼입니까? 뭘 위해 사기를 치죠?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필수의료의 현실이 이런데 의사 수 늘린다고 해결됩니까?"


■ "수술하지 마세요, 수백 억 적자입니다"‥"어린이병원은 암적인 존재"

소아흉부외과는 병원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 "교수님 고생하시는 건 아는데 수술하지 마세요. 수술하면 할수록 적자니까‥"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다반사. 심지어 서울대병원의 다른 과 교수도 "서울대병원 발전의 암적인 존재는 어린이 병원이다.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어린이병원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발전을 못하고 있다"는 발언을 회의에서 대놓고 한다고 합니다. "나쁘다고 욕할 수가 없어요, 돌릴수록 적자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어떡해요. 말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의사가 대신 싸워주고 지켜줘야죠." 김 교수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수술 이후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3~4일 동안 밤낮으로 지키는 것도 소아심장수술에서는 오롯이 의사의 몫, 환자 상태를 보면서 즉시 판단을 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 정성을 다해도 수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거액의 소송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수천 건의 소아심장수술을 집도한 명의로 불리는 김 교수도 소송을 당할까?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기대수명이 긴 소아의 경우는 소송 금액이 10억~20억입니다. 성인에 비해 훨씬 크죠. 수술이 잘되면 당연한 거고 잘못되면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데 소송에 한번 시달리고 나면 아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는 절대 하면 안되는 구나..이런 생각이 들게 되죠.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지만 신이 아니니 100% 다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이 힘들죠. 많이..."


■ 그런데도 소아흉부외과를 지키는 이유는‥"아이가 너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니까요"

김웅한 교수가 의대에 입학한 건 '부모님의 희망'이어서, 막상 가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어수선했던 80년대,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그는 주말마다 구로공단에 진료봉사를 나가면서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그러다 인턴 실습 때 접한 흉부외과는 '신세계'였습니다. "야 이런 과가 있구나.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당시에는 당직실도 없어서 흉부외과 실습 한 달 동안은 거의 잠을 못 잤어요. 햇빛도 못 봤죠. 그런데 비쩍 마르고 입술이 파랗던 아이가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드라마틱하게 좋아져서 방긋방긋 웃으면서‥한 달 후 외래올 때는 통통해져 있고‥그게 너무 감동스러운 거예요. 신기하고. 와! 이런, 정말 이걸 해야겠다. 인턴 돌면서 흉부외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도 소위 '바이탈 부심'을 맛보고 고행길을 잘못(?) 선택했었나 봅니다.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수술한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요. 그걸 지켜보는게 너무 기쁘죠. 보람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제일 괴로운 게 어릴 때 심장수술했다고 취직이 안 될 때입니다. 입사할 때 병력을 기재하게 돼 있는데 제가 ‘심장수술은 수술하면 완쾌되는 병이다'라는 소견서를 아무리 써줘도 회사들이 안 뽑아주는 거예요."

사진: 서울대병원 김웅한 교수 제공

너무 화가 난 김웅한 교수는 올해 2월 아이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났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도 수술을 받고 나면 다 똑같다, 뭐든지 할 수 있고,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다르지 않아요!>였습니다.


■ 전공의들은 돌아올까‥해외의료 봉사 함께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9월이 되어도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응급실 '뺑뺑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필수의료는 무너지고 있는데 해법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언제라도 병원에 갈 수 있고 수술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그동안 수가가 제대로 책정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제도적인 보완없이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지‥라는 소명의식과 희생에 기대온 거죠. 그런데 그건 지속가능하지가 않잖아요. 우리 세대는 해왔지만 우리가 가면 끝입니다. 그걸 후배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의사 수를 늘리면 낙수효과로 하지 않겠나고요? 하면 할수록 적자인 이 일을 누가 하겠어요? 생명을 구하는 일을 맨날 깎고, 후려치고‥말이 안 되잖아요. 이렇게 힘들게 일 안 해도 돈 버는 방법 많습니다. 정부는 '니네가 월급 안 받고 얼마나 버티겠어' 했지만 안 돌아오잖아요. 원인이 뭐고 해법이 뭔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 다 알아요. 하지만 안해요. 2년 있다가 인사이동해서 다른 부서 갈 때까지 복지부동인 거죠."

사진: 서울대병원 김웅한 교수 제공

김웅한 교수는 사직한 일부 전공의들과 함께 지난달 에티오피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의사가 얼마나 보람있는 직업인지, 왜 나는 의대에 왔었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해요. 세상은 의사가 돈만 아는 집단이라고 매도하지만 아직도 사람 살리는 흉부외과하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필수의료에서 보람을 느끼고‥그래서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전공의들이 일할 수 있게 하려면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걸 고쳐줘야 하는데 정부는 한방에 해결한다며 말도 안 되는 대책을 내놓은 거죠. 이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는 다음 달에는 키르기스스탄과 이라크로 의료봉사를 떠납니다. 세상 어디에서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계속 그 소명을 후학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더 많은 작은 심장들이 다시 뛸 수 있기를..'기피과' 의사의 소박한 희망이었습니다.

사진: 서울대병원 김웅한 교수 제공

정승혜 기자(luxmundi@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630001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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