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한동훈·이재명 2라운드…‘중원 싸움’서 누가 웃을까
[주간경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18일 ‘전 대표’에서 ‘대표’가 됐다. 두 번째 대표직을 연임하게 됐다. 상대 정당인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이미 지난 7월 23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돼 ‘카운터파트’인 이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4월 총선의 1차 대결에서는 이 대표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그때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이었다. 이번에는 ‘대표 대(對) 대표’로 맞승부를 펼친다. 양 대표가 각각 보수·진보 지지층을 결집한 후 그다음 숙제로 중도층을 잡으려는 ‘중원 싸움’이 시작된다. 한 대표가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게 되는 내년 9월까지, 그리고 대선이 열리는 2027년 3월까지 최소 1년, 최대 2년 6개월의 ‘한-명 2차 대결’이다. 이 대결의 최후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거대양당의 전대 결과를 ‘또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표현했다. 과거에는 대선 전 당대표를 차기 대선후보 경선 관리를 할 인물이 맡았으나, 이번 전대에서는 차기 대선후보가 직접 당대표를 맡고 나섰다. 만약 두 대표가 2027년 대선에서 겨룬다면 30%대의 보수 지지층과 역시 30%대의 진보 지지층을 각각 전통적인 기반으로 삼는다. 남은 공간은 30%의 중도층이다. 여야가 22대 국회에서 격렬하게 정쟁을 벌이면서 어느 정당이 이들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금과 같은 초유의 정치 행태 속에서는 이를 탈피하려는 변화·쇄신의 모습을 보이려는 리더에게 중도층의 마음이 쏠릴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 의제를 던지고, 이를 실행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지방선거나 2027년 대선에서 어떤 정책이 주요 의제로 부각되느냐에 따라 중도층의 표심 향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넓디넓은 중도층 표밭을 공략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는 이미 ‘전 대표’ 시절부터 정책 카드를 서둘러 꺼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완화를 의제로 던졌다.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던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대표 선출 뒤에도 유임시키면서도 이 대표의 종부세·금투세 완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8월 21일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의원과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안도걸 의원을 정책위 상임부의장에 임명한 것은 이런 포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대표는 상속세 완화 의지까지 밝혔는데, 임 의원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 대표의 중도화 전략은 앞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금투세는 친문·비명 세력 사이에 이념적 좌표로 여겨지고 있는 만큼 이 대표의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ism)은 이념적 허들을 우선 넘어야 한다. 이 대표는 점진적 변화를 선택했다. 이런 시도는 ‘투트랙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이념적 좌표는 그대로 둔 채, 이 대표가 앞장서서 중도화 의지를 보이면서 당론을 서서히 중도 쪽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이 대표의 투트랙적 중도확장 시도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전통적 지지를 굳히고 중도 확장을 동시에 이루려는 전략인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본인을 옥죄고 있던 이념에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엄 소장은 “이 대표의 이런 변화가 기존의 지지층으로부터 반발을 사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이 대표의 중도 의제 세팅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졌다”고 보았다.
한동훈 대표는 지난 7월 23일 당대표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에서 세 가지 변화를 이야기했다. 첫째가 민심과 국민 눈높이, 둘째가 유능, 셋째가 외연 확장이다. 모두 중도층을 향한 메시지다. 용산 대통령실과의 갈등 속에서도 ‘친윤’인 정점식 정책위 의장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김상훈 의원을 앉힌 것도 이런 정책 전환의 한 시도였다. 여의도 연구소장도 과거 유승민계였던 유의동 전 정책위 의장으로 교체했다. 한 대표는 최근 금투세 폐지, 전기세 감면, 격차해소특위 출범 등으로 민생의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 8월 22일 금투세 폐지 정책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엄경영 소장은 “한 대표가 격차해소 특위 등을 통해 중도층 공략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대표의 중도층 공략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된 김형석 교수를 임명하고, 노동부 장관에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을 지명하는 등 극우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안일원 대표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게 되면 그 자체가 중도보수는 물론 중도층의 관심을 끌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김건희 여사 문자메시지 거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안 관철 등으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까지였다. 제3자 채 상병 특검안에 대해 한 달째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최병천 소장은 “한 대표에게 있어 중도층 공략은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과의 정무적 문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채 상병 특검을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려고 하면서 중도층 공략에 나선다면 어느 누가 한 대표의 메시지를 믿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잇달아 극우 성향 인사를 중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중도 확장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전당대회 이전과 반대 방향의 길을 걷는 셈이다.
한 대표의 중도층 공략 지지부진은 당내의 불안한 처지에서 비롯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5.4%의 득표율로 승리한 반면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62.8% 지지에 그쳤다. 당내 기반이 약한 만큼 중도층 공략에 선뜻 나서기가 힘들다.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당내 대선 경쟁자도 즐비하다. 김철현 교수는 “이 대표가 아무리 사법리스크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명실상부한 민주당 대선주자인데 반해, 한 대표는 여전히 보수의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어 보수 대선주자로서 자리매김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지지자들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를 이재명 대표를 상대할 맞수로 선택한 것일 뿐 아직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와 싸움을 통해 당내 기반을 넓힐 가능성이 크다. 홍 소장은 한 대표와 이 대표를 “순망치한의 관계”로 보았다. 이 대표가 있음으로써,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공격하는 검사 출신 한 대표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우향우’를 견제하려다가는 보수 전통 지지층으로부터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대표와의 싸움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 대표의 중도층 전략은 당의 기반을 다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대표로서는 오는 10월 이 대표가 연루된 1심 재판의 결과를 기다린 후 중도층 공략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홍 소장은 “한 대표의 중도화 전략은 오히려 이 대표와 싸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의 정쟁이 중도화 전략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중순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표와 한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맞붙으면 이 대표의 지지율이 50.7%로 30.4%인 한 대표를 압도한다. 중도층에서도 50.6% 대 29.1%(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로 대동소이하다. 이 대표가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인 40~50대에서 격차를 많이 벌렸고, 60대에서는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86세대(55∼65세)와 포스트 86세대(45∼55세)라는 민주당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삼은 지지율이다. 65세 이상 유권자 조사에서는 한 대표의 지지율이 더 높다.
‘포스트 86세대’와 ‘86세대’, 그리고 ‘86세대 이전 세대’ 중 중도층은 각각 중도진보, 중도보수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선거가 닥치면 결국 자신의 평소 신념에 따라 진보나 보수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45세 이하의 중도층은 다르다. 정치 저관여층으로 선거에 임박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고르게 된다. 이 대표와 한 대표가 결국 대선에 맞붙는다면 중도층 공략은 젊은 층에 어떻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나이로 보아서는 한 대표가 전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 대표는 1964년생으로 86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한 대표는 1973년생으로 포스트 86세대이면서 그 이후 세대에도 어필하고 있다. 한 대표의 토론 스타일, 패션, 행동방식, 이미지 등이 이 대표보다 더욱 젊어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홍 소장은 “한 대표는 학력고사 세대지만 이후 수능 세대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서 “수능 세대는 위 세대의 강요를 특히 싫어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이 대표와의 회담을 생중계 방송하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의 토론 방식과는 다른 스마트한 토론 태도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안일원 대표는 “선거 국면에 가면 한 대표의 세련된 패션과 태도가 2030에 강렬한 인상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는 이런 이미지 전략을 구사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4월 총선 출구조사를 보면 지역구 후보 지지정당에서 20~30대 남성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박빙의 차이로 이겼으나, 20~30대 여성에서는 민주당 후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최병천 소장은 “한 대표가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것은 잠재력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도 선거나 여론조사 등에서 실제로 작동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한 대표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맞대결에서 이 대표에게 밀렸다. 29세 이하에서는 22% 대 55%로, 전체 30.4% 대 50.7%와 비교하면 더 격차가 벌어졌다. 30대에서는 31.2% 대 46.2%로 그나마 격차가 줄었다.
청년층 유권자에게는 취업·주택 문제 해결 능력이 대선주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미 이 대표는 성남시장 당시 청년수당을 통해 청년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직접 집행한 적이 있다”면서 “청년층을 위한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해야만 이들에게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주택 문제 같은 경우 여당의 한 대표가 능력을 보여줘야 하고, 취업 문제의 경우에서는 이 대표가 예전 지자체장 때처럼 시원한 ‘사이다식’ 정책으로 새로운 산업패러다임을 제시해 고용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중도층이 많은 청년 유권자의 표를 받으려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바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준석 당대표로 상징되는 국민의힘은 20~30대 사이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이런 바람이 전혀 일지 않았다. 총선 전 이 전 대표는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총선 출구조사에 의하면 29세 이하 유권자 사이에서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10%로 두 자릿수에 도달했고, 30대에게도 6.5% 지지를 받았다.
차기 대선에 이준석 의원이 출마한다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충청지역 ‘맹주’로 역대 대선에서 항상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김종필 전 총리(JP)의 예가 언급된다. 김 교수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누가 이 전 대표를 잡을 것이냐가 2030 중도층을 사로잡는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천 소장은 “보수연합(한동훈+이준석)이 아니라면 한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지지층을 뺏어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2030 남성에 집중된 이준석 의원의 지지율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으로 가면 파괴력이 더 있다”고 분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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