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에 피해자가 직접 나선 이유

이승지 thislife@mbc.co.kr 2024. 8. 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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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MBC 제보창으로 한 제보가 도착했습니다.

'자신도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과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고, 피해 자료를 1년 전부터 모아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먼저 지금부터 사용할 모든 피해자의 이름은 실명과 무관한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 "결혼식까지 쫓아가 줄게"‥협박하는 가해자들



취재진이 확인한 다수의 텔레그램방 제목은 '인하대'와 피해자의 실명이 포함됐습니다. 모두 피해자를 모욕적으로 묘사했고, 피해자의 지인만 아는 별명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한 텔레그램방의 참가자는 1,200명이었고, 해당 채팅방의 소식을 받아보는 구독자 수는 2,000명이 넘었습니다. 방 삭제를 대비한 예비 채팅방도 3-4개씩 있었습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외부 활동이 많은 동아리 소속이었습니다.

텔레그램 방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협박과 조롱, 욕설 등이 난무해 입에 담기도 힘든 내용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세대를 풍미한 연예인들을 '1세대', '2세대'로 나눠 부르듯 이들은 피해자를 세대로 나눠 투표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찾아가 흉기로 해치겠다며 협박하거나, 약을 먹이고 성폭행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연락처와 학번, 학과 등 신상 정보도 유출됐습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선의로 피해를 알려주는 척 연락한 뒤 피해자의 반응을 그대로 텔레그렘에 공유하며 조롱했습니다. 이후엔 피해자와 그 지인들에게 전화나 문자로 무차별 연락이 시작됐습니다. 학내 공간에 들어왔다며 '인증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유 모 씨/피해 여성] "‘이거는 너 때문에 얘들(지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거다. 얘는 지인들 팔아넘기고 쓰는 애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했거든요. '너는 어떻게든 끝까지 쫓아갈 거다. 네가 결혼하면 몰래 가서 뷔페에서 밥을 먹겠다.', '애를 낳는다면 너의 애까지 이런 일을 만들 거다. 평생을 쫓아가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 보고 이제 한숨밖에 안 나왔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해서 텔레그램방 참가자들이 원한 건 무엇일까요. 바로 피해자의 수치심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긴 겁니다.

[전 모 씨/피해 여성] "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수치스러워하는 게 지인들이 그 딥페이크를 보고 '얘가 실제로 이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 애구나'라는 인식이 씔까 봐.", "무서운 것으로 그런 걸로 수치심을 느낀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 "텔레그램은 수사 어려워요"‥스스로 나선 피해자



피해자들은 피해 초기 일선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수사가 어렵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해외 SNS는 수사 협조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렵사리 신고를 해도 '피의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되기도 했습니다.

주범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삶은 점점 곪아갔습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 내 합성사진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했고, 중요한 면접장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지속되는 피해에 한 피해자는 자신이 직접 증거 자료를 모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유 모 씨/피해 여성] "이 일로 제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면 그것도 문제잖아요. 나 말고도 이런 피해자들이 더 많은 것도 알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1년여간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 자료를 모았고, 자신을 향한 모욕과 협박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1200명의 참가자 중 2명이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 중 한 명은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인하대 남학생 1명은 '우연히 텔레그램에서 보고 실존 인물이 맞는지 궁금해 들어왔다'고 진술해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피해자는 "두 명 다 면식이 없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추가로 특정한 2명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 "학교 입결 떨어지겠네"‥보도 후 이어지는 2차 가해



보도 이후 온라인에서 '피해자가 SNS를 이용한 게 잘못', '학교의 입결(입시결과)이 떨어지겠다'는 글을 본 피해자들은 스스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글을 비판하며 피해자를 응원하는 글엔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차 모 씨/피해 여성] "'입결이 무슨 소리냐. 피해자가 우리 학교에서 20명이나 나왔다. 그리고 가해자가 인하대 학생이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냐'는 글을 봤을 때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이제 약간의 힘을 좀 얻었던 것 같아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도를 고민했던 피해자 중 한 명도 "보도가 나간 지금은 오히려 속 시원하다"고 밝혔습니다. 인하대학교 측에선 '아직 가해자가 인하대생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에 학교명을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피해자들은 학내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 모 씨/피해 여성] "학교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 일이었구나. 우리 학교에서 그런 많은 피해자가 있었구나' 이렇게 관심도 안 가졌을 것 같고‥학교 이름이 언급 안 됐으면 '과연 가해자들이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느끼긴 했을까' 이런 생각도 좀 들어요."

보도가 나간 뒤 한 인하대 재학생은 자신도 같은 피해를 겪었다며 취재진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최초 용기 있는 제보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잡기도 어렵고 처벌도 어려워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실제 경찰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는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어 수사 협조가 어렵고, 위장 수사의 경우도 현행법상 미성년자 대상에 한정돼 있어 성인 대상으로는 원칙적으로 불가합니다.

또 단순히 불법합성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한 자는 처벌할 규정이 없고, 불법합성물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 '배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 가능합니다.

해당 텔레그램방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해도 한국에서의 접속을 차단할 뿐 방 자체를 없애진 못합니다. 한 피해자는 20여 차례 넘게 방을 신고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보도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NS 단체 대화방을 중심으로 한 성적 허위영상물 유포에 수사 의뢰 등을 통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비단 대학가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직도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 모르는 피해자도 많고, 실질적으로 피해를 막을 방안조차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피해가 현재진행형인 만큼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승지 기자(thislif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29994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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