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후 연구는 인류 진화의 비밀 푸는 열쇠

김진화 기자 2024. 8. 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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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제공

비생물적 환경 요인은 생물의 생활 방식, 번식 방법, 분포 등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생물은 생활 습성, 몸의 구조와 기능을 바꾸면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과 환경은 상호 작용하므로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종류와 수도 변하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  고등학교 통합과학 교과서(미래엔, 2015) 중에서

2012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뼛조각 하나가 발견됐다.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이 뼛조각의 DNA를 분석해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를 가진 13세 소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지금은 멸종했지만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고인류다. 이 화석은 과거에 서로 다른 호모종끼리 유전적 교류, 교배가 이뤄졌다는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러나 고인류학적 증거만으로는 호모종 간 상호 교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명확히 밝혀내기 어려웠다. 화석과 같은 표본을 통해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정보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 열쇠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기후 시뮬레이션이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각자 선호하는 기후 환경과 당시의 기후를 추정해 두 종이 서로 교배한 시기와 장소를 예측한 것이다.

● 기후물리 고인류학과 만나다

"200만 년 전 초기 인류는 주로 동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매우 제한적인 기후 환경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인류가 다양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아프리카를 벗어나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죠. 고인류학적 증거와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결합하면 해당 호모종이 어떤 기후에서 주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부산대 통합기계관에서 만난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장이 말했다.

기후물리란 대기, 해양, 지면, 빙권, 생물 등 우리를 둘러싼 기후 시스템을 수학적,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분야를 말한다. 그리고 여러 기후 시스템을 방정식으로 풀어낸 것이 기후모델이다.

기후모델은 매우 길고 복잡한 컴퓨터 코드로 이뤄져 있어 이를 풀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기후모델을 이용해 미래의 기후를 예측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과거의 기후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고기후 시뮬레이션이다.

팀머만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뒤 이 결과를 고인류학적 증거 및 유전자 자료와 결합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서로 다른 서식 환경 선호를 파악했다. 데니소바인은 툰드라나 냉대림과 같은 추운 환경에 더 잘 적응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온대림이나 초원지대 같은 따뜻한 기후를 선호했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 연구단장"고기후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세번의 교배가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그중 두 번은 고인류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이라는 게 이미 입증됐죠. 더 많은 실제 증거가 나와서 나머지 하나도 입증해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과학동아 제공

팀머만 단장은 "그러나 따뜻한 지역에 살던 사람이 어느 정도 추운 온도를 견딜 수 있듯 기후 내성이 존재한다"며 "이 때문에 두 인류 종의 서식지가 특정 지역에서 겹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중앙유라시아와 북동부 유라시아의 기온이 온화해지는 간빙기 때에는 따뜻한 기후를 선호하는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의 서식지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두 종이 서로 만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간빙기는 최소 4차례이며 약 12만 5000년 전에 마지막 간빙기가 있었다.

(왼쪽부터)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소녀 '데니'의 뼈 표본. 이를 통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사이에 상호 교배가 일어났음을 알아냈다/ 고기후·식생 시뮬레이션 결과와 고인류학적 증거를 결합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공유 서식지도를 그린 결과. 중앙 아시아와 북유럽 지역에서 상호 교배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에 보이는 빨간 점은 네안데르탈인이 선호한 서식지를 나타내고 초록색 점은 데니소바인이 선호한 서식지를 나타낸다. 서식지 공유가 일어난 지역은 색상이 겹쳐있다. Katerina Douka, Tom Higham / IBS 기후물리 연구단 제공

"인류 진화 중 일부는 과거의 기후변화에 대응해 일어났습니다. 기온, 강우량 패턴 등이 변하면 식생이 변화하고, 먹이인 식생을 따라 포유류들이 움직이고, 포유류를 따라 인류도 움직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연관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팀머만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알타이 산맥, 사르마틱 혼합림, 이베리아 반도 등 북유럽 및 중앙아 아 지역에서 공존 시기 중 최소 6번의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인류학 교과서를 다시 쓴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doi: 10.1126/science.add4459)

● 과거 기후로 미래 예측까지

팀머만 단장은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실제 과거 기후 데이터와 비교해 보면 기후모델의 타당성을 시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퇴적물 코어, 빙하 코어 등을 분석하면 특정 지역의 오래전 기후 환경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슈퍼컴퓨터로 기후모델을 돌려 과거의 기후를 추정한 계산값과 이를 비교하면 기후모델의 정확성을 알 수 있다.

그는 자동차에 빗대어 설명했다. "여러분이 자동차를 사고 싶은데 판매자가 그 차를 좋은 차라고 하면서 '한 번도 운전해 본 적 없는 차'라고 설명하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차를 사지 않겠죠. 하지만 '이 차는 시험을 거쳐 다양한 변형을 했고 이것이 최종 버전이다'라고 말하면 차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겁니다. 기후모델도 자동차와 비슷해요. 과거 기후에 대한 검증을 완료해야 미래 예측에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죠."

기후물리 연구단은 과거 기후를 통해 기후모델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다시 빙상과 해수면 변화를 예측한다. 또한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인간-생물 더 나아가 병원균 모델을 세운다. 고기후 연구가 미래 기후 예측에 큰 도움을 주는 셈이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보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이 말이 기후모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팀머만 교수에게 앞으로 진행할 연구 주제를 물었다. 

"최근 약 90만 년 전에 인간 게놈이 거의 사라졌다는 내용의 유전학 논문이 나왔어요. 해당 논문 저자들은 이 현상이 기후 때문이라고 말하죠. 우리 연구팀은 기후모델을 통해 당시의 환경이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앞으로도 기후모델을 이용해 인류 진화의 주요 변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8월호, CLIMATE Rewrites History 고기후 연구로 인류 진화 파헤친다

[김진화 기자 evolut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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