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수백억을 써도…가질 수 없는 너

최우영 기자 2024. 8. 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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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게임 캐릭터·아이템 등의 콘텐츠 소유권은 게임사에 귀속돼
서비스 종료에 따라 캐릭터나 아이템 삭제돼도 구제 불가능
게임 내 재화 소유권을 유저에게 돌려주는 P2E 게임은 아직 태동기에 머물러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사진=뮤 오리진
웹젠의 대표 IP(지식재산권) '뮤' 시리즈 중 모바일에서 초창기에 선보였던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뮤 오리진'이 올해 10월 9년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한때 구글플레이 매출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던 뮤 오리진이지만, MMORPG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한국 시장에서 더 이상 서비스를 이어가기 어려워질 정도로 유저가 빠진 탓에 서비스 종료(섭종)를 피할 수는 없었다.

서비스를 마치는 여느 게임과 마찬가지로 뮤 오리진 역시 남아있던 유저들의 원성을 피하진 못했다. 그런데 일부 유저들은 "일방적 서비스 종료"라고 규탄하며 과도한 환불을 요구하고,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웹젠을 규제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유저들의 주장은 얼마나 정당성을 가지는 것일까.

모든 서비스 종료는 '일방적'이다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기업의 이익 보장이 전제 조건이다. 수익이 지속적으로 난다면 서비스가 이어지고, 적자가 지속된다면 접는 게 당연하다. 인기가 떨어지는 먹거리는 생산라인에서 자연스레 빠지고, 승객이 부족한 항공 노선은 폐지되듯이 말이다.

일부 뮤 오리진 유저들이 조직한 '환불대책위원회'에서는 웹젠이 적자나 신규 서비스 준비를 이유로 뮤 오리진을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게 이용자 기만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게임업체를 자선단체나 종교집단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게임 콘텐츠의 주인은 유저가 아니다
MMORPG 등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유저들은 자신의 계정과 이에 딸린 캐릭터, 캐릭터가 보유한 아이템을 자신의 '소유'라고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사는 이용약관과 운영정책 조항을 통해 이러한 콘텐츠들이 게임사에 귀속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종종 제기되지만, 공정위 등은 수차례 유권해석을 통해 약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쓴다한들 이러한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약관은 게임계정 및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개인간 거래가 발견될 경우 게임사가 개입해 제재하는 근거가 된다. 일부 유저들은 자신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육성한 캐릭터와 아이템에 대한 처분이 유저 스스로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법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개념이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게임 계정과 아이템에 대한 '재산권'이 인정돼야 한다. 노점상들이 오랫동안 점유한 자리는 현실적인 가치가 있지만, 재산권으로는 인정 받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최근 전 세계에서 태동기를 거치고 있는 P2E(Play to Earn) 게임들은 이러한 게임 내 재화의 소유권을 유저에게 귀속시키는 데서 차별성을 얻는다.

게임사의 법적 환불 의무는 '1주일치 미개봉 상품만'
올해 3월 서비스를 종료한 트릭스터M은 '통큰 환불'의 시발점이 됐다. /사진=엔씨소프트
관련 법규 등에 따르면 게임 아이템의 환불이 이뤄질 경우 조건이 붙는다. '구매 후 1주일 이내' '개봉하지 않은 패키지'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게임 아이템 및 재화가 전자상거래법상 디지털콘텐츠 '청약상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온라인게임서비스업' 관련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서는 이미 사용한 아이템에 대해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패키지 아이템은 '개봉'이 '이용'으로 여겨진다.

이 범위를 넘어가는 환불은 사실상 게임사의 '선의' 내지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엔씨소프트가 올해 초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하면서 이 회사가 서비스하던 트릭스터M, 프로야구H3, 프로야구H2에 대해 '2달치 결제'를 환불해주며 '사용(개봉) 아이템'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불 대상에 포함시켰다.

웹젠은 이보다 한술 더 떠서 '3달 반치 결제'를 선언했다. 엔씨와 마찬가지로 사용 아이템도 환불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유저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임사의 호의에 따른, 후한 환불 범위를 '기본값'으로 여기는 모양새다.

게임사들의 자진납세…공정위 눈치도 한몫
김정기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지난 1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넥슨의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16억원(잠정)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유재희 기자
게임사들이 유저 환불 범위를 전폭적으로 늘리는 데는 최근 공정위가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게임사들을 옥죄는 분위기도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넥슨 메이플스토리처럼 소비자 권리를 해쳤다며 공정위가 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유저들에게 수백억원을 배상케 하는 사례가 전파될까 주의하고 있다"며 "엔씨와 웹젠의 '통큰 환불'도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엔씨와 웹젠이 잘못된 선례를 남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서비스가 종료되는 다른 게임 서비스에서 유저들이 과도한 환불을 요구할 때, 엔씨와 웹젠의 환불 정책을 거론하며 항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작 국내 시장에서 융단폭격식 광고로 돈을 끌어모은 뒤 '먹튀'하는 일부 중국산 게임들에 환불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유저들은 별로 없고, 책임감 있게 국내 사업을 이어가는 업체들에만 법적 기준을 상회하는 환불을 요구하는 추세가 있다"며 "정부 당국이 국내 업체들만 들여다 볼 게 아니라, 법으로 정한 환불 기준조차 지키지 않는 외국 업체들까지 시야를 넓혀 최소한의 형평성을 맞춰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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