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단테, 지옥, 현실, 우리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우리 인생길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동서양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고전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 '신곡' 지옥 편 첫 문장이다.
'신곡'이 만들어 낸 세계, 특히 지옥 풍경은 출간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작품으로 결실을 보게 했다.
대부분 그림 속에 단테는 베르길리우스(BC 70~BC 19)와 함께 있다. 로마 제정 초기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쓴 베르길리우스를 유별나게 존경한 단테는 그를 지옥과 연옥까지 인도하는 안내자로 삼았다.
제일 유명한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가 그린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1822)다.
조각배에 오른 두 사람 주변으로 구원할 길 없는 광포한 영혼들이 우울한 하늘과 아득한 물결 아래 요동치고 있다.
신곡과 단테를 최초로 그린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은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1417~1491)가 그린 '단테와 세 왕국'이다.
성경을 든 단테가 자신 뒤에 펼쳐진 지옥, 연옥, 천국을 소개하듯이 서 있다. 지옥 아래로는 불, 천국 위로는 별이 빛난다.
별과 하늘의 유무는 '신곡'에서 매우 의미 깊다. 지옥은 철저히 막힌 공간이다. 아홉 단계로 아래로만 향한다. 별과 하늘은 희망과 이상, 사랑을 상징한다.
지옥에 들어서기 직전 단테가 마주한 지옥문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너희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그곳에 남겨두고 들어오라"
그 장면을 현대화가 에릭 아르무식(1973~)이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그렸다. (2017)
가장 적나라하게 지옥을 묘사한 작품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가 세 폭 제단화 형식으로 그린 '세속적 쾌락의 정원'(1490년께)이다.
오른쪽 화폭에 빛이 없는 검정 배경으로 온갖 기괴하며 무참한 풍경을 펼쳤다. 특수 기계 장치 같은 것도 보인다. 중앙에 앞을 응시하는 얼굴은 보스 자화상이라고 하는데, 지옥에 자기 얼굴을 그렸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시스티나 성당 벽면에 그린 불후의 명작, '최후의 심판'에도 지옥이 소용돌이친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위로는 천국, 아래로는 지옥을 현실처럼 전개했다.
단테가 쓴 지옥에는 여러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다.
13세기 말 이탈리아에 실제 살았던 인물이다. 라벤다 영주 딸 프란체스카와 리미니 영주 장남 잔초토는 정략결혼을 한다. 그러나 프란체스카는 잔초토보다 잘 생기고 지적인 동생 파올로와 사랑에 빠진다. 몰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잔초토에게 들킨 두 사람은 칼에 찔려 죽는다.
단테는 이 둘을 '욕정의 죄'로 단죄해 지옥에 가둔다. 기독교 일곱 죄 중 하나가 색욕(lust)이다. 이 장면을 많은 화가가 그렸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아리 셰퍼(1795~1858)가 그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영혼'(1854)이다.
비록 지옥에 갇혔지만, 연인은 서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랑은 욕정을 넘어선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을 대표하는 명작은 '지옥문'(1880~1900)이다. 180여 명 인물을 약 6미터 높이, 4미터 너비에 조각한 것인데, 단테가 쓴 지옥 풍경을 로댕이 수런거리듯 옮겨 놓은 작품이다.
지옥에서도 인간 고유의 특질을 떨치지 못한다. '생각하는 사람'을 가운데 새겼다.
단테에 의하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은 지상 어딘가에 있다. 지옥이란 완전 허구가 아님을 겨냥한다.
단테 이후 벌어진 종교전쟁부터 양차 세계대전, 페스트, 베트남 등에서 벌어진 국지전쟁과 9.11 테러, 지금도 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다름 아닌 현실 속 지옥 풍경이다.
단테는 지옥에 들어서며 이런 문장을 읊는다. "나를 지나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 사람은 망자에 다다른다"
지옥은 인류 스스로 만든 곳이다. 다른 데 있지 않다. '나', 즉 '우리 안'에 있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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