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어의 향연…방영웅 소설 '분례기' 27년 만에 복간

김용래 2024. 8.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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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뒷간의 똥 위에 낳았다고 해서 '똥례'라고 불리는 분례(糞禮)는 산에 땔감을 구하러 다니다가 고자인 줄 알았던 용팔에게 겁탈당한다.

고(故) 방영웅(1942~2022)의 장편소설 '분례기'(1967)는 가난하고 척박한 농촌의 현실과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신산한 삶의 모습을 충남 예산 지방의 풍부한 토속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 소설 '분례기'가 오랜 절판 상태를 끝내고 27년 만에 복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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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농촌 현실과 가부장제 속 여성의 고통 토속어로 써낸 문제작
방영웅 소설 '분례기' [이음출판콘텐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암, 정성을 들여야지. 난 너를 똥 위다 놓았지만 말여, 똥독에 빠치지 않은 것만두 큰 다행이여. 그러기만 됐어봐라. 어떻게 됐것나. 다 삼신님의 덕분이여, 덕분이구 말구…"

엄마가 뒷간의 똥 위에 낳았다고 해서 '똥례'라고 불리는 분례(糞禮)는 산에 땔감을 구하러 다니다가 고자인 줄 알았던 용팔에게 겁탈당한다. 그 후 분례는 여자를 네 번이나 갈아치운 노름꾼 영철에게 재첩으로 들어가고,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면서도 남편의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분례는 폭력적인 영철에게 죽을 만큼 얻어맞고 서방질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쫓겨난다.

이름이 삶의 행로를 결정해버린 듯 분례는 길바닥의 똥처럼 여기저기서 시달리고 짓밟힌다.

고(故) 방영웅(1942~2022)의 장편소설 '분례기'(1967)는 가난하고 척박한 농촌의 현실과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신산한 삶의 모습을 충남 예산 지방의 풍부한 토속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 농촌 사회의 전근대적인 풍속과 토착 생활양식, 지역에 내려오는 갖가지 전설과 속담 등이 소설 속에서 다채롭게 활용된 데다, 60년대 한국의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인간 군상들의 한 많은 이야기와 대담한 성(性) 묘사로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소설이 인기를 끌자 이순재와 윤정희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1971년 제1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12개 부문을 석권했고, 1992년엔 SBS 창사 특집 드라마로 또다시 영상화돼 안방 시청자들을 TV 앞에 끌어모았다.

그런 소설 '분례기'가 오랜 절판 상태를 끝내고 27년 만에 복간됐다.

분례기는 1967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3회에 걸쳐 연재된 뒤 1968년 홍익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가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재출간된 뒤 지금까지 절판된 상태였다.

이음출판콘텐츠가 복간한 개정판에서는 명백한 오탈자나 오류로 보이는 부분만 바로잡았다. 현행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문학적 범주에서 허용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표현들은 그대로 둬서 작품의 당대성과 기록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했다.

복간본에는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작품 해설이 실렸다.

방 교수는 "똥례라는 한 시골여자의 이야기 속에 당대 농촌사회 속에 유지되고 있던 남존여비 의식 및 순결과 정조에의 강조라는 인습의 힘이 극히 자연스럽게 용해됐다"면서 "현재의 우리 소설이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음출판콘텐츠는 '분례기' 외에도 문학적·기록적 가치가 크지만 절판돼 잊혀가고 있는 한국 문학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복간할 계획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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