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남자가 입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함께 짐작하고 얘기해보면 좋지 않을까…여성이 40년간 매달 겪는 힘듦에 대해
자궁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 자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은 없으므로
'무더운 여름에 생리대 차는 체험을 해주세요. 얼마나 꿉꿉하고 힘든지…….'
남자가 생리대를 입는 체험을 해 달란 독자 제안.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다.
오래 고민했다. 힘들까봐 주저한 건 아녔다. 염려 되었다. 온전히 알 수 없고 한계가 명확하니까. 자궁 없는 남자가 실시간으로 생리혈이 피떡 혹은 굴처럼 쏟아지는 걸, 생리대에 뭘 묻혀 입어본다고 알 수 있나. 자궁벽이 허물어져 밑이 빠지는 고통이라며 종일 아랫배를 움켜쥐는 아내를 봤는데, 내 배에 저주파 기계 따위를 잠깐 붙여본다고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어설프게 며칠 해보고, 불완전한 경험을 해놓고 나름 공감했다며 글을 마치고, 조회수나 벌고 끝냈다간 자조할 것 같아서. 그리 고심했었다. 늘 조심스럽고 두렵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서 '생리'를 검색했다가 이런 글이 나온 걸 보고, 늘 그랬듯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왜 생리 참아볼 생각을 못 해. 생리 마려우면 화장실 가는 게 상식인데 그거 하나 못 해서 기저귀 차는 게 충격적!"
자궁벽 안쪽 '막'은 배아(아기가 되기 전 단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두꺼워진다. 잘 자라도록 준비하는 거다. 그러나 난자가 정자와 만나지 못하면, 두꺼워진 막이 피와 함께 떨어져 바깥에 나온다. 이게 월경이다.
아이가 생길 때만 자궁벽이 두꺼워지면 좋을 텐데 그게 그렇지 않다. 매달 같은 주기로 이 일이 반복된다. 매달 두꺼워지고, 매달 막이 떨어져 아프고 매달 피를 흘린다. 언젠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한 번의 태어남을 위해, 여성들이 매달 이런 일을 약 3~5일간(더 길거나 짧을 수 있음) 겪는다.
평균 3~5일은 딱 월경하는 시기만 계산한 거다. 월경 전 증후군(두통 등 신체 증상과 기분 변동 등 심리 변화)까지 따지면 한 달에 대략 절반은 불편하고 힘들다. 초경 평균 나이인 13세부터 완경 나이인 50세 전후까지. 아랫배가 극심히 아프면서 피떡 같은 게 쏟아져 나온단다. 그러니 생리대를 착용하고 계속 갈아줘야 하는 거다.
무려 40년 동안. 임신 기간만 제외하면(이것도 임신 끝나면 다시 시작). 그러므로 태어난 인간들은 이와 무관할 수 없다. 그 고통을 수반해 태어났기에 응당 남성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올리브영에 가서 ㄹ생리대를 샀다. 28개에 1만1000원(중형 생리대 기준)이었다. 중형, 대형은 나오는 생리량에 따라 고르는 거다(모르는 남성이 꽤 많다). 양이 많은 첫째, 둘째 날은 대형, 그다음부터는 중형, 이렇게 쓰는 식이다.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이번에 나흘 체험하며 20개 정도를 썼다(약 7800원어치). 여기에 월경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나 핫팩 등을 포함하면 월경을 위한 비용이 훨씬 늘어난다.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생리대를 꺼냈다. 팬티를 벗었다. 생리대 뒷면을 뜯고 팬티에 부착하면 되었다. 처음엔 똥꼬에 가깝게 붙였다가, 잘못 했단 걸 깨달았다. 생리혈이 나오는 곳에 넓은 부분을 붙여야 했다. 성기에서 피가 나온다고 상상하고 그쪽에 생리대를 붙였다. 생리대가 흠뻑 젖을 때까지 토마토 주스를 부었다.
팬티에 붙이고 들어 올리자, 중요 부위에 축축한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으으윽, 하고 나도 모르게 고통 섞인 탄성이 나왔다. 바로 벗어서 뜯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토마토 주스도 이리 찝찝한데 하물며 피덩어리가 나온다면 어떨까.
바깥 기온은 35도. 작열하는 태양에 땀이 죽죽 흐르고, 축축한 생리대로 감싸진 부분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땀과 토마토 주스가 뒤범벅돼 가장 민감한 부위에 닿아 있으니, 꿉꿉하고 짜증 나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양쪽 허벅지 사이에 두툼한 게 붙어 있어서 걷든 앉든 여간 불편한 게 아녔다. 팔자걸음으로 주춤주춤 걷다가, 팬티를 반복해서 올리고 내리고 정리하게 됐다.
매우 번거롭고 귀찮았다. 새 생리대와 토마토 주스를 들고 화장실에 주기적으로 가야 했다. 팬티를 벗으니 부착된 생리대의 토마토 주스가 새어서, 언저리에 묻어 있었다. 이게 피라고 또 상상했다. 피와 땀과 소변에 절은 생리대는 묵직했고, 아래쪽이 쭈그러들어 있었다. 떼어내니 형언할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돌돌 잘 말아서 버렸다. 미화 여사님께서 남자 화장실 휴지통의 생리대를 보고 경찰에 신고하실 수도 있으니까.
알람이 울렸는데 생리대를 갈러 가기 귀찮아서 좀 더 뭉개고 있어 봤다. 그럼 안 된단 걸 금세 알게 됐다.
팬티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바지가 있어 괜찮겠다 싶었는데 웬걸, 뚫고 나왔다. 앞에, 옆에 앉은 후배에게 냄새가 배달될까 싶어 신경 쓰였다. 별수 없이 생리대를 갈게 되었다.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는 거였다. 토마토 냄새가 난다(실제론 피 냄새일 거다), 생식기쪽이 견딜 수 없이 꿉꿉하다, 생리대를 갈 타이밍이 지났다. 그리 여성들은 월경혈이 새어나올까 계속 불안할 거였다.
토마토 주스 양 조절에 실패했을 땐, 실제 생리대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했다. 그걸 모르고 계속 앉아 있다가 퇴근할 무렵에 발견했다. 의자가 동그랗게 젖어 있어 당황했다. 바지에도 똑같이 묻어 있길래 퇴근 내내 신경이 쓰였다.
이게 피라면 어땠을까, 눈치 보느라 당황했을까. 근데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당황할 일일까,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물리적인 아픔에, 호르몬 변화에, 그런 것만 생각해도 힘든 시간인데. "오늘 월경하는 날이라 그래." 편히 말하면 어떨까. 그런 걸 짐작했다.
곁에서 내내 조언해준 아내의 말이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월경통이 그렇다고 했다. 통증이 적은 여성은 '축복'이라 할 정도라고. 월경할 것 같으면 두려워하며 진통제를 미리 먹던 아내였다. 핫팩을 흔들어 건네면 아랫배에 계속 대고 있었다. 밤에 시작될 땐 잠을 거의 설치곤 했었다. 그 정도로 아파했다.
미국 월경권 운동가 네이디아 오카모토 저자의 책 '생리의 힘' 39쪽에선 월경통을 이리 설명했다.
'월경곤란증이라고도 부르는 월경통은 생리하는 청소년이나 30세 이하 여성이 결석 또는 결근을 하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월경하는 사람 중에서 최대 80퍼센트가 다양한 강도의 월경통을 평생 겪는다. 이중 최소 10퍼센트는 일시적으로 몸을 못 움직일 정도로 극심한 증상에 시달린다.'
왜 아픈가. 자궁 안쪽 벽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란 화학물질이 분비돼 그렇단다. 이 물질이 주변 근육을 쥐어짜서, 아랫배와 허리 아랫부분에 분만통 같은 날카로운 통증을 일으킨다고. 월경 시작 며칠 전에 나타나 최대 나흘까지 지속된다. 메스꺼움, 구토, 어지러움, 발한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이틀째엔 생리대를 착용한 상태로, 저주파 기계를 아랫배에 부착했다. 마사지 기능을 설정하고 단계를 정하면 되었다. 총 15단계인데, 경험한 후기를 보니 7~8단계가 생리통과 그나마 비슷하다고 했다.
'툭, 툭, 툭, 툭, 툭, 지이이잉이이이잉이잉이잉.'
"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기자의 육성, 오버 아님)
배를 강하게 조이는 자극에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통증을 그리 느껴본 적 없는 연약한 부위란 걸 새삼 알았다. 아내는 바라보며 걱정하면서도 크게 웃었고, 웃으면서도 그만하라고 염려했다.
5단계로 올리니 무릎을 꿇는 공손하고 겸손한 인간이 절로 되었다. 너무 아파서 누우니까 아내는 "누우면 더 아플 걸"이라고 했다. 그 말을 간과하고 누웠다가 비명을 질렀다. 자세를 바꿔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7단계로 올리니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 아랫배를 집어넣게 되었다. 그게 그나마 가장 덜 아팠다. 아내가 그걸 보며 이리 말했다.
"딱 지금 자세와 비슷해. 생리통 심할 때 그렇게 움츠리게 돼."
8단계로 올리니 서 있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아내가 그만하라고 했다. 고작 15분 만에 스위치를 편안히 끄면서, 스위치로 끌 수도 없는 월경통에 대해 짐작했다. 진통제로도, 핫팩으로도 도저히 끌 수 없는 통증에 대하여.
여름 끝자락에도 35도씩 올라가던 무더운 날, 비까지 오던 습한 날. 생리대에 토마토 주스를 부어 착용하고, 배엔 저주파 마사지기를 붙여 5단계 통증을 계속 줘봤다. 그러면서 3시간마다 생리대를 갈고 다시 주스를 부었다.
생식기는 생각보다 민감한 부위란 걸 알았다. 찝찝함에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고추부터 가랑이까지 축축하고 거슬려 걷는 것만 해도 고역인데, 덥고 축축해 묵직해진 토마토 냄새가 계속 올라왔다. 그 상태에서 배를 쥐어짜는 통증이 시작되니 죽을 맛. 견디기 힘들 땐 전봇대를 붙잡고 서 있었다.
만원 지하철엔 꾸역꾸역 사람이 탔고, 팔다리를 사정없이 건드렸다. 유난히 짜증이 솟구쳤다. 자리 하나가 비었길래 기를 쓰고 앉아보려 했으나 더 빠른 아주머니께 뺏겼다(웬만해선 이기기 힘듦). 두 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부여잡고, 자포자기한 채 덜컹덜컹 흔들리며 광화문역까지 갔다.
퇴근해 집에 와서는 토마토에 절은 생식기 부분을 시원하게 벅벅 씻었다. 찝찝해 견딜 수 없었다. 곧장 토마토 주스를 부은 생리대를 착용하니 잠시 상쾌했던 기분이 구겨졌다. 별것 아닌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벌컥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이리 말했다.
"짜증 내서 미안해. 오늘 좀 예민한가 봐."
4일간 체험을 마친 지금, 그 말을 번복하고 싶다. 생각이 달라졌다. 물리적인 체험만으로도 이리 힘든데, 체험할 수도 없었던 '호르몬 변화' 같은 게 더해져 내 기분조차 어쩔 수 없게 된다면. 그 얼마나 괴로울까. 예민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다들 이 과정을 알았으면 싶다고. 그리 힘든 거였구나, 받아들였으면 싶단 생각이었다.
'남성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심지어 여성들끼리 대화할 때도 수치스러워하게끔 이끄는 경향이 팽배하다.'
그러니 공개된 자리에서 월경을 월경이라 편히 꺼내지 못하고. '그날'이나 '대자연'처럼 암호화하고. 누군가 알게 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생리용품을 숨겨 화장실로 달려가고. 힘듦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조마조마하게 한다.
네이디아 오카모토 작가는 월경에 대한 금기가 생겨난 이유에 대해 이리 말했다.
'여성의 몸과 본질적으로 연관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월경을 두고 지저분하다고 여기거나 창피해해야 한다고 믿는 사고방식은 극도로 여성혐오(여성에 대한 편견, 반감, 경멸)적인 행동이다.'
월경하는 주체가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이와 관련해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라 불리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책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서 이리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게도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되면 분명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서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그러니 월경에 대해 함께 더 많이 떠들어야 한다고, 네이디아 오카모토 작가가 말했다.
'생리에 대한 낙인 때문에 월경 중인 여성은 광기 어리고, 침울하고, 무책임해진다는 인식이 퍼진다. 이러한 낙인 때문에 생리하는 사람들은 자기 몸과 월경을 부끄러워하고 창피해한다. 금기와 낙인을 깨기 위해서는 정확히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자랑스럽게 생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제 침묵을 깰 때다.'
에필로그(epilogue).
처음 생리대를 본 건 초등학교 때였다. 피 묻은 걸 보고 엄마가 병에 걸린 줄 알고 속앓이했던 기억. 좀 더 자라고, 그게 기저귀가 아니라 생리대란 걸 알고 나선 애써 모른 척하는 걸로 대신했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생리대 체험을 마친 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에 생리대 체험했어. 너는 별걸 다 한다. 그런 대화를 마치고 엄마에게 이리 물었다.
"엄마, 근데 엄마는 생리통 심했었어?"
"아니, 엄마는 다행히 심하진 않았어. 근데 자궁에 근종 생기고 심해졌었지."
그것 때문에 수술하고 고생했지. 27살에 널 낳아서 돈 아끼며 키우느라 힘들었고. 그런 얘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27살에 날 낳기 위해서. 그 한 번의 임신을 위해 엄마의 자궁은 10대일 때부터 약 168달이나 월경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월경에 대해 좀 더 자주 얘기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해 묻는 게 아주 처음이었다.
다 지나가버린 그 시절에 편히 대화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얘기가 오갔을까.
엄마 오늘 월경하니까 너희들끼리 밥 차려 먹어. 나 좀 누워 있을 거야. 엄마 진통제 사다줄까? 핫팩 뜯어놓았으니까 붙여. 엄마는 이제 월경 끝났어. 완경 축하해, 엄마. 홀가분한데 한편으론 또 헛헛하네. 그럴 거 같아, 나라도. 40년간 고생 많았어.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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