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에서 구멍 뚫어봤어?" 램리서치의 '1000단 낸드' 식각 이야기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강해령 기자 2024. 8.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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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혹시 독자님께선 낸드플래시에 대해 잘 아시나요. 반영구적으로 0 또는 1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인데요.

3D 낸드 제조사는 '기억의 방'들을 수직으로 쌓습니다. 최근 300단 가까이 쌓은 낸드가 개발됐죠. A4 용지 두께의 20%밖에 안되는 20㎛(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높이에 300단을 쌓는 초고난도 기술입니다.

그런데 요즘 업계에서 말이죠. 1000단 낸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과 거의 차이가 없는 두께에, 지금보다 3배 이상의 층수를 쌓는 꿈의 기술이죠. 이게 진짜 가능한 기술일까. 도대체 어떤 도구가 있어야 3배나 더 높게 쌓을 수 있는 건가.

박준홍 램리서치코리아 대표가 23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크라이오 3.0 기자간담회에서 낸드플래시 기술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제공=램리서치코리아

저는 23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개최된 램리서치 '크라이오 3.0' 간담회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차세대 낸드플래시 기술인 극저온 식각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오늘은 나노구멍 뚫기 장인인 램리서치와 함께 1000단 낸드 시대의 기술을 찬찬히 살펴보시겠습니다.

낸드, 구멍을 잘 뚫어야 높이도 쌓는다

3D 낸드 성공 조건을 딱 한 줄로 설명드립니다. 구멍을 얇고 깊게 잘 뚫어야됩니다. 아까는 잘 쌓아야 한다더니 뚫는 건 또 무슨 말이냐고 하실텐데요.

낸드 공정을 간략히 보면 이렇습니다. ①산화막(옥사이드)-질화막(나이트라이드)-산화막 수백 겹(ONO)을 쌓고요. ②이 막들을 관통하는 구멍을 뚫습니다. 이 구멍이 '채널홀'입니다. ③이 채널홀 속에 다양한 소재를 채워 넣어서 각 층마다 기억의 방을 만듭니다.

낸드의 백미는 ②번 공정입니다. 채널홀. 이걸 한두개만 뚫는게 아니라요. 손톱보다 더 좁은 공간에다가 수억 개 채널 홀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채널홀 공정은 더 어려워집니다. 용량이 커져서 더 많은 구멍을 내야 하니 지름은 얇아져야 하고요. 단수가 높아지니 더 깊으면서도 일정하게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숫자로 나타내볼까요. 종횡비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구멍의 지름과 깊이의 비율입니다. 200단 낸드 채널홀의 종횡비는 50대 1입니다. 하지만 1000단 낸드까지 구현하려면 100대 1의 종횡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범위에서 표현하자면요. 10cm 지름으로, 위에서 아래로 10m 깊이의 일정한 폭으로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기보단 옹졸해질 정도입니다. 진짜 이게 가능할까?

램리서치는 채널홀 잘 뚫는 툴로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이름 나 있습니다. 램리서치가 이 숙명과 같은 과제를 가만히 보고 있을리 없죠. 그래서 램리서치가 개발해낸 해결책이 '극저온' 식각입니다.

-63℃, 식각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극저온 식각 기술이 적용된 램리서치의 식각 장비 ‘밴텍스’. 사진제공=램리서치

극저온(Cryogenic) 식각. 한줄로 정리하면 웨이퍼를 차갑게 만들어서 채널홀을 뚫는다는 것입니다.

이 공정을 간단히 살펴보면요. 기존 채널홀 공정에서는 웨이퍼 온도가 0~20℃입니다. 상온이죠. 그런데 램리서치는 새로운 극저온 식각 기술인 '크라이오 3.0' 공정에서 웨이퍼의 온도를 -63℃까지 낮췄다고 합니다.

웨이퍼 아래에 '칠러(chiller)'라는 냉각 장치를 두는데요. 통상의 채널홀 식각 장비에도 칠러 장치를 두지만 훨씬 더 강력한 냉각 장치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봐야겠죠. 칠러 분야의 강자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있습니다. 에프에스티(036810), 유니셈(036200), GST(083450) 등이 거론됩니다.

아무튼 램리서치는 이 '크라이오 3.0'라는 극저온 기술로 확실한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설명회에서 극저온 식각에 대한 발표를 맡은 램리서치의 김태원 부사장이 내세운 차트를 보실까요.

10㎛의 ONO 층을 관통하는 채널홀을 뚫어봤더니 말이죠. 한 채널홀의 지름을 맨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관찰했더니(CD) 최대 지름은 105나노미터(㎚·10억분의 1m), 최소지름은 95㎚였습니다. 차이는 단 9㎚. 지금까지 나온 램리서치의 극저온 식각 중 가장 완벽한 모양의 채널홀을 구현했습니다. 게다가 10㎛ 두께를 기존 식각 장비로 뚫었을 때보다 2.5배나 빠르다고 합니다. 정리를 하면 극저온 'Cryo 3.0'으로 200단 이상의 초고층 식각을 기존 장비보다 더 빨리 '알잘딱깔센' 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식각 장비의 간략한 원리. 크라이오 3.0은 여기서 웨이퍼의 온도가 -63도까지 내려간 기술로 이해해주시면 좋습니다.

그러면 왜 극저온 식각이 이런 멋진 성능을 낼 수 있을까. 크게 두가지로 분석되는데요. 우선 소재의 변화입니다. 채널홀을 뚫을 때 보통 CF 계열의 가스를 장비 안에 넣습니다. C는 탄소(carbon), F는 불소(Flourine)인데요. 장비 안에서 이 가스가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로 변하면 C와 F는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플라즈마 상태에서 F는 라디칼이 되는데, 라디칼은 공격수입니다. 플라즈마 상태에서의 이온 에너지와 채널홀 속으로 침투해 깊고 예쁘게 깎아내는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C는 일종의 보호막입니다. F는 채널홀 뚫기만 하지 않고 웨이퍼 표면까지 계속 때리는 사나운 성질이 있습니다. 일정한 지름의 구멍 뚫기가 쉽지 않아지죠. C가 구멍의 표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식각이 오랫동안 진행될 경우, 웨이퍼 표면에 너무 많은 C가 쌓여서 F가 채널홀 안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돼 식각도 별로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200단 구멍을 뚫어야하는데 100단에서 멈춘다든지 울퉁불퉁한 결과물이 나오죠.

카본이 형성한 ‘패시베이션 레이어’가 없고, 공격수인 라디칼만이 존재하는 상남자 같은 식각 ‘크라이오 3.0’. 사진제공=램리서치

극저온 식각은 C가 없어도 보호막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정말 대단한 발견이죠. 그러니까 C를 생략하고 불소 위주인 HF 계열의 가스를 쓰면 되기 때문에 채널홀을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뚫을 수 있습니다.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됩니다. '탄소제로' 많이 들어보셨죠? 채널홀 식각에서 탄소가 아예 빠져버리니까 지구 보호까지 할 수 있는 고마운 기술입니다.

두번째는 '제너레이터'입니다. 장비에 공급된 가스를 채널홀을 뚫어낼 공격수로 만들려면 플라즈마 상태로 만드는 전력(파워)이 필요하죠.

최근 램리서치의 경쟁사인 도쿄일렉트론이 전력 공급방식을 기존의 고주파(RF) 방식에서 '펄스드(Pulsed) DC라는 신박한 기술을 적용해 극저온 기술을 개발했죠. 그래서 이 기술이 업계에서도 많이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램리서치는 아직 펄스DC를 극저온 기술에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게 없어도 자사의 독자적인 RF 방식으로 엄청난 성능의 극저온 식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또 앞으로 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것도 시사했습니다. 김태원 부사장은 "램리서치도 펄스DC를 보고 있지만, 얼마나 더 나은 파워를 공급할 수 있느냐를 따져보면 펄스DC보다 우리가 독자 개발 RF 방식이 20~30% 더 우수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램리서치 극저온 식각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램리서치가 공식적으로 밝힌 극저온 식각에 대한 팩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램리서치는 2019년 1세대 극저온 식각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회사에 투입된 램리서치의 식각 장비 7500대 중 1000대가 극저온 기술이 적용된 장비라고 합니다. 박준홍 램리서치코리아 대표는 "반도체 양산에 도입된 극저온 식각 장비는 100% 램리서치의 장비"라고 자신했습니다.

아직 크라이오 3.0이 양산 라인에 도입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김 부사장은 "몇몇 고객들이 400단 이상의 낸드에 크라이오 3.0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세계 1위 낸드 회사 삼성전자는 10세대 V낸드(V10)을 400단 이상으로 출시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기존 식각 장비에 일부 부품(파츠)과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크라이오 3.0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낸드 회사들의 설비투자 비용이 줄어드는 거니까 램리서치의 고객사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죠. 라디칼 수가 급증할 HF 가스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장비 안에서 웨이퍼를 고정시키는 포커스 링도 더 튼튼해져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따라 램리서치에 단단한 실리콘카바이드(SiC) 링을 공급했던 티씨케이(064760) 등의 움직임이 기대됩니다.

또 크라이오 3.0에서는 웨이퍼의 온도를 -63℃로 구현했는데, 앞으로 이 온도가 더 낮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물론 온도가 낮아질수록 식각이 잘 되는 것은 맞는데요. 트레이드 오프도 있습니다. 극저온으로 인해 전에는 없던 실리콘 헥사플루오라이드·암모니움 헥사플루오라이드같은 고체가루(솔리드)가 생겨 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가루들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화학물을 투입하고 다양한 장치들을 적용했더니, 지금까지의 최적의 온도는 -63℃라는 게 램리서치의 입장이었습니다.

앞으로 낸드 장비 시장의 격전지는 극저온 식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램리서치가 ‘3.0’ 기술을 내세우며 마치 “채널홀의 패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자신하는 사이 굴지의 경쟁사 역시 펄스DC 등 신무기를 장착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낸드 시장을 보실 때 단수와 용량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련된 장비 업계에서 일어나는 흐름도 함께 살피신다면 더욱 흥미롭게 반도체 씬에 대해 알아가실 수 있을 듯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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