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자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4. 8.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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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을 자주 들여다본다.

1970년 3월4일 경남 함안군 뒷산에서 표범을 잡은 설아무개 포수도, 이기적인 X세대가 관리자 자리에 오르면 회사 조직이 어찌 될지 걱정이라는 서른살 김아무개 대리도(1997년 1월17일 매일경제) 모두 옛날신문 속에서 만난다.

훗날 구술을 받아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만한 직업이 기자임을 알게 됐다.

지역 기자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포착하고 기록함으로써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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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옛날신문을 자주 들여다본다. 별다른 용건이 없어도 좋다.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애용하는 편이다. 첫 화면에 타임라인이 횡으로 펼쳐져 있다. 1920년부터 1999년까지다. 이곳에서 과거의 시간을 좌로 우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닌다. 1970년 3월4일 경남 함안군 뒷산에서 표범을 잡은 설아무개 포수도, 이기적인 X세대가 관리자 자리에 오르면 회사 조직이 어찌 될지 걱정이라는 서른살 김아무개 대리도(1997년 1월17일 매일경제) 모두 옛날신문 속에서 만난다. 이들의 시간은 당연히 멈춤없이 흘러갔을 테지만, 이들이 어느 시절에 떠올린 생각과 뱉은 말은 지면에 기록되어 남아 있다. 옛날신문을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옛날신문은 시간을 붙잡고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기자가 된 이유도 이 심성에서 비롯됐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일화가 있다. 경남도민일보 논술 시험날이었다. 경남지역 이슈를 두루 공부해서 갔는데 뜻밖의 문제가 나왔다. '당신이 나고 자란 동네의 역사를 쓰시오.' 당시 내 최대 관심사가 마침 '고향의 역사'였다.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하게 해준 고마운 문제다.

고향 부산 우암동은 일제강점기 때 아카자키로 불렸다. 일제가 자국으로 소를 보내기 전에 검역을 하던 곳이다. 해방 후 그 소막사에 피란민들이 들어와서 살았다. 그래서 '소막마을'이 됐다. 대학시절 소막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무슨 힘이 솟았는지 생판 모르는 노인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서 말을 주고받다보니 조금씩 속얘기를 꺼냈다. 한 명 한 명의 구술은 그 자체로 현대사의 한토막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훗날 구술을 받아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만한 직업이 기자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왕이면 거대담론에 집중하는 중앙언론보다는 동네 곳곳을 샅샅이 찾아다니는 지역언론에서 일하는 게 성향에 더 맞겠다 싶었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역사의 초고를 쓴다는 심정으로 기사를 쓴다. 지역언론이 기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아서, 결국 시간 속에서 사라질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지역 기자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포착하고 기록함으로써 보람을 느낀다. 효능감이 가장 큰 영역은 현대사 기록이다. 그 토대는 구술이다. 지역사회에서 잊힌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후 그들의 말을 채집하고 정리해서 이야기를 구성하면 귀중한 초고가 완성된다.

▲ 6월26일 강원일보 '삶을 무너뜨린 칠흑 같은 어둠 그래도 탄광은 한줄기 빛이었다' 기사 갈무리

강원일보에서 연재한 '광부엄마'는 최근 가장 돋보인 보도다. 강원일보는 태백과 삼척의 완전 폐광을 앞두고 광업소의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를 조명했다. 이들은 광부이자 엄마, 아내였고 산업재해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선탄부의 삶을 통해서 석탄산업의 역사와 폐광지의 아픔과 모순을 돌아본다는 취지로 아홉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단편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 강원일보 '광부엄마' 연재 기사 바로 가기)

국제신문에서 연재하는 '집단수용 디아스포라'는 국가의 대규모 인권유린을 구술로써 밝혀낸다. 이 연재에서는 60여년 전 부랑아 집단수용시설에 강제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1962년 전국에는 23곳의 부랑아 집단수용시설이 운영됐고, 수용자는 4769명이었다고 한다. 첫 편인 <고향 가던 길 끌려간 생지옥… 감금과 탈주는 반복됐다>에서는 '아동들이 진정으로 도망할 방법은 없었다'는 사실을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밝혀낸다. (※ 국제신문 '집단수용 디아스포라' 연재 기사 바로 가기)

지역에서 궁벽한 곳을 찾아다니기를 마다하지 않는 기자들이 많이 있다. 부단히 움직이고 만나고 쓰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물론 당장 주목받지 못하는 기사일 때가 많다. 관심을 끌만한 주제라면 진작에 발굴됐을 테다. 다만, 잊혀서는 안 되는 사실을, 기록으로써 영원한 사실로 남겨놓는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나로서는 먼훗날 누군가가 옛날 기사를 찾아봤을 때 '이런 일이 있었노라'라고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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